‘안무연구: 춤의 이주’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
Impressions on the Choreographic Research Project: Migration of Dance◌ 홍정아(예술 창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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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glish version below -
[‘춤의 이주’여정을 시작하며]
‘춤의 이주’ 프로젝트를 통해서 코리아 디아스포라(재외동포)의 춤을 연구하고 창작하는 재독무용가 임지애 안무가와 공연학자 손옥주와 함께 리서치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임지애 안무가와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나는 2017년에 ‘미래의 한국의 춤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기반으로, 통일 이후의 남북의 춤을 상상하며 ‘춤, 경계를 넘다 : 남,북 기본춤 비교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래의 한국춤은 비단 남한과 북한뿐 아니라 재중, 재일동포를 포함한 다양한 코리아 디아스포라들이 전수하고 이어가고 있는 춤까지 그 범주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나는 코리아 디아스포라들의 춤을 꾸준히 기록하는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2018년에는 배한라의 제자인 메리 조프레슬리의 다큐멘터리영화의 사전영상 촬영을 하기 위해서 하와이에 방문하였다. 그 때, 하와이에서 내가 방문하기 얼마 전에 임지애 안무가가 다녀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고, 나의 방문소식 역시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그러한 인연으로 2019년 여름 임지애 안무가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고, 서로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관련한 자료 및 정보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이번 프로젝트에 리서치파트너로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애초 이번 프로젝트는 ‘춤의 이주’라는 주제로 재일조선인무용수와 전문예술단체 그리고 조선학교와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0년 하반기에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국경의 경계를 넘을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초래되면서 프로젝트 전반이 온라인 환경 안에서 이루어졌고, 소통의 한계로 인해서 규모 역시 작아졌다. 이러한 어려움은 내가 ‘춤, 경계를 넘다 : 남,북 기본춤 비교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의 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프로젝트 또한 재일조선인 전문단체와의 교류를 기획하였으나, 2017년 한반도에 흐르는 긴장 상황에 계획하던 교류계획이 무산되고 남,북 기본춤을 비교연구하는 방향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국경의 경계가 닫히게 된 올해의 현실 또한 그 때만큼이나 녹록하지 않았으나, 대면교류 대신 비대면으로 자료와 논문들을 공부하면서 프로젝트 취지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2010년 조선학교를 방문해서 소조활동(방과 후 교실이나 동아리활동과 같이 정해진 교과교육 외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체육과 예술분야의 활동)을 보았던 경험과 2017년 금강산가극단의 강수내 안무가를 만났던 일과 남,북 기본춤 비교연구를 진행했던 문서와 영상자료들을 공유하였고, 임지애안무가가 선별한 논문과 공연학자 손옥주가 소개한 책들을 함께 읽고 줌(Zoom)으로 모여 각자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나누고 질문들을 정리하며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준비를 했다. 연구는 온라인을 통해 재일조선인과의 인터뷰와, 조선학교 소조활동 현장을 실시간으로 견학하며 새롭게 생겨난 질문들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고 논문과 무용영상자료를 살펴보며 재일조선인 춤을 정리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춤의 이주’ 여정에서 기억나는 것]
가장 처음 인터뷰한 사람은 재일조선인 무용가 조혜미 선생님이다. 그녀는 조선학교, 조선대학교, 조선가무단 출신으로 총련계 재일조선인 무용수의 전형적인 문화권 안에서 조선춤(‘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무용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재일조선인이 북한춤을 표현하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을 추며 살아가다가 부상으로 인해 한국춤(본 글에서 한국춤이라는 용어의 범위는 ‘대한민국’ 즉, 남한의 무용에 한정해서 사용하고자 한다)을 배우게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나는 ‘두 가지 춤을 모두 경험한 그녀가 감각하고 해석해내는 조선춤과 한국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춤을 출 때 마치 내가 구분되어지고 경계되어지지 않는 듯 한 자유함을 느낀다.’라는 표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러한 표현을 하게 된 이유가 한국춤이 조선춤과는 달리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표현을 부가하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아니면 빠른 속도감의 조선춤을 출 때보다 춤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유달리 일본에서 차별받고 살아가고 있는 총련계 재일조선인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그녀가 한국춤에서 “자유함”을 경험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한 사람은 ‘교토조선중고급학교’의 소조시간에 무용을 가르치는 윤경숙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교원이 되었고, 현재 3년간 조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도 조선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셨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서 그녀 역시 교원이 되고자 하는 꿈을 어린 시절부터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조선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것이 일본 안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만의 정체성을 굳건히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조선학교가 처한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윗세대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 교육하며 자신과 같은 신념을 가진 제자들을 재생산하는 위치에 젊은 교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교원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무용 소조활동을 견학하였다. 무용실에는 헤어밴드와 풀치마를 입은 학생들이 수줍게 웃으며 고정된 카메라를 바라보았고, 연구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학생들은 막 바로 대형을 갖추고 노랫말이 있는 음악에 맞춰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에는 워밍업처럼 체조와 같이 동작이 크고 활발한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는데 2010년에 방문했던 ‘도꾜조선 제1초중급학교’에서 경험했던 초등학교 학생들의 ‘제동작’중심의 기본춤과는 다른 중·고급학생들의 ‘몸풀이 기본동작’을 경험하며 시종일관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중간중간에 연습실 뒤편으로 가서 ‘송진’으로 추정되는 가루를 슈즈에 묻히며 연습을 하는 모습이나 교원선생님께서 ‘플리에(plie)’와 같은 발레용어들을 사용하시는 모습은 조선춤이 가진 특유한 혼종성의 특징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소조활동은 예체능을 전공한 전문교사가 아닌 일반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원선생님이 자신의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소조활동을 토대로 방과 후에 한시간반가량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소조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편인데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예술경연대회가 있는 시기에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서 연습을 한다고 한다. 대회는 전국에 있는 모든 조선학교가 참여하는데 개인별 경쟁이 아닌 학교별 경쟁으로 진행되고, 대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대표하는 팀으로 참가하게 된다. 소조활동을 견학을 통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학생들의 기량이 수준급이라는 사실이었는데, 이러한 조선학교의 집단경쟁, 집단주의 교육의 방향은 소조활동을 잘하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학생을 끌어주며 상향평준화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는 입시를 위한 개인 간의 경쟁이 치열한 한국의 무용교육 현장에 시사점을 남겨주는 듯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적지 않은 혼란을 경험한 일들도 기억에 남는다. 조선춤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되어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재일조선인무용가의 개별적 경험에 의존한 인터뷰를 통해서 희미하게나마 재일조선인의 춤을 더듬어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질문들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재일조선인이 사용하는 단어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 시간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각자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에 대해 재차 확인하고 질문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였다.
