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2
◌ 조혜미, 임지애, 손옥주, 홍정아
>재일교포 4세 무용수 조혜미 선생님과의 대화
대담자 조혜미(이하 ‘조'), 임지애(이하 ‘임'), 손옥주(이하 ‘손’), 홍정아(이하 ‘홍')
손: 저는 공연 연구하는 손옥주라고 하고요. 지금 임지애 안무가님 리서치 작업에 리서처로 같이 참여하고 있고 이번에 조혜미 선생님 뵙게 돼서 반갑고 좋습니다.
조: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홍: 안녕하세요. 저는 홍정아고요. 춤 만들고 연구하거나 기획하는 소소한 일들을 하고 있고 지애님과 이번에 프로젝트 같이 연구하기 위해서 조혜미 님 영상도 봤고, 그래서 반갑고 익숙한 얼굴을 보는 것 같아요. 오늘 같이 인터뷰하는 거 너무 기대되고 반갑습니다
조: 네, 감사합니다.
임: 연습실이시네요, 선생님?
조: 지금 연습실이에요.
임: 저 공간이 선생님 집에 있는 연습실이에요. 너무 좋죠.
조: 1층이 연습실이에요.
임: 레슨도 하시고.
조: 비좁긴 하지만 여기서 레슨도 하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공연, 레슨이 많이 취소되고 없어지고 하니까 한국에서 좌욕이라고 하나요? 그것도 여기서 할 수 있게 준비했어요.
언제부터 이런 프로젝트 연구를 하셨어요?
임: 춤의 이주에 대해서 연구 시작하고 공연 만들기 시작한 건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부터였고, 조선춤에 대해서 리서치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궁금한 것도 많고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모시게 됐어요.
조: 제가 도움이 된다면 답할 수 있는 건 뭐든지요.
임: 저희가 선생님 영상을 보고 궁금했던 내용들이 있어요. 평양에서 3개월 체류를 하셨을 당시 배우셨던 조선춤에 대한 경험담 위주로 질문을 드릴게요.
선생님도 조선학교와 전문 무용단, 이렇게 거쳐오신 거죠.
조: 네.
임: 처음에 조선무용 배우시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조: 저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조선학교에 다녔어요. 조선학교는 4학년이 되면 소조라고 해요, 한국에서도? 소조 활동으로 조선무용, 노래, 축구, 농구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데 제가 조선무용 선택한 계기는 사촌언니가 오사카의 조선무용연구소에서 조선무용을 배울 때 발표회를 하면서 보러 오라고 초대를 해서 처음으로 무대에서 조선무용을 봤는데, 그때부터예요.
홍: 그때가 몇살이셨어요.?
조: 초등학교 3학년이니까 8살. 한국나이로 9살?
임: 일찍 시작하셨네요.
조: 네, 그걸 보고 왠지 모르게 나도 그 춤을 추고 싶다고 느껴서 무대를 본 후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막 춤추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4학년이 돼야 소조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땐 아직 3학년이었고, 4학년 들어가서 초중고등학교, 미친듯이 춤을 계속 췄죠.
임: 조선학교에서 춤, 축구 여러 가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선택하면 취미로 배우는 거예요, 아니면 나중에 축구 선수가 된다거나 선생님처럼 전문 무용수가 된다거나 진로를 결정하는 건가요?
조: 여기 조선학교 다니는 재일교포들 중에 축구 선수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만큼 수준이 높다고 해요. 왜냐면 학교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있는데 수업 끝나면 매일 2시간은 연습을 하고 일요일도 연습, 그리고 방학에도 추석과 설날 외에는 계속 연습이에요. 그래서 거의 집에 없어요. 학교 나가서 춤 배우는 애들은 춤 배우고요. 그리고 1년에 한번 가을에 전국 조선학교의 경연대회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경연대회를 향해서 초중고등학교 전부 매년 연습하고 경연대회 나가고, 다시 다음 해에도 연습하고, 계속 그렇게 해요.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진로 강습이라는 게 있는데, 그냥 진학을 할지 아니면 조선무용을 하던 애들의 경우는, 일본 전국 각 지방에 조선가무단이 있거든요, 도쿄 중앙에는 금강산가극단이 있고요. 거기서 조선무용수가 좀 없으면 들어오라, 그런 인원이 해마다 설정돼 있어요. 그래서 저도 고등학교 2학년 진로 강습 때 조선무용수가 좀 모자라서 조선가무단에 조선무용수로 입단하는 걸로 확정이 된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임: 오디션을 보신 거예요?
조: 예예. 일단은 그런 조선가무단 언니들이 와서 면접도 하고 우리 춤도 보고 그렇게 해서.
임: 조선학교는 나가타 지역에서 나오셨어요?
조: 전 교토예요. 전 이 그룹에 오기까지는 주욱 교토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교토조선제2초급학교, 교토조선제2초중급학교, 교토조선중고급학교를 나와서 교토조선가무단에 입단했습니다.
손: 가무단에 입단하실 때 일종의 오디션 보셨다는 거잖아요. 그때 어떤 춤을 추셨어요?
조: 조선무용기본동작을 췄을 거예요, 아마도. 초등학교 때 배우는 조선무용기본동작이라는 게 있고 중고등학교, 성인이 배우는 조선무용기본이 있거든요. 경연대회 준비할 때도 그걸 계속 연습하고요. 그리고 작품이 있었을까, 작품은.. 그리고 가무단 언니 선배들이 고등학교 때 가르치러 오시거나 했기 때문에 그때 저희 춤도 보고 가셨을 거고요, 무슨 작품을 춰라 뭐 그런 건 없었어요.
임: 이미 선생님들, 언니들이 많이 봐 두셨겠네요.
조: 네. 그런데 조선무용기본동작도 몇 년 쯤 됐을까, 몇 년 전에 최승희조선무용기본이 됐어요.
조: 그전엔 ‘조선무용기본동작’이라고 해서 배웠는데, 그것도 최승희 선생님의 원조 춤 스타일로 구성되었는데 그게 조금씩 개량된다고 할까, 원래의 느낌이 좀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다시 재구성이 좀 되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배웠던 조선무용은 한국전통기본보다 움직임이 조금 빠를 거예요. 그런데 새로 재구성된 최승희조선무용기본은 이제까지 춰왔던 조선무용 기본보다 조금 느린 호흡으로 추어야 된다는 게 아마 중심이 되었든지. 기본이라고 해도 우리 같은 해외 교포는 같으면 춤을 동영상으로 보는 게 많잖아요. 지금은 평양이나 북한에서 일본에 왔다 갔다 못하지만 옛날엔 아직 왔다 갔다 할 수 있었고 평양 선생님들도 우리 고등학교 시기에는 와서 가르쳐주시기도 했어요. 그러면 그때 느껴지는 감각이 있지만 일본 정세가 북한이랑 좀 나빠지거나, 또 지금은 일본에 거의 못 들어오고, 가는 것도 오래 못 가니까 동영상으로만 계속 연구를 하면 그 기본의 호흡 같은 게 뭐랄까 (호흡보다는) 속도나 모양새, 더 빨리 돌고 발도 떼고 그런 게 더 중심이 되는 것 같으니까 아마 그런 것도 문제였든지.
그리고 이런 말도 들었어요. 평양에 최승희 선생님 유파, 그리고 다른 선생님 유파가 있어서 이번에는 이쪽이 강했다, 뭐 그런. 그런데 재일교포들은 너무 복잡해요. 항상 그게 바뀌면, 우리도 해외에서 가르칠 때 어느 쪽에 죽을 맞춰야 되는지. 그건 평양, 북한의 사정인 건데 우리 재일교포들은 좀 당황스러웠어요.
임: 아, 북한에 최승희류 말고 다른 류가 있나 봐요.
조: 네, 무슨 무슨 류가 한국처럼 많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그때 정세에 따라서 어느 쪽이 강하고, 그런 게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걸 알려면 저도 선배들한테 물어보거나, 또 조선가무단 후배가 아직 지금 현직으로 있기 때문에 – 2·16 예술상 아세요?
홍: 네, 논문에서 많이 봤어요.
조: 아, 그래요? 거기 출연한 후배를 제가 잘 아는데 그 애가 한 2-3년 전이었을까 2·16 예술상을 받기 위해서 1년 동안 평양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훈련을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 정세라고 할까 (그런 걸 잘 알 거고) 제가 갔던 건 2000년도였거든요. 그때보다 우리나라 북조선도 많이 발전도 했을 거고, 그런 것들은 다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손: 말씀 듣다 보니까 궁금해진 게 있는데, 그럼 조선학교에서 조선무용기본을 배우실 때는 책자 같은 게 있었나요, 아니면 그냥 춤을 가르치셨던 조선학교 선생님들께서 책이나 영상 없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교습을 받으셨어요?
조: 학생들은 책이나 동영상이 없어요. 그냥 선생님이 앞에서 장구 치면서 가르치시는 걸 기억하는 건데, 제가 조선가무단에 들어가서 그런 동영상이나 자료를 찾게 됐죠. 찾게 되기도 했고 그런 자료가 너무 없어서 평양에 있을 때도 그런 자료 찾기를 많이 했는데 그런 음악무용연구소인가, 조선민속 관련 연구소가 있는데 거기서 책이나 그런 걸 몇 권 가져온 건 있어요.
임: 아, 평양에서요?
조: 네. 제가 최승희 선생님에 대해 좀 많이 알고 싶어서 북한에 있을 때도 찾았는데 이런 거예요. <우리나라 민속 무용의 특성>. 또 북한이 지금은 아닐 건데 우리가 갔을 때는 종이도 이랬었어요. 공책이나 그런 것도 하얀 종이가 없고. 이건 <음악 무용 작품들의 주체사상>. 이런 것이나..
임: 그 책도 최승희 선생님이 쓰신 거예요?
조: 최승희 선생님이 쓰신 거는, 잠깐만요. 저도 오랜만에 보니까. <우리나라 민속무용 개관>이나 <민속무용 발전의 역사적 고찰>, <민속무용의 일반적 특징>, <민속무용의 계승 발전>, 좀 역사적인 그런 거나. 이건 최승희선생님이 쓰신 건 아닐 거예요. 누가 썼나. 리순정 박사? 예술교육출판사, 이렇게 돼있어요.
조: 제가 갔던 시기 전까지는 판소리 같은 거, 그 이전까지의 교방이나 기녀, 궁중무용, 그런 것이 있었을 건데 주체사상, 주체예술이 생기면서 그런 걸 안 하도록 했답니다. 없애기 위해서요. 그리고 전쟁 이후라 인민들의 활기를 올리기 위해서 음악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문화 선전대 – 민요 가사도 사상적인 것으로 바꾸거나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옛날의 고전적인 전통 있긴 있는데 없앴던 거죠. 그래서 제가 갔을 때 가르쳐주신 장구 선생님이 계시던 민속음악무용연구소인가 거기서 그런 옛날 선생님들을 찾는 활동을 하고 계셨어요. 명인들을. 우리 선생님이 그런 걸 찾으시면서 그쪽에서 들려주신, 가야금 하시는 선생님들의 테이프 같은 걸 들으면 거의 역시 한국이나 다름없는 예술이었어요.
임: 그런 걸 연구하시는 분이 북한에 계시는군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전통을 없앤건데, 지금 이렇게 연구하시는 분들은 공식적으로 하시는 건가요?
조: 그건 아마도 나라에서 그렇게. 제가 갔을 때가 김대중 대통령이랑 김정일 장군님이 만났던 615북남공동선언, 그때거든요. 2000년도. 그래서 그런 남북한이 서로 뭐랄까 유연화, 그런 때여서 그런지 (그런 전통을) 없앴던 시기부터 찾아야 된다는 그런 의식으로 바뀐 시기였던 것 같아요.
홍: 그럼 그때가 최승희 복원사업이랑 시기가 겹치나요?
조: 아. 최승희 선생님은 - 한국에서는 최승희라는 이름도 내면 안 되었죠, 맞아요?
홍: 아니요.
조: 아니에요? 괜찮았어요.?
홍: 네.
조: 우리는 그냥 최승희 선생님의 따님 안성희 선생님이나 그런 선생님의 제자? 이름이 뭐였을까, 백… 이름을 까먹었는데 그런 선생님들도 계속 계시니까, 항상 이 춤은 누구누구 선생님의 춤이다, 라는 식으로 우리는 알고 있었긴 해요.
홍: 아, 알고 계셨다는 게 조선학교에서 최승희선생님 춤이다, 이렇게 배우셨나요?
조: 그때는 아니었어요. 쟁강춤은 쟁강춤 (이런 식으로). 제가 졸업해서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찾아가면, 선생님한테 물으면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조선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거기까지 모를 거예요. 조선학교에서는 조선무용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르치니까, 선생님들이 전문가가 아니라서.
임: 아,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르치는 방식이군요..
조: 네, 전문가는 아니에요. 그래서 경연대회가 있을 때에 전문 가극단이나 가무단 선배, 선생님들을 불러서 지도를 받거나 그런 식으로 배웠어요.
임: 북한 방문 이전에 조선춤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가 어떠셨어요?
조: 아까 얘기했던 그 사촌언니가 추는 춤을 본 게 처음이라서, 그냥 화려하고 환하고 화려한 느낌? 밝고. 실제로 춤을 추고 나서는 어땠나. .아무튼 환희? 환한 느낌. 초등학교 시기에는 주체예술적인, 사상적인 거는 없었어요. 중학교도 사상적인 건 별로 안 하는데 – 아, 하나? 경연대회에서 조선무용기본의 심사가 있고 군무, 중무나 독무, 군무도 창작이나 기성작품. 기성작품들은 장고춤이나 민속무용, 소고춤. 그런 게 많은데 창작으로 가면 조선학교는 일단, 지금은 좀 아니지만, 우리 시기는 주체예술이라 할까 주체사상도 배웠고 일반적인 재일교포의 역사도 배웠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주제로 한 춤을 만들어야 했어요.
임: 아, 창작할 때요?
조: 네. 장군님, 그런 춤도 췄고 그런 걸 추면 점수를 좀 딸 수가 있거든요. 초등학생 시기는 그런 생각 없이 음악, 장단에 맞춰서 춤추는 게 그냥 신나고 그랬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되면 그런 사상이 들어가니까 같이 추는 학생? 청춘이라 할까 그런 걸로 했지만 지금은 저는 주체예술은 좀 별로예요. 별로예요, 라고 말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주체예술을 추게 되면 서양 발레나, 가슴부터 위를 올리는 스타일이 되거든요. 장군님을 본다 할까 위로 이렇게 본다고 할까 그런 경향이 있어서 저는 그런 것보다 탁 잡는 민속춤의 풍이 좋아요.
임: 혹시 조선학교에서 발레나 서양 무용 같은 걸 훈련하기도 하나요?
조: 네, 해요. 조선무용 배울 때는 연습을 두 시간 하는데 한 시간은 발레예요. 그런데 발레라 하더라도 발레 전문 선생님이 하는 게 아니라 아까 전문가가 아니라고 했듯이, 플리에, 탄듀, 그랑바트망, 그런 거 다 하긴 하는데 발레의 전문적인 신체능력이라 할까 그런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순서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에요. 전문 발레 용어나 포메이션을 알긴 하지만. 조선무용을 추기 위해서 왜 그걸 해야 하냐면, 딱 축을 가져야 되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그래서 플로어에서는 별로 안 해요, 그냥 뛰는 것만. 그런 다음 조선무용 기본 한 시간. 기본 걷기나 돌기, 사선돌기, 잦은 발, 그런 훈련을 하고 경연대회가 있으면 작품 연습하는 식. 그러니까 훈련의 기본은, 반은 발레, 반은 조선무용기본. 초등학교 시기부터 훈련을 이렇게 계속 해왔어요. 가무단에 들어가서도.
임: 조선학교 얘기로 돌아가서, 창작 작품을 할 때는 선생님이 안무하시나요?
조: 네. 그래서 선생님들이 진짜 힘드셨을 거예요. 담임도 해야 되고, 전문적인 것도 아닌 그런 춤 창작도 하고. 그것도 그저그저 창작하는 게 아니라 그 정세에 따라서, 혹은 북조선에서 매년 올해는 뭐, 아까 말한 2000년도 같으면 옛날의 그런 (예술을) 다시 되찾는 활동을 해라, 그런 지시가 나라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 지시에 따라서 그 방향 같은 걸 넣으면서 창작을 해야 되니까. 아까 점수를 따야 된다는 한 건 그런 점에서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치마저고리 자르는 그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춤을 춘다든지 혹은 북한에서 수재, 비가 많이 와서 – 그걸 수재라고 해요? 그런 걸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는 것이 있었다면 그런 걸 좀 표현하고 ‘모금활동을 해서 북한에 보냈습니다’ 하는 그런 춤을 추거나. 선생님들이 그런 걸 짜서 춤을 (만들어요). 그런데 민속무용도 창작을 해요. 그런 것은 자기가 못하면 전문가로 하시는 가무단 선생님한테 의뢰를 해서 창작을 부탁하는 선생님들도 계셨고. 그렇게 해서 배워왔습니다.
임: 창작할 때 그런 스토리를 넣기도 하는군요.
조: 네. 초등학교 시기 같으면 이런 게 많았어요. 큰 교과서를 대도구로 만들어서, 교과서를 열면 아야어여오요우이 자음 모음이 나오고 학생들이 ‘ㄱ’ 자, ‘ㅏ’ 자 더하기 해서 춤을 추거나 하는 것들도 (있어요). 초등학교 시기는 그런 작품이 많았어요.
임: 고등학교 올라가시면서 사상적인 부분이 생길 때 혼란스러우셨나요? 어떠셨어요?
조: 조선학교를 졸업하면 조선대학교에 나가서 교사가 된다, 혹은 조선 어디 일꾼 - 일꾼이라고 아세요? 조총련 같은 단체에 가서 돈 벌거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일꾼이라고 해요). 그런 사상적인 측면으로 더 가고 싶다는 사람이나, 그런 거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체계로 나가는 (사람), 이렇게 갈라지거든요. 나는 사상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조선대학교에 그냥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뭐라 할까 권유? 그런 게 있었지만 저는 그냥 편하게 춤을 추고 싶었어요. 그냥 좋아하니까. 그런데 조선가무단에 속하면 또 문화예술선전대인 거예요. 그걸 몰랐고 저는 그냥 춤을 추고 싶어서 계속 춤을 출 수 있다, 춤을 추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취직하는 생각으로 (입단)했지만 문화선전대, 음악이나 춤을 통해서 동포들에게 사상이랄까 민족의 그런 걸 전달하는 예술선전대라는 걸 알고는 좀 - 일본에서 그렇게 조선가무단이나 금강산가극단의 의미나 뜻도 있기 때문에 그게 나쁜 게 전혀 아니고. 그냥 제가 그 사상은 좀 별로 아니었어요.
임: 조선가무단에 얼마나 계셨어요?
조: 전 3년이요. 원래는 더 있고 싶었는데 평양에 있을 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리를 다쳤거든요. 헤르니아라고 해요, 한국에서? 허리뼈가 신경 부분이 이렇게 튀어나와서.
임: 아, 디스크.