[‘춤의 이주’여정에서 발견한 의미]
프로젝트가 진행된 지난 5개월의 시간 안에 연구자 삼인의 인식의 흐름이 변화하고 관점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대면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재일조선인과의 비대면 만남(인터뷰)과 비대면 견학(소조활동)을 통해서 희미하게나마 재일조선인의 춤을 바라보고 조선춤을 상상하면서, 분단국가라는 환경에서 반쪽짜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계를 더욱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춤의 이주’라는 주제 하에 재일조선인의 춤이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이주한 춤인지에 대한 기준과, 재일조선인이 말하고 있는 남,북 춤의 뿌리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진행하고자 했던 연구의 방향은 한국춤과 조선춤을 비교하거나, 춤의 역사를 정리해내고자 함도 아니었고, ‘춤의 이주’라는 타이틀 안에서 재일조선인의 춤을 경험하고 조망하기 위해 시작된 연구였지만 그들의 춤을 배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해 파악해야했고, 재일조선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춤에 대한 지식 역시 필요했다. 재일조선인과의 만남을 통해 기존에 연구자들이 갖고 있었던 개념이나 관점이 충돌하였고, 그 틈을 비집고 수많은 질문들이 파생되었다. 그러한 질문들과 관련한 대화(카카오톡)들 중 일부를 옮겨본다.
새롭게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 중에 어느 하나라도 명확하게 답을 들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때로는 혼란이 가중되거나 답보상태에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진정한 가치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훗날 연구의 실천으로서 임지애 안무가의 ‘창작작업’으로 이 모든 과정이 재해석되어서 창조되어질 것이라는 사실 역시 고무적인 점이다.
[‘춤의 이주’여정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
조혜미 선생님과의 인터뷰 도중에 북한에서 가져온 책인 ‘악학궤범’을 보았을 때 북한의 역사 가운데 탈락되어진 전통문화예술에 대해서 막연한 하나의 희망을 발견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북한에도 보존되고 전수되어지는 전통예술이 있는 걸까?’ 그리고 ‘북한에 남아있는 전통예술문화가 초기 북한춤 형성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하는 새로운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독특함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연구 필요성 역시 느끼게 되었다.
[‘춤의 이주’여정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재일조선인의 ‘춤’을 리서치하려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춤은 그들의 삶의 측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었고 동시에 일본이라는 공간 속의 위치 안에서 그들의 존재를 규명하며 나가는 생존의 방식으로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삶의 근거지에서 첨예하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규정해야 하는 재일조선인의 ‘삶’과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재일조선인의 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조선춤과 코리아디아스포라의 춤에 대한 이야기를 옳고 그름에 대한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현상으로 바라보고 기록해나가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춤의 이주’ 프로젝트 리서치과정에서 편견을 갖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함께 고민하고 질문하며 할 수 있는 만큼의 걸음을 옮겨볼 수 있었던 경험은 값지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춤의 이주’여정을 통해 갖게 된 바램들을 정리함으로 개인적인 소회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비대면 인터뷰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관점이 넓어지고 유연해지는 계기가 되었기를 소망하며 앞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호기심을 갖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질문들을 발견하고 경험하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또한 그들만의 독특한 춤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재일조선인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목적에는 기교와 기예적인 향상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면서 그 춤의 근원(origin)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춤을 추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조국(한국, 혹은 북한)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경험하는 춤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 춤이든 간에 자신이 어릴적부터 배우고 보고 자라난 춤을 지키는 노력을 함과 동시에 재일조선인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적 상황에 맞는 춤 문화를 건강하게 꽃피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남과 북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그들만의 특수한 상황을 지혜롭게 활용하여서 그들이 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다리의 역할을 잘 담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본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앞으로 이어질 연구가 코리아디아스포라와 상호의존적인 참여적실행연구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라며, 빠른 시일 내에 남,북의 춤을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길 기대한다. 현재까지 한국과 북한은 이벤트성의 단회적인 공연행사는 성사된 경험이 있지만, 지속적인 교류와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과정 중심적 프로젝트’는 기회의 문이 열리지 않고 있다. 과정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듯이 통일이라는 개념만을 피상적으로 거론하는 현 위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남과 북 그리고 코리아디아스포라들이 참여하여 함께 ‘미래의 한국춤’에 대해 상상하며 그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본다.
삶마다 실처럼 관통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질문이다. 우리는 그 물음의 답을 찾아 헤맨다. 자신의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질문 자체가 대답보다 휠씬 중요하다..