조: 네, 그거. 고등학교 1/2학년 때 주인공을 받아서 계속 아침 연습을 하는데, 후배들이랑 다같이 하는데 그 작품을 그냥 계속 비디오로 동작을 보면서 훈련을 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그냥 우리끼리 연습해라, 그런 스타일의 선생님이라서 원래는 근육을 붙여서 훈련을 해야 되는데 그냥 훈련을 계속 했기 때문에 저만 아니라 후배도 몇 명 그렇게 허리를 다쳤거든요. 허리를 다쳤지만 춤이 좋아서 계속 춤을 춰왔는데 평양에서 석 달 동안, 한 달 반은 조선무용기본, 한 달 반은 독무 작품을 배워요. 그래서 한 달 반 전수를 받다가, 우리 선생님이 춤을 계속 이렇게 추면 허리가 더 아프게 된다고 저한테 조선무용수로 활동하는 걸 그만두라는 지시를 내리셔서, 저는 남은 한 달 반 동안 장구춤을 배우고 싶었는데 배울 수가 없었던 거예요. 조선가무단도 나라에서 그런 지시를 받는 곳이니까 이제 조혜미는 조교토조선가무단에 돌아가면 조선무용수가 아니라 뭐 성악수라 할까, 다른 전공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린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게 싫다고 아프더라도 배우고 싶고 더 연구하고 싶고 지금 아파도 좋아지면 춤을 출 수 있는 거니까 계속 선생님이 돼서 가르쳐 달라 해서 연습실에 가도, 선생님은 왜 여기 왔냐고 나가라 해서 선생님이 그때 비파단가극단 배우 선생님이었는데 무용만이 아니라 장구나 성악, 노래하는 선생님들도 유명한 분들이니까 다른 걸 배우러 가라 해서 저를 못 들어오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저희 조선가무단 단장님한테는 이제 조선무용가가 아니고 전공을 바꾸겠습니다, 그런 지시가 내려왔고 그런데 저는 일본에 돌아가는 게 싫었기 때문에 거기서 한 달 반 동안 장구 그리고 민요를 배웠어요.
임: 아, 그러셨군요.
조: 네, 그리고 그 석 달 동안에 중간 발표회, 본 발표회 - 북한의 선생님 심사위원들 앞에서 배운 것들을 하는 공연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전 한 달 반 동안 기본을 배웠는데 - 아, 본정화다. 본정화 공연 때는 치마저고리 입고 노래를 했어요. 노래 그런 건 한번도 해 본 적 없는데 그냥 나머지 기간 동안 그런 민요를 (배웠어요). 노래는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는데 조선무용수로 가서 왜 노래를 해야 되냐고 계속 반항을 했지만 나라에서 그런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어떻게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에 돌아와서는 조선무용수로 춤을 출 수 없으니까 그때 배우던 장구나 노래 같은 걸로 공연에 나가는데 저는 조금 배운 것으로 무대에 서기가 싫어서, 한다면 장구 같은 것도 더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선가무단에 있을 때 도쿄 쪽에 사물놀이하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 선생님한테 사물놀이 장구를 배우러 갔어요. 그때부터 저의 인생 속에서 한국이라는, 한국문화라는 걸 처음으로 만나게 된 거예요. 우리 조선학교에서는 북한에 대한 건 가르치지만 남조선, 남한은 역사로 조선 지도 같은 걸 배우긴 배우지만 현재의 정세 같은 것은 전혀 몰랐고 지금처럼 한류 같은 것도 아직 (등장한) 시기가 아니니까 그냥 몰랐고, 그때 처음으로 사물놀이 선생님한테 가르침을 받고 한국무용이나 그런 것들의 존재를 알게 됐죠.
손: 사실 조혜미 선생님이 처음 다녀오신지 20년 가까이 지나서 지금은 편안하게 덤덤하게 말씀하시지만 그때 당시엔 정말 억울하셨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배운 경험이 어떻게 보면 그냥 포기돼야 하는 게 너무나 안타까우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선생님께 저희가 차차 여쭤보고 싶었던 부분은, 2000년에 남북한의 화해 모드 안에서 북한 방문이 가능하셨던 것 같은데 그때 가시게 된 계기랄까요? 그리고 처음 가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듣고 싶어요.
조: 조선학교를 다니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을 평양으로 가요. 지금 학생들이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저희 시기는 그랬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조선에 원산이라는 곳에 배가 항상 나가 있었는데 그 배의 이름이 만경봉호라고 하거든요. 만경봉호 안에 선원들은 다 북한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옛날 조선가무단이나 금강산가극단이 생길 때는 옛날 선생님들이 그 만경봉호 속에서 춤이나 가야금이나 그런 걸 배웠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만경봉호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니까 수학여행도 가능했는데 수학여행으로 처음 갔을 때는 한 10일 동안 역사적인 식민지, 전쟁 때 역사박물관 그런 것을 찾아가거나 주체사상탑 등 관광을 위주로 갔는데 조선가무단 시기는 3개월 동안 거기서 살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갔을 때는 그냥 우리나라라는 게 이런 곳이다, 그렇게만 느끼고 그냥 어디 여행 가는 것, 제가 한국에 처음 가는 것과 비슷했는데 3달간 살다 보니까 일본에서는 평양이나 조선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매스 미디어에 내보는 것들로 이미지를 갖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아빠엄마들도 그렇고요. 그때는 그래서 가지 말라는 소리도 마니 들었거든요. 납치나, 뭐 그런 것도 그렇고 가서 못 돌아오게 되면 어떡하냐, 전쟁 일어나면 어떡하냐, 그런 걸로 아빠엄마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전 그냥 전문적으로 본국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이때 밖에 없는 거니까 간다고 해서 갔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연습인데 거기서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어요. 항상 우리를 관리해주는 지도원이라는 가이드 같은 선생님이 계세요. 그 선생님들이 우리가 어디 가는 것을 다 관리를 해주시고, 매니저 같은 분. 그래서 연습실이나 필요한 게 있어서 어디 갈 때도 항상 배지badge를 붙여야 돼요. 그런데 그 뱃지는 (보면 아마) 우리가 해외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 거예요. 전 어떤 배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붙여야 돼요. 안 붙이면 못 가요. 처음엔 그게 익숙해지지 않아서 좀 불편한 느낌. 일본에서 사는 것이랑 다르니까. 그런데 살다 보니까 적응이 되고 저는 평양호텔에서 석 달간 있었는데 호텔에서도 층 어머니라고 해서 우리를 돌봐주는 어머니가 계시거든요.
임: 춤 어머니요?
조: 1층, 2층 각 층에 층 어머니가 계세요. 우리가 연습하고 있으면 그동안에 방청소를 해주시거나 돌아오면 ‘연습 잘했냐’ 하는 식으로 돌봐주시는 엄마 같은 분이 계세요. 석 달 동안 항상 매일 얼굴을 마주 보니까 평양이라는 이미지라 할까, 조선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그냥 사람이다. 우리보다 정보가 적고 그냥 일요일이면 대동강 나가서 기타 타고 손풍금 하고 노래 부르고 그렇게 즐기시는 생활 스타일이니까 아주 원시적인 사람? 뭐라 할까요,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다른 정보가 없으니 아주 순한 그런 사람들로 보였거든요. 우리 선생님들도 그렇고 싫은 건 싫고 게을러지고 싶을 땐 게으르고, 그게 재미있있어요. 주체사상에 맞게 다 만세 같은 거 하고 장군님을 위하여, 조선을 위하여, 이런 이미지가 많았는데 가면 우리보다 더 원시적인 사람이라 할까. 북남공동선언이 있었던 해니까 일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랑 김정일 장군님이 얘기하는 그런 동영상도 많이 봤고 그랬지만, 제가 가니까 사람들이 김정일 장군님의 목소리가 어떤 목소리였습니까? 이렇게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하늘 위의 사람? 본 적도 없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그런 사람이니까 우리보다 현실적이지 않은. 그게 나는 되게 놀랍고, 내가 또 하나 놀란 게 평양 사람들은 - 우리는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 밥 먹었어요? 뭐 이렇게 물어보잖아요. 그런데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하면서 처음으로 만나면 ‘무슨 악기를 탈 줄 아세요?’ 이렇게 해요. 김정일 장군님이 예술을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거든요. 평양에서 살기 위해서는 무슨 예술에 재주가 있어야 돼요.
임: 너무 흥미로운데요.
조: 네. 예술 재주가 있어야 되니까 모두 다 피아노, 기타, 손풍금, 노래, 춤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임: 다룰 줄 아는 예술이 있어야 하는 거네요.
조: 네. (안 그러면) 평양에 못 들어와요.
임: 와, 그럼 그분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신 거예요? 아니면 개인적으로 배우시는 거예요?
조: 어떻게 배우셨는지는 저도 모르는데, 한국 뉴스에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조선노동당 몇 주년 행사, 마스게임, 횃불 행진 같은 거, 춤 추고 뭐 그런 게 많잖아요. 그건 평양 시내 사람들이 다 해요. 평양호텔에서 잘 때 아침 5시 쯤 되면 막 시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바깥에 보면 그냥 도로에서 몇 십 명, 몇 십 명이 아니고 몇 백명이 부채 가지고 뭘 연습하거나 다같이 훈련하세요.
임: 일반 사람들인데 그걸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거죠?
조: 네. 평양 시민들은 할 줄 모르면 안 돼요. 해야 돼요.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이 가르치러 가시는데 하는 사람들은 다 평양 시민들. 그러니까 제가 민요 배우던 선생님의 아드님도 횃불 행진을 매일 아침 - 아침이 아니라 횃불 행진이니까 저녁에, 밤에 연습해야 되는데 갈비뼈가 부러지고, 뭐 그 정도까지 훈련을 하니까 싫어한다고, 저한테 그런 소리도 하셨고.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나 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우리 이미지 같으면 그런 말을 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하는 건가 싶었는데 ‘하기 싫다’ 뭐 이렇게 하면서 계속 연습을 하고. 나라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모두. 층 어머니들도 같이 나가서 춤추고 연습을 하십니다.
조: 중간 정화, 본 정화에서 내가 무용수인데 민요는 하기 싫다고 울고 불고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도 그냥 사정을 알기 때문에 나를 위로해주고 싶지만 나라에서 해외교포한테 지도를 하고 성과를 보여야 하는 입장이니까 ‘너도 이해해라. 해서 그냥 하고.