Impressions on the Choreographic Research Project: Migration of Dance
[Beginning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It was a deeply meaningful time for me to participate as a research partner along with choreographer Lim Jee-Ae based in Germany and Performing Arts Scholar Son Okju in Migration of Dance, a project which studies and creates from the dance of the Korean diaspora. My connection with choreographer Lim Jee-Ae goes back to a few years ago. In 2017, I conducted a research, “Remember and Dance Across the Border”, based on the question of how Korean dance would look in the future, imagining South and North Korean dances after reunification. Through the research, I had come to the conclusion that Korean dance in the future should not only include the dance of North and South Koreas but also the dance that the diverse Korean diasporas inherit and pass down, including those in China and Japan. In order for such inclusion, I decided to keep documenting the dances of Korean diasporas and visited Hawaii in 2018 for a pre-shooting of a documentary film on Mary Jo Freshley, a student of Pai Halla. There I heard that Lim had visited a little before I did, and eventually she also heard about my visit to Hawaii. From this connection, she reached out to me in the summer of 2019, and we shared information and materials on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nd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and I naturally became her research partner for this project. Based on the theme of “migration of dance”, this project originally planned an interaction with Zainichi dancers, professional art organizations, and Korean schools(Joseon school) in Japan. However, in the second half of 2020 the Covid-19 pandemic situation made it impossible to cross national borders, and the project had to be conducted in an online setting. Due to limitations in communication, the project size was also reduced. Such difficulties reminded me of the crisis I experienced while conducting the project “Remember and Dance Across the Border”. This project had also planned for interactions with professional organizations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However in 2017, the political tension in the Korean Peninsula put a stop to those plans, and the project took a different turn to a comparative research of South and North Korean basic dance. This year’s situation where the Covid-19 pandemic closed down the borders worldwide was equally difficult, but we tried to focus on the purpose of the project, and studied papers and other materials remotely. I shared my experience of observing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extracurricular classes in 2010, meeting choreographer Kang Soonae of Geumgang-san Gageuk-dan in 2017, and the text and video sources of my comparative research. We read academic papers that Lim selected and books that Son introduced, and met via Zoom to share what we found interesting and organize questions to prepare ourselves for the project. The research was conducted through online interviews with Zainichi participants, an online visit to the extracurricular class of a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We discussed based on the questions that came up from conducing the interviews and virtually visiting the extracurricular class and studied academic papers and dance videos to understand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What I remember from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Our first interviewee was Jo Hyemi, a Zainichi dance artist. Her background is quite unusual. She graduated from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and Korean University(Joseon University) in Japan, and worked at Tokyo Korean Dance Group. As a North Korean (Chongryon) Zainichi dancer, she performed Joseon dance (term used by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to refer to the dance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fter an injury, she learned the Korean dance (in this article, the term is limited to the dance of South Korea). I became curious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Joseon and Korean dance that she, with the experience of both, senses and interprets. What impressed me the most was when she said, “I feel freedom in Korean dance as if I am not distinguished or demarcated”. It was not clear if this freedom she feels is because the Korean dance does not require a political or ideological expression or if it is because she could immerse herself in the dance itself more than she could while dancing the Joseon dance which is very fast-paced. Regardless, it stood out to me that as someone who experiences discrimination living as a North Korean (Chongryon) Zainichi in Japanese society, she felt “freedom” in the Korean dance. Our second interviewee was Yoon Kyeongsook, a teacher at kyoto korean junior high school who teaches extracurricular dance classes at the school. She became a teacher right after university three years ago. Her father also taught at a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She looked up to her father and had a dream of following his path since childhood. She was young but had strong pride in her role of solidifying the identity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by teaching dance at a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It was impressive to see a young teacher in the position of practicing and educating the lessons of past generations despite the difficult situations of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and nurturing students to share the same beliefs. Before the interview with Yoon, we visited an extracurricular dance class online. At the studio, students with hairbands and rehearsal skirts looked at the fixed camera with shy smiles. We exchanged greetings, and they immediately started to make formations and move to songs that had lyrics. At first, like a warm-up, the movements were big and active similar to gymnastics. The whole sequence was very exciting. I noticed the difference of their “Basic Movements” from the “Assorted Movements” of elementary level students that I saw in 2010 at Nishi-Tokyo Korean 1st Elementary and Junior High School. Also, I could sense the hybrid quality of the Joseon dance when the students applied what I believed to be rosin on their shoes or when the teacher used ballet terms like plié. These extracurricular classes are led not by professional teachers who majored in the arts. Instead, they are taught by regular teachers based on their experience in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Still, the students are usually very enthusiastic and committed to these classes which last about 1.5 hours after school, and sometimes they rehearse even on weekends at the school if the annual competition is approaching, which takes place each fall. All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in the country take part in the competition, and the competition is between schools and not individuals. The students who participate represent their schools. What impressed me the most was the excellent skills of the students. This collectivistic philosophy of education has been creating a voluntary and participatory environment in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where competent students help out relatively less skilled ones. This tells us something about dance education in Korea, where there is such an intense competition between individual students for college entrance. I also remember that we had quite a few moments of confusion. Our questions kept expanding, but without any clear resources on Joseon dance, we could only rely on the individual experiences of Zainichi dancers to vaguely find out about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Sometimes it took time to understand the concepts or words used by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nd we would go through a process of intense investigation as well as repeated checking and questioning to see if our understanding was correct.
[Meanings I discovered from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What was the most meaningful about this journey was to experience a change and expansion of the three researchers’ thought and perspective during the 5 months. Looking at the dance of the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however faintly, and imagining Joseon dance through our only available method, that is, non-contact meetings (interviews) with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nd visit (extracurricular classes), it became clearer to me how limiting it can be to only have half of a perspective in the context of a divided country. Therefore, we couldn’t help but consider, under the theme of “migration of dance”, from and to which place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migrated and also the roots of North and South Korean dances that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refer to. The direction of research we considered was neither about comparing Korean and Joseon dances nor going over a dance history; it was intended to experience and take a look at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under the title of “migration of dance”. However, learning about their dance inevitably required an understanding of their identity and to understand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lso needed knowledge on Joseon dance. Meetings with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brought about clashes of our pre-existing views or concepts, and numerous questions seeped through those gaps. Below are part of our conversations(Kakaotalk messenger) related to such questions.