임: 나라에서 지시했다는 게 북한에서 지시한 거예요?
조: 네, 죄송해요. 북한에서 지시를.
임: 방문한 단체가 어떤 단체예요?
조: 우리 같은 해외교포를 위한 예술센터가 있거든요. 그니까 조선무용을 하는 우리 해외교포 단체를 위한 수준의 교육을 하고 의상 같은 것도 제공하고 우리가 조선무용 하는데 의상을 만들 때 주문을 하는 그런 예술센터가 있거든요. 거기에다가 조선가무단에 입단하고 2년 째가 되면 강습을 받으러 석 달간 반드시 가야 돼요. 지금은 아마 한 달도 못 가요. 우리 시기는 아주 좋 았기 때문에 석 달간 아침저녁 계속 할 수 있어서 그만한 배움이나 생활, 그 속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들도 많았는데. 선생님들도 거기 배치되고 성과를 내야 내년에도 다시 그런 일을 받을 수 있다고 할까, 그런 식으로 하시기 때문에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서는 정말 친한 엄마나 그런 느낌으로 나를 돌봐주시긴 했지만 이것도 하나의 의무로 봤을 때는 엄하게 하시고. 선생님이랑 하기 싫다고 싸우기도 했어요.
임: 북한에서 주로 기본만 배우셨어요, 아니면 레퍼토리도 배우셨어요?
조: 전 그러니까 결국 기본을 배웠죠. 작품들은 그냥 조선가무단에 있을 때. 공연에서 무대에서 추기 위해서 선배랑 같이 배우고 그랬었어요.
임: 어떤 기본을 배우신 거예요.
조: 아까 말씀드렸던 그런 조선무용기본이고요. 그리고 그때는 또 새로운 기본 동작이 있어서 이름이 뭐였는지는 자료를 봐야 아는데, 좀 새로운 동작이 있어서 녹두리나 뭐 몸을 쓰는 데 새로운 동작이 있어서 그런 기본들을 추가로 배우거나.
임: 그 기본을 평양에서 배우실 때와 일본에서 조선학교나 무용단에서 배우실 때 다른 부분이 있었나요?
조: 조선학교에는 경연대회가 있잖아요. 그럼 조선무용기본의 경우 각 지방에서 같은 걸 추는데 다 틀려요. 그런데 조선말, 우리말도 있잖아요, 다 조선학교에서 같은 시기에 배우면서 초중고 다니는데 일본의 지방 사투리가 그 말에 억양에 나와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한국에서 일본어를 배워서 얘기할 때 부산 사람 같으면 부산 사투리의 일본어예요. 그런 것처럼 조선학교가 각 조선말을 쓰는데 일본어 사투리가 그 억양에 나와요. 우리 같으면 선생님 – 한국 사람이면 어떻게 하죠, 선생님을. 일본 간사이 같으면 선생!님 이렇게 해요.
임: 억양이 다르네요.
조: 네, 일본어 센!세 처럼. 일본어를 그냥 한국말로 바꾸니까 그때 우리는 한류 드라마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들도 2세, 3세가 되기 때문에 언어는 있다 하더라도 1세 분들의 말을 못 들어봐서 그냥 일본어를 우리말로 바꾼 거니까 억양은 일본어예요. 그래서 조선학교에서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기 때문에 달라요. 춤도 마찬가지로 그 성격이 다 나와요. 간사이 지역은 좀 세고, 그런. 다 똑같은 걸 해도 그런 점에서 다르기 때문에 조선가무단이나 금강산가극단에서 하는 전문가 선생님들이 평양에서 원조를 똑바로 배우고 그 일본 억양이 없도록 가르치는 게 중요했어요.
홍: 제가 알기로는 그 기본춤이 3차 개편 됐다고 알고 있거든요.
(접속 끊김)
(…)
(재접속)
홍: 제가 질문 드리다가 끊겼는데요. 조선기본춤이 다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선기본춤이 여러 차례 개편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조: 네.
홍: 그렇게 개편이 된 춤마다 좀 다른 건지 궁금하고, 지애샘 질문처럼 조혜미 선생님께서 조선학교에서 배우던 기본춤, 그리고 북한에서 배우는 기본춤, 조선가무단에서 배우는 기본춤이 개편 시기마다 달라졌는지 등이 궁금했어요.
조: 개편 됐을 때 중앙에서 경연대회마다 ‘작년은 이랬지만 이렇게 해라, 여기 동작은 이 각도였지만 이렇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 공통적으로 그때마다 적응을 했었어요. 그런데 최승희무용기본이 된 지 아직 몇 년 (안 됐는데). 조선기본무용은 일본에서도 몇 십년이나 춤을 춘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개편되더라도 적응을 할 수 있었어요, 지도할 때도. 그런데 최승희무용기본은 계속 하던 분들한테도 처음 하는 일이니까 그게 지금 아주 어려운 것 같아요. 이제 몇 년 지났지만 아주 그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좀 배웠는데 전혀 달라요.
홍: 어떤 식으로요?
조: 북한의 음악이 선율이 아주 강하잖아요. 조선무용 음악이랄까. 타악 부분이 좀 (있더라도) 선율이 잘 들려와요. 한국의 기본이면 선율이 있다 하더라도 기본 장단을 잡아야 하잖아요. 그런 게 조선무용기본의 경우 장구 소리가 들리긴 들리지만 선율 위주로 계속 춰왔어요. 그런데 최승희무용기본은, 같긴 같은데 그 장구 장단을 잘 듣고 잘 익혀야 춤을 출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본과 좀 비슷한. 전 한국춤을 배웠기 때문에 그 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제까지 계속 조선무용을 추던 사람은 그 개념이 없어서 장구춤을 출 때 장단을 외우긴 해도 굿거리 장단이 어떤 장단인가, 거기까지 소화되는 사람이 드물죠. 그러니까 지금 동작으로 가르친다 하더라도 이건 어디로 나가야 되냐, 시선을 어떻게 해야 되냐, 이렇게 생각을 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춤처럼 호흡으로 인해 가는 길이 있잖아요. 그런 걸 하면 (거기에) 가까워질 수가 있는데 그게 항상 직접 가서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는 게 아니니까 어려운 것 같아요. 한국 같으면 가서 배우거나 선생님 모시고 배우니까 해외에서 배워도 그 호흡을 익힐 수가 있는데 북한은 자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동영상으로 가르친다 하더라도 어려운 측면이 좀 많아요. 그런데 아마 최승희무용기본이 지금 변한 부분은, 북한에서 조선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장단이라 할까, 그런 부분이 좀 희미해지니까 그건 안 되겠다 하는 측면에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얘기도 좀 들었어요.
홍: 혹시 이번에 개편된 최승희조선무용기본이, 최승희 선생님이 북한에 가셔서 제일 처음에 만들어낸 조선무용기본을 다시 가져온 건가요?
조: 예, 아마 그걸 위주로 하셨을 거예요.
임: 제가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는데 북한에 최승희 선생님의 무용기본과 조선기본춤, 이렇게 두가지 부류가 있는 거예요?
조: 네, 저는 그렇게 조선무용기본만 있었다고 생각해요.
홍: 제가 이해한 바로는 최승희 선생님께서 조선무용 민족무용기본을 만드셨고, 최승희 선생님 숙청되 시고 조선민족무용기본이 조선무용기본동작으로 바뀌고 음악 같은 것들도 계속 빨 라지면서 3차 정도. 2017년도에 3차 개편을 했다고 들었거든요. 이제 거기서 더 개편되지 않고 최승희 조선무 용기본, 최승희가 맨 처음에 만들었던 기본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조: 맞아요. 맞아요.
임: 개편이 되었던 거군요.
홍: 네, 제가 이해한 바로는요.
조: 네,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홍: 제가 2017년도에 북한춤과 한국의 기본춤 연구를 했었어요. 그때 관심이 많아서 직접 가서 금강산가극단에서 판매하는 조선무용기본 DVD도 봤어요.
손: 연결해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지금 말씀처럼 춤의 속도도 빨라지고 최승희류 기본에서 다른 스타일의 조선무용기본으로 바뀌면서 3차까지 개편이 될 때는 그걸 만든 사람이 특정되지는 않는 거예요? 어떤 분이 이런 걸 만들었다, 하는 분이 계시진 않아요?
조: 저도 거기까진 잘 모르기는 한데요, 일본에서 봤을 때 금강산가극단은 항상 겨울에 북한에 가서 작품을 보고 봄에 돌아와서 일본 전국 공연을 하고, 다시 겨울에 가서 배우고 오는 식으로 현재의 북한에서 추는 춤들을 - 그리고 뭐 재일교포용으로 금강산가극단의 공연이 만들어지고 오는 거예요. 저희 가무단은 그 공연에서 한 것을 추거나 하기 때문에 직접 배울 수 있는 건 금강산가극단이니까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찾으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시기는 어떤 선생님들이 하셨고, 그런 것들요. 그리고 금강산가극단이 제가 가무단 수석을 했을 때는 북한의 예술을 하는 예술단체라는 느낌이 많았는데 언제부턴지 그런 주체사상보다 민족적인 것, 민속적인 걸 해야 된다는 걸로.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교포들도 많아지는 이 일본 사회에서 북한의 것을 하면 열성적인 사람은 좋아서 보러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안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관객도 없어지면 안 되니까 재일교포들을 위한, 재일교포들이 원하는 그런 무대가 뭔지,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바뀐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어떤 선생님들이 창작하시는지, 또 그것도 재일교포, 여기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이 창작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최근에는 완전히 북한에서 하는 오리지날 그대로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어쩌면 한국 스타일? 한국 스타일이거나, 제가 보기에는 몇 년 전에 갔을 때 – 중국 무용가 양리핑 아세요? 공작 춤 추는. 그런 분이 계시는데 그 사람의 춤 스타일이라 할까, 손님을 모으기 위한 무대연출? 이제까지는 가극단이나 가무단이 예술선전대로서 북한에 대한 것을 전하는 문화선전대였다가 지금은 재일교포들이 원하고 사랑해주는 그런 예술을 해야 된다는 쪽으로 좀 바뀐 것 같아요. 뭐 한류 드라마에서 부르는 그런 노래 같은 것도 하기 시작했고 심청전이나 춘향전 같은 옛날 전통 테마로 공연 제작을 하거나. 제가 학생 시기에 보던 가극단 무대와는 많이 바뀌었어요. 나도 좀 궁금하긴 궁금하니까 다시 물어볼게요. 최승희무용기본이 된 그 이유라 할까.