(Lim Jee-Ae) “Perhaps it is a mistake to deal with North Korean dance through the concept of ‘migration’? Although it is not crucial in this research to define it, but I think it’s important to be aware of this vagueness. From my perspective, Joseon dance is a dance that ‘moved’ and that’s because of Choi Seunghee. She moved from the South to North and after the division of Korea, Korean dance and Joseon dance were developed and passed down in respective systems. Then, can we say that Korean dance developed while staying, whereas Joseon dance developed as it migrated...?”
(Son Okju) “I think Joseon dance of North Korea, which was developed mainly by shinmooyong (“new dance”) artists, may be actually closer to the notion of dance that really came to the fore in the modern age. North Korean regions must have had their own folk dances but wouldn’t they take on a completely different context from the systemized Joseon dance? What I’m interested in is when a specific style of dance gains a representative quality - even though the North and South
Korean dance (the dance culture of the Korean Peninsula) is essentially multiple (and there is an importance of historical development in that sense).”
(Hong Jungah) “Would it be that as the notion of dance was introduced in the modern age, Bac Ishii and his student Choi Seunghee, who performed shinmooyong for the first time, came to have the representative status of North Korean dance? And Han Seongjoon gained the representative status of Korean dance when he adapted and integrated traditional dance and created a form that fits the now different space of dance? It would be great if there is a clearer understanding of it and a discourse about what gives that status. Going through the same confusion as Lim about the migration of dance, I suspect my perspectives have been blocked by geographical limitations.”
In the situation where we could not get any clear answers to these numerous new questions, confusion would increase or things came to a standstill on some days. But I also felt relieved because asking these questions already shows the real value of our research. It is also encouraging that all this process will be reinterpreted by Lim and become a part of her “creation” as the practical aspect of this research.
[Discoveries from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When I saw the book Akhak Gwebeom (“musical canon”) during our interview with Jo Hyemi, which she brought from North Korea, I became hopeful for the traditional culture and arts in North Korea, which were eliminated in its history. New questions came up: “Are there traditional arts in North Korea that are preserved and passed down as well?” “How did the remaining traditional arts and culture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early North Korean dance?” Also, I noticed and felt the necessity of research for some unique qualities of art and artists of socialist countries. [At the end of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We started our project to research on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nd found that it was closely connected to their life, and in a way it was a survival method by asserting their existence in the geographical space of Japan. Encountering the “life” and “existe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who constantly and urgently felt the need to define their identity in a place where they are born and raised, I have decided to look at not only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but also the stories of Joseon dance and the dance of Korean diaspora and document them “as they are” beyond the paradigm of right or wrong. In this Migration of Dance research, it was valuable to have been able to stay open to new possibilities without prejudice and take the steps we took through our collective questions and discussions. I’d like to finish this essay with some of my new hopes at the end of this journey.
— I hope that the conversations and interactions from the online interviews were an opportunity to widen the perspectives of one another and become flexible. I hope that we can continue to move forward together in dialogue and discover new questions and experiences with curiosity about one another. I also hope that the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will be able to create their own unique dance culture.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not only aims to
improve techniques and artistry but also aspires to reclame their identity through the origin of the dance. It could be that while they are dancing, they have an experience as if they are living and moving in their motherland (South or North Korea). No matter which category the dance they experience belongs to, it is my hope that a dance culture that suits their own cultural circumstances within the Zainichi community will be able to blossom in a healthy way, along with their efforts to preserve the dance they learned and experienced from childhood. Also, it is my hope that they can wisely use the unique advantage of being able to travel both to North Korea and South Korea, and play a role as an important bridge in the “genuine” reunification process that they want.
— I hope that further research based on this project will develop towards the direction of co- dependent participatory practical research with the Korean diaspora and that there will be an opportunity for a collective research on North and South Korean dances in near future. Between the North and South, there have been a few one-time performances or events but no opportunity for ‘process-oriented project’ based on continuous exchange and research. I hope we can take a step further from a superficial mention of the concept of reunification and achieve a process- building practice of collective imagination with the North and South Korean people as well as the Korean diaspora, as there is no outcome without process.
Running through each life like a thread is a question that you come to answer. You’re lucky to find it. The question is far more important than the answer.