임: 선생님, 북한에서 조선춤 훈련하실 때 연습 과정이 있잖아요. 한국춤 같은 경우는 기본춤을 먼저 한 다음에 제동작, 테크닉 하나씩 반복하고, 그 다음에 작품 연습을 하는 일련의 순서들이 있는데 북한에서 조선춤 훈련하실 때 연습 과정이 궁금해요.
조: 거의 비슷하죠. 그냥 선생님의 입장단이나 장구 치시는 장단에 맞춰서 하나씩. 한국춤은 선생님이 추시는 걸 그냥 따라서 호흡 맞추고 장단 치셔도 – 둘이 어떻게 다른가.. 거의 같은데. 조선무용 본 적 있으세요?
임: 전 유튜브로 봤어요.
조: 아주 빠르고 하나의 춤이 5분이에요. 길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무용이면 굿거리에서 자진모리로 넘어가고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고 아다지오, 알레그로 뭐 그렇게 발레 용어로.
임: 그런 음악 용어를 쓰나요?
조: 네, 그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항상 느린 속도에서 빨라지고 끝난다, 이런 연출이 많아서 5분 춤 추는 것도 하나의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기본 동작에서는 발놀음, 곱디뎌, 동작 하나씩 섬세한 것들을 가르쳐 주시는데 하나의 작품을 배울 때는 그 체력이 필요하니까 토할 때까지 계속 추라고 하셔요. 먼저 우선으로. 그래서 그 체력이 붙었을 때 거기서 나타나는 뭐라 할까요, 예술적인 정서 부분이라든지.. 아무튼 다리가 엎어지지 않게 계속 웃어야 되고 여유스럽게 춤출 때까지 계속 다시, 다시 해서 훈련처럼 몇 번이나 했어요. 그런데 민속춤 같은 것들은 풍이라 할까, 딱 찍는다거나 여기서 풀고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한국 선생님이나 북한에서 하시는 선생님이나 중요시하는 부분이 똑같았어요.
임: 호흡 하는 걸 강조하세요?
조: 네. 그런데 음악이 너무 빠르니까 따져가면서 춤을 출 때는 그걸 느낄 수가 있는데, 천천히 하면 선생님이 중요시하시는 부분이 무슨 말인지 알고 여기를 올린다, 뭐 그런 걸 아는데, 춤을 그냥 음악에 맞춰서 추면 그게 순간인 거예요. 기본을 할 때는 한국의 선생님들하고 평양에서 하시는 선생님 하고 내가 느끼기에는 뭐, 같았어요. 그런데 한국춤은 8분 10분 12분 20분 이렇게 있잖아요. 그럼 그걸 소중히 춤을 출 수가 있지만 북한춤은 그냥 돌고 뛰고 뒤집고 실패없이 추는 게 중요하다고 할까, 기본에서 섬세한 것들을 배우긴 하는데 작품에서는 그 연출된 세상을 똑바로, 틀림없이, 실패하지 않고 춘다는 게 중요하게 된다고 할까. 다는 아니지만요.
임: 유튜브 통해서 조선춤, 북한춤을 보면 빠른 장단, 리듬의 춤이나 화려한 테크닉이 많아요. 그게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데. 춤이 왜 그렇게 빠를까요?
조: 북한이 추운 나라잖아요. 그래서 춥다 보니 서툴러지게 춤을 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있었고. 그리고 남한은 북한에서 보면 좀 느릿느릿하다고 할까. 그러니까 더 지루하지 않게 빨리빨리 해야 된다. 뭐랄까 한국에서 판소리 하는 소리가 거칠게 되면 북한은 목소리를 더 맑고, 서양 오페라 같이 한다든지 뭐랄까 (한국과) 대립하는 것처럼. 저는 그렇게 느낀 적도 있어요. 왜 소리를 거기까지 그렇게 – 노래 배울 때 내 목소리가 이런 소리니까 그렇게 ‘선생님’ 불러도 그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선생님들도 똑같이 (본인 목소리 대로) ‘혜미야’ 이렇게 하시는데 예술에서 목소리를 변하게 해야 된다는 게 전 아주 자연스럽지 않아서 좀 싫었어요. 그게 우리 북한의 예술이다, 라는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원래 평양이라 할까 북쪽 반도는 그런 건가요?
임: 추운 지방으로 올라갈수록 움직임이 빨라지고 호흡의 쓰임이 다른 부분은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이매방류 살풀이는 남쪽 지방 춤이고 살풀이 들어갈 때 덩에서 호흡이 내려가요. 그리고 한영숙류 살풀이는 서울경기지방인데 덩에 호흡이 올라가요. 한영숙류는 몸이 일자로 곧게 서있고 호흡이 상체에 차 있다고 한다면, 이매방류 살풀이는 중심이 밑으로 가라앉아 있고 하체 또는 회음부를 굉장히 많이 사용해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조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상적인 부분도 있고 발레도 배우고, (춤의) 의도가 장군님을 향해 땅이 아니라 하늘로 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북한에서 배우실 때 호흡이나 테크닉이 땅이 아니라 하늘로 향하는 게 사상적인 부분이랑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조: 아마 그냥 형상이, 가슴부터 위로 이렇게 제끼고 펼치는 그런 것이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상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얘기 들으면서 (생각난) 또 하나는, 기본 동작에서는 걷기를 발뒤꿈치로 걷거든요. 한국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무대 위에서 할 때는 계속 를르베예요.
조: 뒤꿈치를 붙여서 민속춤으로 잠깐 있긴 한데 조선무용기본의 잦은 발, 잦은 걸음, 이것이 를르베로 머리를 흔들지 않고 사선으로 딱 달린다든가. 그런 게 경연대회에서는 하나의 평가 부분이에요.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무릎 아래 다리를 막 빨리, 안 보이게 하면 잘하는 것. 이게 춤 잘하는 사람들. 그런 것도 있고 테크닉이 좀 달라요. 무대 위에서 군무 같은 것들은 열두 명, 몇 십 명으로 추니까 원이 퍼졌다든지, 마스게임처처럼 형상하는 일이 많아서 하반신 훈련이나 돌기, 원돌기, 팔자돌기, 사선돌기, 뛰어돌기, 그런 게 작품 후반에 - 사물놀이에서 개인놀이 했다가 마지막에 소고잡이가 막 뒤집고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5분 마지막에는 절대로 원돌기가 들어가거든요. 원돌기 두 바퀴, 그런 거. 그래서 그런 하반신 훈련을 많이 하죠. 좀 정서적인 장구춤이나 그런 것은 그 민요의 억양에 맞아떨어지도록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된다, 그런 것도 가르침 받긴 하는데. 하반신 훈련을 못하면 조선무용은 잘 못 추죠.
임: 그럼 실제로 북한에서 무용수들이 발레 같은 서양무용 훈련을 하기도 하나요?
조: 네. 북한 무용선수들은 발레도 하고 여러 나라의 춤 무용을.
임: 현대춤, 서양 현대무용 같은 것도 배우나요?
조: 아. 지금은 모르는데 제가 그때 접한 언니들은 - 미국은 아무튼 적이라서 힙합 같은 춤이나 그런 문화는 거의 없을 건데요, 러시아 같은 그런 곳은 강하니까 발레는 러시안 발레였나, 그리고 중국의 뭐 - 아까 양리핑 얘기했는데 그런 공작의 춤이나. 그것은 아주 관절을 많이 쓰는 춤인데 그런 것도 하시고. 그리고 비파단가극단, 모란봉, 만경대예술단 그런 예술단마다 아마도 컬러가 다 다르죠. 저도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 자주 가는 후배한테 물어봐야 되는데 저도 좀 궁금해요.
임: 북한춤에서 다루는 가장 느린 장단과 가장 빠른 장단이 궁금해요.
조: 가장 빠른 건 휘모리 장단이에요. 늦은 거는 굿거리 장단도 자주 쓰고 진양 민요에서는 진양도 있거든요. 그런데 춤에서 진양을 쓰나?
임: 중모리, 중중모리 뭐 이런 장단들?
조: 중모리 장단은 있긴 있는데 거의 없어요. 거의 경험을 안 하죠. 그런데 창작을 하는 춤에서 동작이 모두다 빠른 게 아닌데 금강선녀..
조: 금강산의 선녀를 표현한 그런 작품이나, 최승희 선생님 작품에도 있는.. 미륵보살? 네, 보살춤 같은 것들은 장단보다 그 음악의 선율에 따라서 천천히 움직이거나 그런 것들은 있어요. 움직임도 천천히 손을 올린다거나, 그런 건 있어요. 그런데 한국춤처럼 밑에서 끌어당기고 어쩌구저쩌구 거기까지는 훈련을 안 해요.
임: 조선춤의 군무에 등장하는 솔로 외에 살풀이나 승무 같은 독무가 있나요?
조: 네, 독무 있어요. 그런데 살풀이, 승무는 없어요. 그런데 없다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수건춤은 있어요.
임: 아, 수건춤이 독무로 추어지나요?
조: 기본무로 있었거든요. 수건을 던지고 그런 기본무는 있어요. 그런데 한국의 살풀이춤 같은 솔로는 거의 본적이 없네요. 솔로가 장고춤, 바라춤, 부채춤, 북춤 등 여러 가지 있긴 한데 수건이나 장삼을 끼고 하는 그런 거는 본 적은 없네요. 그런데 무녀춤. 무당춤. 그런 건 있어요. 무속적인 것. 한국도 방울 끼고 부채 들고 뛰고 하는 무당춤이 있잖아요. 북한에서도 똑같이 부채 가지고 방울 끼고 하는데, 형상이 비슷하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한데 그 원점에 있는 건 똑같은 것이라는 느낌은 있어요. 무당이라는 게 어떤 건가 하는 거는.
임: 선생님들이 가르치면서 언어를 사용하실 때, 덩, 덩기덩덩 하는 식으로 입장단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물을 형상화하기도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나요?
조: 그런데 덩기덕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예를 들면 안딴 장단이라는 게 있는데요, 안딴 장단.
임: 안딴 장단이요.?
조: 네, 동살풀이 장단이랑 비슷하다고 할까. 아세요?
홍: 돌 때 쓰는 것.
조: 한국에서도 돌 때 안딴 장단 써요?
임: 전 처음 들어봤어요.
조: 안딴 장단 경우는 아주 쉬운데, ‘덩-기닥닥 쿵딱쿵딱’ 이게 원박인데 안딴 돌기라는 게 있어요. 안딴 돌기를 배울 때는 이런 장단인데 안딴 돌기를 구음으로 할 수 있는 무용수들은 많을 거예요. 그런데 민속춤 같은 건 장단이 민요니까 - 한국 같으면 이렇게 이쪽을 잡아서 땡긴다, 이렇게 가르칠 건데 조선무용 같으면 선율을 불러요. 그러니까 춤이 다 선율에 붙어있는 것 같아요.
임: 더 가벼울 수박에 없겠네요.
조: 네, 맞아요. 맞아요.
임: 팔의 움직임이 강조될 수밖에 없고요.
조: 네. 사르르르 이렇게 가는 잦은 걸음. 같은 민요라 하더라도, 민족 악기가 개량된 악기잖아요. 음계도 - 지금 가야금이 한국에도 12현 말고 30 몇 현? 그런 것이 있으면 음악의 세계가 달라지는 것처럼 민족 악기의 세계관 역시 가벼우니까 가볍게, 흔들림 없이 확, 그렇게 보여지는 테크닉을 원하는 것 같아요. 휘모리가 되면 아직 선생님들도 ‘덩덩덩덩’ 이렇게 하셔요.. 그런데 노래로 하시네요.. 노래로 하셔요. 그리고 ‘덩’이 아니라 뭐 라라라, 타크타, 뛰어야 되니까 그런 건지 ‘런 런’ 이렇게.
조: 그렇죠. 그것도 그러니까 틀림없는 구음이죠. 느낌이 그러니까요. 라라라, 라리리 이런 식으로. 그리고 돌 때는 세탁기처럼 돌아라, 이렇게. 휙. 세탁기.. 뭐라 해요?
임: 탈수기요?
조: 네. 탈수기, 탈수기. 그걸 계속 하셔요.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탈수기가 뭐. 돌 때도 옷이 꽉 이렇게. 회전도 속도를 내라고. 그런 형상을 하신다거나.
임: 그 말씀 하시니까 이게 기억나요. 북한에서 춤 배울 때 가르쳐주는 선배 언니가 쉬는 시간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고. 전 무용수니까 그게 어떤 건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한국춤 훈련할 때 그렇게 배웠던 시기가 있어요. 그래서 궁금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춤춘다고 하셨는데 북한 무용수들 하루 일과나 하루 연습량이 얼마나되나요?
조: 진짜 아침부터. 국가 선수 언니들은 저보다 더 심할 거예요.
임: 아, 국가 선수라고 해요?
조: 네, 국가 선수. 그 외교, 다른 나라에서 손님이 왔을 때 공연하는 국가 선수가 있거든요. 무용가. 그런 언니들은 정말 몸매도 보고 그런 것으로 뽑힌 언니들인데. 그리고 북한춤은 계속 웃고 있잖아요. 웃어야 돼요. 5분 동안 계속 웃기도 힘들어요. 힘들면 힘들다는 표정을 하고 싶고 힘든데도 웃어야 되고 웃기 위해서는 여유로워야 되니까 좀 특이한 그 – 어떻게 말할까. 훈련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건 하는데, 그 시간이 힘들다기보다 그 5분이 힘들었어요. 아다지오, 알레그로로 나갈 때 내 호흡이 못하는데 계속 웃으면서 착, 끝나야 되니까, 좀 부자연스러운 그 속에서 추는 게. 그런데 아주 힘들지만 그걸 넘어가면 좀 중독적인 그 뭐라 할까 - 그 달성감이나..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임: 어떤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조: 조선무용이 힘든데 다 해요. 왜 출까요. 왜 추는지 그 예술성이 좀. 아주 계산된 그런 예술 발란스가 있어요. 나도 그 속에서 힘든데 거기를 넘어가면 기분 좋게 추는. 아무튼 돌기, 자선, 달리고 뭐 돌기, 그런 게 힘들었다. 나머진 뭘 했을까. 오전 연습은 발레랑 기본, 오후 연습은 작품. 작품은 선생님의 입장단, 호령에 맞춰서 하나씩 다지거나, 그걸 익히고 나면 음악에 맞춰서 세 번에서 다섯 번은 연속해서 추고. 그때 토해야 합니다. 토해야 그것이 시작이에요. 왜냐하면 싫어지잖아요. 이제 이걸 추기 싫습니다, 이렇게. 싫다 하더라도, 그래도 오는 애가 잘하는 것 같아요.
임: 그걸 넘어가야.
조: 네. 우리 재일교포들도 그러는데 학생시절에 무슨 소조를 했냐고 해서 ‘조선무용 했습니다’ 이러면 아빠엄마들은 조선무용 하는 애들이랑 결혼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임: 독하다고요?
조: 겉으로 보는 건 예쁜데 너무 강해서. 성격이 너무 강하고 독해요.
임: 그게 없으면 해낼 수가 없으니까.
조: 못해요, 네. 그 정도로, 무서워할 정도로 근성이 없으면 추지 못하는 춤? 그런 강한 것이 그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성격적인 거는. 그런데 막 얌전한 분도 계세요. 계시긴 계세요.
임: 문득 궁금한데 남성분은 없나요?
조: 재일교포는 남성분이 적어요. 그런데 육상 소조에서 뛰는 게 아주 좋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하반신이 강하다 뭐 그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애가 있으면 금강산가극단에서 그 사람들을 뽑아가요. 지금 그 금강산가극단에 남성 무용수로 류정일 오빠가 있는데 제가 우리나라 가서 배우고 있을 때 같은 교실은 아니지만 같이 강습 받은 오빠예요. 그런 오빠들은 학생 시기에 달리기만 계속 했는데 조선무용은 그때 처음으로 접하는 거잖아요. 그럼 남성 무용가들은 그때 북한에서 계속 훈련을 받고 뛰거나 그런, 좀 아크로바틱한 것들 위주로.
임: 북한에도 남성무용수들이 있어요?
조: 계세요. 많아요.
임: 전 한번도 못 봤어요.
조: 최승희 선생님 제자 분도 남성 무용 선생님, 이름이… 백홍천 선생님 아세요? 지금 한국에서 많이 가르치시죠?
임: 따님이랑 같이 활동하시는 분. 따님도 무용하시죠?
조: 네, 백향주 언니. 그 언니 선생님이.. 이름을 까먹었는데 그 선생님도 남성 무용수였어요.
임: 유튜브에서 남성 무용수가 추는 레퍼토리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조: 아, 그래요? 제가 백홍천 선생님 페이스북 친구였나.. 백홍천 선생님은 지금 한국에서 쟁강춤, 그런 걸 가르치고 계시는데 그 선생님은 주체예술보다 아주아주 민속무용. 저는 금강산가극단 1980년대 무용수 선생님들을 아주 좋아해요. 그 풍이나 멋이나 그런, 우리춤의 뭐랄까, 아주 맛이 있고 그 세대보다 좀 더 위의 선생님들인데 그 시기가 좋아요. 그 시기 춤이랑 지금은 전혀 좀 달라요. 한번 보시면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아실 거예요, 아마.
임: 80년대인가요, 70년대?
조: 80년대. 저는 80년대 좋아해요. 지금은 가극단 오빠들도 그런 말을 하시는데 키가 170 되어야 된다, 그런 식으로 외모로 규정을 하거든요. 지방 가무단은 외모 말고 그냥 하고 싶다는 열성을 보는데 열정이라 할까. 가무단은 무대에서 춤 추는 것보다 행사가 있으면 들판이든 어디든 어디서라도 돌고 뛰고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가극단은 무대가 마련된 좀 특별한 아름다운 세계. 우리는 지방 가무단은 직접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그런 무용수들이라서 그런 형상이 좀 다른 측면도 있는데. 그렇지만 그 옛날 언니라 할까 선생님들이 추는 거는 어떻게 말하지 - 아무튼 백홍천 선생님은 이제 나이가 아마 70세 되셨나? 그런데 지금도 바 훈련을 하고 아침부터 훈련하고. 그 선생님이 추시는 거는 뭐더라 - 여자 한 명에 남자 둘 3인무가 있거든요. 그런 남성 무용도 많았어요. 지금은 그런 춤 거의 못보게 됐고 남자 역도 여자가 하거나 그런 연출이 많지만 옛날에는 남성무용수들도 아주 멋있고 맛있는 그런 선수가 많았어요.
대담자 임지애(이하 ‘임'), 손옥주(이하 ‘손’), 홍정아(이하 ‘홍')
손: 진짜 재미있네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임: 이렇게 가까운 곳에 계신 분과 북한춤에 대해서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되고 디테일한 부분과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됐어요.