— Carl Jung (Interview with Joanna Macy, from Joanna Macy and the Great Turning)
[‘춤의 이주’여정을 시작하며]
‘춤의 이주’ 프로젝트를 통해서 코리아 디아스포라(재외동포)의 춤을 연구하고 창작하는 재독무용가 임지애 안무가와 공연학자 손옥주와 함께 리서치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임지애 안무가와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나는 2017년에 ‘미래의 한국의 춤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기반으로, 통일 이후의 남북의 춤을 상상하며 ‘춤, 경계를 넘다 : 남,북 기본춤 비교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래의 한국춤은 비단 남한과 북한뿐 아니라 재중, 재일동포를 포함한 다양한 코리아 디아스포라들이 전수하고 이어가고 있는 춤까지 그 범주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나는 코리아 디아스포라들의 춤을 꾸준히 기록하는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2018년에는 배한라의 제자인 메리 조프레슬리의 다큐멘터리영화의 사전영상 촬영을 하기 위해서 하와이에 방문하였다. 그 때, 하와이에서 내가 방문하기 얼마 전에 임지애 안무가가 다녀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고, 나의 방문소식 역시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그러한 인연으로 2019년 여름 임지애 안무가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고, 서로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관련한 자료 및 정보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이번 프로젝트에 리서치파트너로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애초 이번 프로젝트는 ‘춤의 이주’라는 주제로 재일조선인무용수와 전문예술단체 그리고 조선학교와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0년 하반기에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국경의 경계를 넘을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초래되면서 프로젝트 전반이 온라인 환경 안에서 이루어졌고, 소통의 한계로 인해서 규모 역시 작아졌다. 이러한 어려움은 내가 ‘춤, 경계를 넘다 : 남,북 기본춤 비교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의 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프로젝트 또한 재일조선인 전문단체와의 교류를 기획하였으나, 2017년 한반도에 흐르는 긴장 상황에 계획하던 교류계획이 무산되고 남,북 기본춤을 비교연구하는 방향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국경의 경계가 닫히게 된 올해의 현실 또한 그 때만큼이나 녹록하지 않았으나, 대면교류 대신 비대면으로 자료와 논문들을 공부하면서 프로젝트 취지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2010년 조선학교를 방문해서 소조활동(방과 후 교실이나 동아리활동과 같이 정해진 교과교육 외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체육과 예술분야의 활동)을 보았던 경험과 2017년 금강산가극단의 강수내 안무가를 만났던 일과 남,북 기본춤 비교연구를 진행했던 문서와 영상자료들을 공유하였고, 임지애안무가가 선별한 논문과 공연학자 손옥주가 소개한 책들을 함께 읽고 줌(Zoom)으로 모여 각자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나누고 질문들을 정리하며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준비를 했다. 연구는 온라인을 통해 재일조선인과의 인터뷰와, 조선학교 소조활동 현장을 실시간으로 견학하며 새롭게 생겨난 질문들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고 논문과 무용영상자료를 살펴보며 재일조선인 춤을 정리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춤의 이주’ 여정에서 기억나는 것]
가장 처음 인터뷰한 사람은 재일조선인 무용가 조혜미 선생님이다. 그녀는 조선학교, 조선대학교, 조선가무단 출신으로 총련계 재일조선인 무용수의 전형적인 문화권 안에서 조선춤(‘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무용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재일조선인이 북한춤을 표현하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을 추며 살아가다가 부상으로 인해 한국춤(본 글에서 한국춤이라는 용어의 범위는 ‘대한민국’ 즉, 남한의 무용에 한정해서 사용하고자 한다)을 배우게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나는 ‘두 가지 춤을 모두 경험한 그녀가 감각하고 해석해내는 조선춤과 한국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춤을 출 때 마치 내가 구분되어지고 경계되어지지 않는 듯 한 자유함을 느낀다.’라는 표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러한 표현을 하게 된 이유가 한국춤이 조선춤과는 달리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표현을 부가하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아니면 빠른 속도감의 조선춤을 출 때보다 춤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유달리 일본에서 차별받고 살아가고 있는 총련계 재일조선인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그녀가 한국춤에서 “자유함”을 경험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한 사람은 ‘교토조선중고급학교’의 소조시간에 무용을 가르치는 윤경숙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교원이 되었고, 현재 3년간 조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도 조선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셨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서 그녀 역시 교원이 되고자 하는 꿈을 어린 시절부터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조선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것이 일본 안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만의 정체성을 굳건히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조선학교가 처한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윗세대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 교육하며 자신과 같은 신념을 가진 제자들을 재생산하는 위치에 젊은 교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교원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무용 소조활동을 견학하였다. 무용실에는 헤어밴드와 풀치마를 입은 학생들이 수줍게 웃으며 고정된 카메라를 바라보았고, 연구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학생들은 막 바로 대형을 갖추고 노랫말이 있는 음악에 맞춰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에는 워밍업처럼 체조와 같이 동작이 크고 활발한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는데 2010년에 방문했던 ‘도꾜조선 제1초중급학교’에서 경험했던 초등학교 학생들의 ‘제동작’중심의 기본춤과는 다른 중·고급학생들의 ‘몸풀이 기본동작’을 경험하며 시종일관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중간중간에 연습실 뒤편으로 가서 ‘송진’으로 추정되는 가루를 슈즈에 묻히며 연습을 하는 모습이나 교원선생님께서 ‘플리에(plie)’와 같은 발레용어들을 사용하시는 모습은 조선춤이 가진 특유한 혼종성의 특징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소조활동은 예체능을 전공한 전문교사가 아닌 일반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원선생님이 자신의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소조활동을 토대로 방과 후에 한시간반가량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소조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편인데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예술경연대회가 있는 시기에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서 연습을 한다고 한다. 대회는 전국에 있는 모든 조선학교가 참여하는데 개인별 경쟁이 아닌 학교별 경쟁으로 진행되고, 대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대표하는 팀으로 참가하게 된다. 소조활동을 견학을 통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학생들의 기량이 수준급이라는 사실이었는데, 이러한 조선학교의 집단경쟁, 집단주의 교육의 방향은 소조활동을 잘하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학생을 끌어주며 상향평준화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는 입시를 위한 개인 간의 경쟁이 치열한 한국의 무용교육 현장에 시사점을 남겨주는 듯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적지 않은 혼란을 경험한 일들도 기억에 남는다. 조선춤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되어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재일조선인무용가의 개별적 경험에 의존한 인터뷰를 통해서 희미하게나마 재일조선인의 춤을 더듬어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질문들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재일조선인이 사용하는 단어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 시간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각자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에 대해 재차 확인하고 질문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였다.
[‘춤의 이주’여정에서 발견한 의미]
프로젝트가 진행된 지난 5개월의 시간 안에 연구자 삼인의 인식의 흐름이 변화하고 관점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대면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재일조선인과의 비대면 만남(인터뷰)과 비대면 견학(소조활동)을 통해서 희미하게나마 재일조선인의 춤을 바라보고 조선춤을 상상하면서, 분단국가라는 환경에서 반쪽짜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계를 더욱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춤의 이주’라는 주제 하에 재일조선인의 춤이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이주한 춤인지에 대한 기준과, 재일조선인이 말하고 있는 남,북 춤의 뿌리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진행하고자 했던 연구의 방향은 한국춤과 조선춤을 비교하거나, 춤의 역사를 정리해내고자 함도 아니었고, ‘춤의 이주’라는 타이틀 안에서 재일조선인의 춤을 경험하고 조망하기 위해 시작된 연구였지만 그들의 춤을 배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해 파악해야했고, 재일조선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춤에 대한 지식 역시 필요했다. 재일조선인과의 만남을 통해 기존에 연구자들이 갖고 있었던 개념이나 관점이 충돌하였고, 그 틈을 비집고 수많은 질문들이 파생되었다. 그러한 질문들과 관련한 대화(카카오톡)들 중 일부를 옮겨본다.
(임지애) “‘이주’라는 키워드로 북한춤을 다루는게 오류가 아닐까요? 이것을 정의하는 것이 이번 리서치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이 모호함을 인식하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제 관점에서는 조선춤은 ‘이동’한 춤이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최승희 씨 때문이에요. 그녀가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였고, 분단 이후 각각 한국춤과 조선춤으로 다른 체제에서 발전, 계승되잖아요. 그렇다면 한국춤은 남아있으면서 발전하고 조선춤은 이동하면서 발전한 걸로 볼 수 있는 건지...”
(손옥주) “개인적으로 신무용가들에 기반한 북한의 조선춤은 근대 시기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무용" 개념("춤"과는 다르다고 상정됐던)에 오히려 근접하지 않을까 싶어요. 북한 지역에도 분명 지역적 특색이 담긴 민속춤이 존재해왔겠지만, 체계화된 소위 "조선춤"과는 전혀 다른 맥락을 보이지 않을까요? 제가 관심 있는 지점은 북한과 남한의 춤(한반도 지역의 춤문화)에 대해 기본적으로 multiple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어떠한 특정한 춤의 양식이 대표성을 갖게 되는 지점(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흐름의 중요성도 파악되는 것 같아요)이예요”
(홍정아) “근대에 무용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신무용을 공연한 이시이바쿠와 그의 제자인 최승희가 북한춤의 대표성을 가지게 되고, 춤추는 공간이 변화되면서 무대에 맞는 춤의 양식을 만들고 전통춤을 집대성한 한성준이 한국춤의 대표성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한 정리와 대표성을 갖게 되는 기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면 좋겠어요. 춤의 이주에 대해 임지애 안무가님과 동일한 혼란을 겪으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저의 관점이 공간적 제약에 가로막혀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새롭게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 중에 어느 하나라도 명확하게 답을 들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때로는 혼란이 가중되거나 답보상태에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진정한 가치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훗날 연구의 실천으로서 임지애 안무가의 ‘창작작업’으로 이 모든 과정이 재해석되어서 창조되어질 것이라는 사실 역시 고무적인 점이다.
[‘춤의 이주’여정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
조혜미 선생님과의 인터뷰 도중에 북한에서 가져온 책인 ‘악학궤범’을 보았을 때 북한의 역사 가운데 탈락되어진 전통문화예술에 대해서 막연한 하나의 희망을 발견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북한에도 보존되고 전수되어지는 전통예술이 있는 걸까?’ 그리고 ‘북한에 남아있는 전통예술문화가 초기 북한춤 형성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하는 새로운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독특함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연구 필요성 역시 느끼게 되었다.
[‘춤의 이주’여정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재일조선인의 ‘춤’을 리서치하려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춤은 그들의 삶의 측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었고 동시에 일본이라는 공간 속의 위치 안에서 그들의 존재를 규명하며 나가는 생존의 방식으로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삶의 근거지에서 첨예하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규정해야 하는 재일조선인의 ‘삶’과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재일조선인의 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조선춤과 코리아디아스포라의 춤에 대한 이야기를 옳고 그름에 대한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현상으로 바라보고 기록해나가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춤의 이주’ 프로젝트 리서치과정에서 편견을 갖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함께 고민하고 질문하며 할 수 있는 만큼의 걸음을 옮겨볼 수 있었던 경험은 값지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춤의 이주’여정을 통해 갖게 된 바램들을 정리함으로 개인적인 소회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비대면 인터뷰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관점이 넓어지고 유연해지는 계기가 되었기를 소망하며 앞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호기심을 갖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질문들을 발견하고 경험하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또한 그들만의 독특한 춤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재일조선인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목적에는 기교와 기예적인 향상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면서 그 춤의 근원(origin)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춤을 추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조국(한국, 혹은 북한)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경험하는 춤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 춤이든 간에 자신이 어릴적부터 배우고 보고 자라난 춤을 지키는 노력을 함과 동시에 재일조선인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적 상황에 맞는 춤 문화를 건강하게 꽃피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남과 북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그들만의 특수한 상황을 지혜롭게 활용하여서 그들이 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다리의 역할을 잘 담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본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앞으로 이어질 연구가 코리아디아스포라와 상호의존적인 참여적실행연구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라며, 빠른 시일 내에 남,북의 춤을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길 기대한다. 현재까지 한국과 북한은 이벤트성의 단회적인 공연행사는 성사된 경험이 있지만, 지속적인 교류와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과정 중심적 프로젝트’는 기회의 문이 열리지 않고 있다. 과정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듯이 통일이라는 개념만을 피상적으로 거론하는 현 위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남과 북 그리고 코리아디아스포라들이 참여하여 함께 ‘미래의 한국춤’에 대해 상상하며 그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본다.