홍: 엄청난 시간이었네요. 안딴 장단이 나왔는데 그게 동살풀이 같아요, 한국으로는. 조선어로는 안땅이라고 쓰는데 제가 안딴 장단을 찾아봤더니 전라남도 무가에서 농악에 쓰이는 장단으로 안당거리에 쓰인다고 해서 안당장단이라고 한대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안당이라고 쓰는데 거기선 안땅이라고 쓰나 봐요. 북한이 순수 우리말을 많이 쓰잖아요. 무속에 쓰이는 안당을 안땅이라고 쓰는 것 같아요.
손: 그런데 훈련을 알레그로, 아다지오로 하실 줄은 정말 몰랐네요.
홍: 저는 되게 익숙한 게 탈북하신 최승희 선생님 제자 분이 계속 그런 용어를 쓰셨거든요. 발레 같은 기분이었어요. 조선춤의 기본이 발레라는 느낌. 이분도 똑같이 얘기하시더라고요. 한 시간 발레 하고 한 시간 기본 했다고 하셨잖아요. 북한에서도 그런대요. 기본을 발레로 다지고 체력 같은 걸 키운 다음에 조선춤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임: 를르베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옥주샘, 최승희 선생님이 동양발레 포부가 있으셨잖아요. 이런 게 그 부분에서 온 것일까요?
손: 동양발레 같은 경우에는 군무라는 형식, 그리고 동작을 안무할 때 포메이션, 이런 부분을 - 발레가 정말로 무극이니까 그런 형식을 가지고 오려고 했던 것으로 저는 이해를 했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 최승희 선생님 뿐 아니라 조택원 선생이고 누구고 전부 1세대 신무용가로서 서양 무용계를 경험한 후에 본인들도 그들이 하는 아름다운 발레 형식에 대응하는 형식으로서의 군무를. 왜냐하면 그분들은 그전에 이시이 바쿠 선생님 밑에서도 그렇지만 그런 웅장한 규모의 군무를 트레이닝하셨던 건 아니잖아요. 일단 개인적인 기본 동작을 트레이닝 하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 대부분 솔로, 듀엣, 트리오, 이 정도 규모였고 발표 형식도 개인발표회를 많이 했었고요.
임: 그렇다면 동양발레라는 게 어떤 소소한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발레라는 전체적인 포메이션이나 규모를 빌려오려고 했던 거였고, 그래서 최승희 선생님이 대본도 직접 쓰지 않으셨나요?
손: 무용 대본도 아마 직접 쓰시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소재만 뭔가 견우직녀 이런 것일 뿐 서양 발레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굉장히 유사한 방식으로 하는 거예요, 튀튀를 치마저고리를 변형시킨다거나. 그 근원은 그렇게 유사한 거죠. 저는 그렇게 그냥 대응 형식으로 했다고 이해했었고요. 발레 같은 경우에는 신무용가들이 다 했었으니까요. 이시이 바쿠 선생도, 근대 일본 신무용가들도 트레이닝 방식으로 다 했었으니까요.
임: 그런데도 재미있는 건 한국도 다르지 않다는 거.
손: 저는 오늘 말씀 들으면서, 제가 잘은 모르지만 기본을 익히는 방식의 경우에 이건 남한이고 북한이다 하는 지역적인 부분을 떠나서 유사한 부분이 의외로 많겠다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부분이 이게 작품으로 들어갈 때요. 작품을 공연할 때는 그 차이가 남북한 춤의 차이가 속도감인 거잖아요. 작품 시간도 시간이고. 그러면서 막 탈락되는 호흡이라든지 장단의 뉘앙스들? 속도 안에서 그런 것들이 다 뭉개져야 되는 상황이니까 그런 데서는 차이가 나오지만 기본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북한춤 하면 마냥 피규어나 포메이션이 강조된다는 식으로 한국과 대조적인 스타일로만 생각했는데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겠다 싶었어요.
임: 저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 게 춤에 결부되는 사상만 빼면 훈련 과정이나 강도가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리고 무용단에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히려 공감이 많이 됐어요, 옛날 이야기 듣는 것 같고. 저는 이제 그런 방법으로 연습을 하지 않지만 닮아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토할 때까지 춘다는 거 훈련하면서 많이 경험했고요. 한국 대학의 무용 교육도 세 개를 다 배워야 하잖아요. 발레는 기본으로 당연히 해야 되는 거고 현대무용 배워야 하고요.
손: 또 하나 계속 질문이 드는 게, 공유했던 조혜미 선생님 인터뷰 영상에서 선생님이 한국춤을 배울 때는 확실히 북한의 조선무용보다는 호흡이나 장단을 익히는 게 어려웠다고 하시는데 굉장히 많은 분들의 사례를 들어보면 저는 연구하는 입장에서 한국춤은 북한춤과 달리 호흡이나 장단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특징이라는 식으로 이해를 많이 했거든요. 두 춤 스타일의 차이가.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드는 거죠. 정말 북한춤에는 호흡이 없고 장단이 없을까? 이미 교습 가능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연구돼서 후학들에게 전달되는 교습법으로 정착했다는 건 호흡과 장단이 하나의 전승 가능한 방식으로 단일화된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거든요. 원래 예전부터 있었던 호흡을 지금에서 이어받는다 이런 게 아니고요.
임: 네. 옛날에 민속춤 추면서 누가 호흡 생각하고 장단 생각했나요.
손: 호흡이 호흡으로 인지되는 순간에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저는 생각해서.
임: 제 생각에는 근대로 넘어 오면서 특정한 류파와 함께 춤의 체계 만들어지면서 사용했던 축인 것 같아요. 아까 조혜미 선생님 말씀하실 때도 북한춤 가르칠 때는 장단 강조하고, 또 뭐라고 하셨더라, 한국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과 굉장히 비슷한 부분을 말씀하시더라고요.
홍: 최승희가 장단,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았는데 장단을 선율로 바꾸고, 당시 최승희가 중요시했던 소품춤 등한시하고. 그렇게 하면서 음악이 빨라지고 장단을 잡기보다는 그냥 흘러가면서 리듬에 따라 춤이 계속 빨라지는 것으로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북한은 국가가 그 춤을 주관하다 보니 최승희라는 한 예술가가 어느 정도의 틀을 잡았고, 그런데 그 사람을 부정해야 되기 때문에 뒤집어엎는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난 전승 방식이 있었고, 그래서 개편될 때마다 기본춤이 빨라지고.그러면서 지금에 왔는데 다시 최승희가 복원되면서 다시 예전의 최승희의 춤으로 가고, 그래서 그것에 약간 적응이 안 되는 그런 게 아닐까 싶었고요.
임: 조혜미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주체사상의 춤에서 이를테면 민족 사상의 춤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말씀하신 부분이랑 닿는 것 같아요.
홍: 어떻게 보면 최승희를 다시 부활시키면서 북한도 민속적인 걸로 회귀하고 있고, 재일교포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민속적이고 민족적인 걸로 회귀하고 있고.
손: 정말 흥미로운 게, 저는 최승희기본을 전통춤의 기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거든요.
손: 그런데 시간성이 흥미롭게 도치되다 보니까 최승희 기본이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원류의 시간성은 다 삭제되어 버린 거라는 느낌을 약간 받았어요.
임: 최승희가 여기서는 전통의 출발이 되는 건가요?
손: 그렇죠. 그래서 다시 되돌아가는 전통이라고 했을 때, 혹은 어떤 시초적인 거, 오리지널한 것을 찾으려고 했을 때 돌아가 보면 그것이 최승희 기본. 지금 다시 그렇게 된 건지.
손: 최승희 춤과 한국춤의 여러 특징들을 결부시켜서 이해하고 감각하시는 것 같아서 흥미롭더라고요.
홍: 기본춤을 비교했을 때 정말 재밌었어요. 혼종성이 남북 기본춤에 다 있어서. 박금술 기본에서는1번 발을 써요. 완벽하게1번 포지션. 거기서 시작하거든요. 그런 것도 재미있고. 또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듯이 최승희 기본이 전통적인 거냐고 할 때 최승희는 정말 전통적인 기본춤을 만들려고 노력해서 만든 거거든요. 북한에 남아있는 전통무용, 민속무용 선생님들과 어떻게 했는지. 그때 대대적으로 국가적으로 지원을 했기 때문에 과연 최승희 혼자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임: 조선민족무용기본. 이거 보면 사진부터 한국춤에서 볼 수 있는 느낌이고 탈춤도 있고 동양발레를 전혀 상상할 수 없어요. 이게 물론 움직임을 노테이션으로 그려놓은 거지만, 되게 민속적이에요. 그래서 이걸 보면서 최승희가 북한에 있으면서 그 지역 민속춤을 발굴하고 개발하려는 노력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체제나 이념, 이런 건 전혀 드러나지 않아요.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의상, 소품, 그려놓은 손, 얼굴 표정, 어깨 동작의 설명이 노테이션 보고 춤 추면 한국춤이 나올 것 같아요.
손: 지금 말씀하셔서 문득 든 생각인데 그 기본을 최승희가 왜 만들려고 했을까, 그 이유로 돌아가면 어쩌면 – 그 기본이 일종의 노테이션이고 스코어인 거잖아요. 그 이전에는 한국적인 소재나 동작 문법 관련해서, 특히 민속춤 같은 경우는 스코어로 기록이 남은 적이 없는 건데 서양의 무용계를 경험하고 나서 최승희가 ‘아, 내가 이런 부분이 필요하구나, 이런 작업이 필요하구나,’ 했던 게 민속춤을 집대성하는 거, 거기에 플러스 그걸 기록하는 방식으로서의 스코어. 그걸 남기려고 했기 때문에 아마 그 기본에 실리는 콘텐츠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했을 때, 저는 이게 최승희가 이전에 경험한 그 서양 문물과의 만남, 그리고 거기에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민족문화를 발견하고 집대성하려는 스스로에게 정한 미션, 그런 부분하고 연결돼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무용 기본이라고 했을 때 그 콘텐츠는 당연히, 반드시 민속춤, 한국적인 것과 연동돼야 하고 그런.