삶마다 실처럼 관통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질문이다. 우리는 그 물음의 답을 찾아 헤맨다. 자신의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질문 자체가 대답보다 휠씬 중요하다..
— 칼 융(Joanna Macy and the Great Turning — Joanna Macy 인터뷰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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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s on the Choreographic Research Project: Migration of Dance
Hong Jungah (Arts creative producer)
Translation: Kyunghoo Kathy LEE
Translation: Kyunghoo Kathy LEE
[Beginning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It was a deeply meaningful time for me to participate as a research partner along with choreographer Lim Jee-Ae based in Germany and Performing Arts Scholar Son Okju in Migration of Dance, a project which studies and creates from the dance of the Korean diaspora. My connection with choreographer Lim Jee-Ae goes back to a few years ago. In 2017, I conducted a research, “Remember and Dance Across the Border”, based on the question of how Korean dance would look in the future, imagining South and North Korean dances after reunification. Through the research, I had come to the conclusion that Korean dance in the future should not only include the dance of North and South Koreas but also the dance that the diverse Korean diasporas inherit and pass down, including those in China and Japan. In order for such inclusion, I decided to keep documenting the dances of Korean diasporas and visited Hawaii in 2018 for a pre-shooting of a documentary film on Mary Jo Freshley, a student of Pai Halla. There I heard that Lim had visited a little before I did, and eventually she also heard about my visit to Hawaii. From this connection, she reached out to me in the summer of 2019, and we shared information and materials on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nd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and I naturally became her research partner for this project. Based on the theme of “migration of dance”, this project originally planned an interaction with Zainichi dancers, professional art organizations, and Korean schools(Joseon school) in Japan. However, in the second half of 2020 the Covid-19 pandemic situation made it impossible to cross national borders, and the project had to be conducted in an online setting. Due to limitations in communication, the project size was also reduced. Such difficulties reminded me of the crisis I experienced while conducting the project “Remember and Dance Across the Border”. This project had also planned for interactions with professional organizations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However in 2017, the political tension in the Korean Peninsula put a stop to those plans, and the project took a different turn to a comparative research of South and North Korean basic dance. This year’s situation where the Covid-19 pandemic closed down the borders worldwide was equally difficult, but we tried to focus on the purpose of the project, and studied papers and other materials remotely. I shared my experience of observing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extracurricular classes in 2010, meeting choreographer Kang Soonae of Geumgang-san Gageuk-dan in 2017, and the text and video sources of my comparative research. We read academic papers that Lim selected and books that Son introduced, and met via Zoom to share what we found interesting and organize questions to prepare ourselves for the project. The research was conducted through online interviews with Zainichi participants, an online visit to the extracurricular class of a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We discussed based on the questions that came up from conducing the interviews and virtually visiting the extracurricular class and studied academic papers and dance videos to understand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What I remember from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Our first interviewee was Jo Hyemi, a Zainichi dance artist. Her background is quite unusual. She graduated from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and Korean University(Joseon University) in Japan, and worked at Tokyo Korean Dance Group. As a North Korean (Chongryon) Zainichi dancer, she performed Joseon dance (term used by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to refer to the dance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fter an injury, she learned the Korean dance (in this article, the term is limited to the dance of South Korea). I became curious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Joseon and Korean dance that she, with the experience of both, senses and interprets. What impressed me the most was when she said, “I feel freedom in Korean dance as if I am not distinguished or demarcated”. It was not clear if this freedom she feels is because the Korean dance does not require a political or ideological expression or if it is because she could immerse herself in the dance itself more than she could while dancing the Joseon dance which is very fast-paced. Regardless, it stood out to me that as someone who experiences discrimination living as a North Korean (Chongryon) Zainichi in Japanese society, she felt “freedom” in the Korean dance. Our second interviewee was Yoon Kyeongsook, a teacher at kyoto korean junior high school who teaches extracurricular dance classes at the school. She became a teacher right after university three years ago. Her father also taught at a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She looked up to her father and had a dream of following his path since childhood. She was young but had strong pride in her role of solidifying the identity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by teaching dance at a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It was impressive to see a young teacher in the position of practicing and educating the lessons of past generations despite the difficult situations of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and nurturing students to share the same beliefs. Before the interview with Yoon, we visited an extracurricular dance class online. At the studio, students with hairbands and rehearsal skirts looked at the fixed camera with shy smiles. We exchanged greetings, and they immediately started to make formations and move to songs that had lyrics. At first, like a warm-up, the movements were big and active similar to gymnastics. The whole sequence was very exciting. I noticed the difference of their “Basic Movements” from the “Assorted Movements” of elementary level students that I saw in 2010 at Nishi-Tokyo Korean 1st Elementary and Junior High School. Also, I could sense the hybrid quality of the Joseon dance when the students applied what I believed to be rosin on their shoes or when the teacher used ballet terms like plié. These extracurricular classes are led not by professional teachers who majored in the arts. Instead, they are taught by regular teachers based on their experience in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Still, the students are usually very enthusiastic and committed to these classes which last about 1.5 hours after school, and sometimes they rehearse even on weekends at the school if the annual competition is approaching, which takes place each fall. All Korean school(Joseon school) in Japan in the country take part in the competition, and the competition is between schools and not individuals. The students who participate represent their schools. What impressed me the most was the excellent skills of the students. This collectivistic philosophy of education has been creating a voluntary and participatory environment in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where competent students help out relatively less skilled ones. This tells us something about dance education in Korea, where there is such an intense competition between individual students for college entrance. I also remember that we had quite a few moments of confusion. Our questions kept expanding, but without any clear resources on Joseon dance, we could only rely on the individual experiences of Zainichi dancers to vaguely find out about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Sometimes it took time to understand the concepts or words used by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nd we would go through a process of intense investigation as well as repeated checking and questioning to see if our understanding was correct.
[Meanings I discovered from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What was the most meaningful about this journey was to experience a change and expansion of the three researchers’ thought and perspective during the 5 months. Looking at the dance of the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however faintly, and imagining Joseon dance through our only available method, that is, non-contact meetings (interviews) with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nd visit (extracurricular classes), it became clearer to me how limiting it can be to only have half of a perspective in the context of a divided country. Therefore, we couldn’t help but consider, under the theme of “migration of dance”, from and to which place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migrated and also the roots of North and South Korean dances that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refer to. The direction of research we considered was neither about comparing Korean and Joseon dances nor going over a dance history; it was intended to experience and take a look at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under the title of “migration of dance”. However, learning about their dance inevitably required an understanding of their identity and to understand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lso needed knowledge on Joseon dance. Meetings with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brought about clashes of our pre-existing views or concepts, and numerous questions seeped through those gaps. Below are part of our conversations(Kakaotalk messenger) related to such questions.
(Lim Jee-Ae) “Perhaps it is a mistake to deal with North Korean dance through the concept of ‘migration’? Although it is not crucial in this research to define it, but I think it’s important to be aware of this vagueness. From my perspective, Joseon dance is a dance that ‘moved’ and that’s because of Choi Seunghee. She moved from the South to North and after the division of Korea, Korean dance and Joseon dance were developed and passed down in respective systems. Then, can we say that Korean dance developed while staying, whereas Joseon dance developed as it migrated...?”
(Son Okju) “I think Joseon dance of North Korea, which was developed mainly by shinmooyong (“new dance”) artists, may be actually closer to the notion of dance that really came to the fore in the modern age. North Korean regions must have had their own folk dances but wouldn’t they take on a completely different context from the systemized Joseon dance? What I’m interested in is when a specific style of dance gains a representative quality - even though the North and South
Korean dance (the dance culture of the Korean Peninsula) is essentially multiple (and there is an importance of historical development in that sense).”
(Hong Jungah) “Would it be that as the notion of dance was introduced in the modern age, Bac Ishii and his student Choi Seunghee, who performed shinmooyong for the first time, came to have the representative status of North Korean dance? And Han Seongjoon gained the representative status of Korean dance when he adapted and integrated traditional dance and created a form that fits the now different space of dance? It would be great if there is a clearer understanding of it and a discourse about what gives that status. Going through the same confusion as Lim about the migration of dance, I suspect my perspectives have been blocked by geographical limitations.”
In the situation where we could not get any clear answers to these numerous new questions, confusion would increase or things came to a standstill on some days. But I also felt relieved because asking these questions already shows the real value of our research. It is also encouraging that all this process will be reinterpreted by Lim and become a part of her “creation” as the practical aspect of this research.
[Discoveries from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When I saw the book Akhak Gwebeom (“musical canon”) during our interview with Jo Hyemi, which she brought from North Korea, I became hopeful for the traditional culture and arts in North Korea, which were eliminated in its history. New questions came up: “Are there traditional arts in North Korea that are preserved and passed down as well?” “How did the remaining traditional arts and culture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early North Korean dance?” Also, I noticed and felt the necessity of research for some unique qualities of art and artists of socialist countries. [At the end of the journey of Migration of Dance] We started our project to research on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and found that it was closely connected to their life, and in a way it was a survival method by asserting their existence in the geographical space of Japan. Encountering the “life” and “existe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who constantly and urgently felt the need to define their identity in a place where they are born and raised, I have decided to look at not only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but also the stories of Joseon dance and the dance of Korean diaspora and document them “as they are” beyond the paradigm of right or wrong. In this Migration of Dance research, it was valuable to have been able to stay open to new possibilities without prejudice and take the steps we took through our collective questions and discussions. I’d like to finish this essay with some of my new hopes at the end of this journey.
— I hope that the conversations and interactions from the online interviews were an opportunity to widen the perspectives of one another and become flexible. I hope that we can continue to move forward together in dialogue and discover new questions and experiences with curiosity about one another. I also hope that the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will be able to create their own unique dance culture. The dance of Zainichi Koreans(Koreans in Japan) not only aims to
improve techniques and artistry but also aspires to reclame their identity through the origin of the dance. It could be that while they are dancing, they have an experience as if they are living and moving in their motherland (South or North Korea). No matter which category the dance they experience belongs to, it is my hope that a dance culture that suits their own cultural circumstances within the Zainichi community will be able to blossom in a healthy way, along with their efforts to preserve the dance they learned and experienced from childhood. Also, it is my hope that they can wisely use the unique advantage of being able to travel both to North Korea and South Korea, and play a role as an important bridge in the “genuine” reunification process that they want.
— I hope that further research based on this project will develop towards the direction of co- dependent participatory practical research with the Korean diaspora and that there will be an opportunity for a collective research on North and South Korean dances in near future. Between the North and South, there have been a few one-time performances or events but no opportunity for ‘process-oriented project’ based on continuous exchange and research. I hope we can take a step further from a superficial mention of the concept of reunification and achieve a process- building practice of collective imagination with the North and South Korean people as well as the Korean diaspora, as there is no outcome without process.
Running through each life like a thread is a question that you come to answer. You’re lucky to find it. The question is far more important than the answer.
— Carl Jung (Interview with Joanna Macy, from Joanna Macy and the Great Tu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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