임: 이걸 보면 체제나 이념이나 이런 건 전혀 드러나지 않아요.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민족춤 책 같아요. 입고 있는 의상도 그렇고, 소품, 손 그려놓은 손의 표정, 어깨 동작 설명도 그렇고. 이 노테이션 보고 춤 추면 그냥 한국춤이 나올 것 같아요.
손: 뭔가 정치적인 환경에서 했어야 됐거나 하고자 했던 말들과는 별개로, 뭔가 춤과 관련해서 완수해야 할 일생일대의 자기 과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요. 최승희 선생의 여러 정치적인 발언은 아마 여러 여론 매체를 통해 기사나 기고, 여러 형식으로 나갔겠지만 그것과는 전혀 별개로. 그런데 그래서 저는 최승희 선생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했던 게 기본에는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담자 조혜미(이하 ‘조'), 임지애(이하 ‘임'), 손옥주(이하 ‘손’), 홍정아(이하 ‘홍')
손: 저는 공연 연구하는 손옥주라고 하고요. 지금 임지애 안무가님 리서치 작업에 리서처로 같이 참여하고 있고 이번에 조혜미 선생님 뵙게 돼서 반갑고 좋습니다.
조: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홍: 안녕하세요. 저는 홍정아고요. 춤 만들고 연구하거나 기획하는 소소한 일들을 하고 있고 지애님과 이번에 프로젝트 같이 연구하기 위해서 조혜미 님 영상도 봤고, 그래서 반갑고 익숙한 얼굴을 보는 것 같아요. 오늘 같이 인터뷰하는 거 너무 기대되고 반갑습니다
조: 네, 감사합니다.
임: 연습실이시네요, 선생님?
조: 지금 연습실이에요.
임: 저 공간이 선생님 집에 있는 연습실이에요. 너무 좋죠.
조: 1층이 연습실이에요.
임: 레슨도 하시고.
조: 비좁긴 하지만 여기서 레슨도 하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공연, 레슨이 많이 취소되고 없어지고 하니까 한국에서 좌욕이라고 하나요? 그것도 여기서 할 수 있게 준비했어요.
언제부터 이런 프로젝트 연구를 하셨어요?
임: 춤의 이주에 대해서 연구 시작하고 공연 만들기 시작한 건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부터였고, 조선춤에 대해서 리서치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궁금한 것도 많고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모시게 됐어요.
조: 제가 도움이 된다면 답할 수 있는 건 뭐든지요.
임: 저희가 선생님 영상을 보고 궁금했던 내용들이 있어요. 평양에서 3개월 체류를 하셨을 당시 배우셨던 조선춤에 대한 경험담 위주로 질문을 드릴게요.
선생님도 조선학교와 전문 무용단, 이렇게 거쳐오신 거죠.
조: 네.
임: 처음에 조선무용 배우시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조: 저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조선학교에 다녔어요. 조선학교는 4학년이 되면 소조라고 해요, 한국에서도? 소조 활동으로 조선무용, 노래, 축구, 농구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데 제가 조선무용 선택한 계기는 사촌언니가 오사카의 조선무용연구소에서 조선무용을 배울 때 발표회를 하면서 보러 오라고 초대를 해서 처음으로 무대에서 조선무용을 봤는데, 그때부터예요.
홍: 그때가 몇살이셨어요.?
조: 초등학교 3학년이니까 8살. 한국나이로 9살?
임: 일찍 시작하셨네요.
조: 네, 그걸 보고 왠지 모르게 나도 그 춤을 추고 싶다고 느껴서 무대를 본 후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막 춤추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4학년이 돼야 소조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땐 아직 3학년이었고, 4학년 들어가서 초중고등학교, 미친듯이 춤을 계속 췄죠.
임: 조선학교에서 춤, 축구 여러 가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선택하면 취미로 배우는 거예요, 아니면 나중에 축구 선수가 된다거나 선생님처럼 전문 무용수가 된다거나 진로를 결정하는 건가요?
조: 여기 조선학교 다니는 재일교포들 중에 축구 선수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만큼 수준이 높다고 해요. 왜냐면 학교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있는데 수업 끝나면 매일 2시간은 연습을 하고 일요일도 연습, 그리고 방학에도 추석과 설날 외에는 계속 연습이에요. 그래서 거의 집에 없어요. 학교 나가서 춤 배우는 애들은 춤 배우고요. 그리고 1년에 한번 가을에 전국 조선학교의 경연대회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경연대회를 향해서 초중고등학교 전부 매년 연습하고 경연대회 나가고, 다시 다음 해에도 연습하고, 계속 그렇게 해요.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진로 강습이라는 게 있는데, 그냥 진학을 할지 아니면 조선무용을 하던 애들의 경우는, 일본 전국 각 지방에 조선가무단이 있거든요, 도쿄 중앙에는 금강산가극단이 있고요. 거기서 조선무용수가 좀 없으면 들어오라, 그런 인원이 해마다 설정돼 있어요. 그래서 저도 고등학교 2학년 진로 강습 때 조선무용수가 좀 모자라서 조선가무단에 조선무용수로 입단하는 걸로 확정이 된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임: 오디션을 보신 거예요?
조: 예예. 일단은 그런 조선가무단 언니들이 와서 면접도 하고 우리 춤도 보고 그렇게 해서.
임: 조선학교는 나가타 지역에서 나오셨어요?
조: 전 교토예요. 전 이 그룹에 오기까지는 주욱 교토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교토조선제2초급학교, 교토조선제2초중급학교, 교토조선중고급학교를 나와서 교토조선가무단에 입단했습니다.
손: 가무단에 입단하실 때 일종의 오디션 보셨다는 거잖아요. 그때 어떤 춤을 추셨어요?
조: 조선무용기본동작을 췄을 거예요, 아마도. 초등학교 때 배우는 조선무용기본동작이라는 게 있고 중고등학교, 성인이 배우는 조선무용기본이 있거든요. 경연대회 준비할 때도 그걸 계속 연습하고요. 그리고 작품이 있었을까, 작품은.. 그리고 가무단 언니 선배들이 고등학교 때 가르치러 오시거나 했기 때문에 그때 저희 춤도 보고 가셨을 거고요, 무슨 작품을 춰라 뭐 그런 건 없었어요.
임: 이미 선생님들, 언니들이 많이 봐 두셨겠네요.
조: 네. 그런데 조선무용기본동작도 몇 년 쯤 됐을까, 몇 년 전에 최승희조선무용기본이 됐어요.
조: 그전엔 ‘조선무용기본동작’이라고 해서 배웠는데, 그것도 최승희 선생님의 원조 춤 스타일로 구성되었는데 그게 조금씩 개량된다고 할까, 원래의 느낌이 좀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다시 재구성이 좀 되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배웠던 조선무용은 한국전통기본보다 움직임이 조금 빠를 거예요. 그런데 새로 재구성된 최승희조선무용기본은 이제까지 춰왔던 조선무용 기본보다 조금 느린 호흡으로 추어야 된다는 게 아마 중심이 되었든지. 기본이라고 해도 우리 같은 해외 교포는 같으면 춤을 동영상으로 보는 게 많잖아요. 지금은 평양이나 북한에서 일본에 왔다 갔다 못하지만 옛날엔 아직 왔다 갔다 할 수 있었고 평양 선생님들도 우리 고등학교 시기에는 와서 가르쳐주시기도 했어요. 그러면 그때 느껴지는 감각이 있지만 일본 정세가 북한이랑 좀 나빠지거나, 또 지금은 일본에 거의 못 들어오고, 가는 것도 오래 못 가니까 동영상으로만 계속 연구를 하면 그 기본의 호흡 같은 게 뭐랄까 (호흡보다는) 속도나 모양새, 더 빨리 돌고 발도 떼고 그런 게 더 중심이 되는 것 같으니까 아마 그런 것도 문제였든지.
그리고 이런 말도 들었어요. 평양에 최승희 선생님 유파, 그리고 다른 선생님 유파가 있어서 이번에는 이쪽이 강했다, 뭐 그런. 그런데 재일교포들은 너무 복잡해요. 항상 그게 바뀌면, 우리도 해외에서 가르칠 때 어느 쪽에 죽을 맞춰야 되는지. 그건 평양, 북한의 사정인 건데 우리 재일교포들은 좀 당황스러웠어요.
임: 아, 북한에 최승희류 말고 다른 류가 있나 봐요.
조: 네, 무슨 무슨 류가 한국처럼 많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그때 정세에 따라서 어느 쪽이 강하고, 그런 게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걸 알려면 저도 선배들한테 물어보거나, 또 조선가무단 후배가 아직 지금 현직으로 있기 때문에 – 2·16 예술상 아세요?
홍: 네, 논문에서 많이 봤어요.
조: 아, 그래요? 거기 출연한 후배를 제가 잘 아는데 그 애가 한 2-3년 전이었을까 2·16 예술상을 받기 위해서 1년 동안 평양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훈련을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 정세라고 할까 (그런 걸 잘 알 거고) 제가 갔던 건 2000년도였거든요. 그때보다 우리나라 북조선도 많이 발전도 했을 거고, 그런 것들은 다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손: 말씀 듣다 보니까 궁금해진 게 있는데, 그럼 조선학교에서 조선무용기본을 배우실 때는 책자 같은 게 있었나요, 아니면 그냥 춤을 가르치셨던 조선학교 선생님들께서 책이나 영상 없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교습을 받으셨어요?
조: 학생들은 책이나 동영상이 없어요. 그냥 선생님이 앞에서 장구 치면서 가르치시는 걸 기억하는 건데, 제가 조선가무단에 들어가서 그런 동영상이나 자료를 찾게 됐죠. 찾게 되기도 했고 그런 자료가 너무 없어서 평양에 있을 때도 그런 자료 찾기를 많이 했는데 그런 음악무용연구소인가, 조선민속 관련 연구소가 있는데 거기서 책이나 그런 걸 몇 권 가져온 건 있어요.
임: 아, 평양에서요?
조: 네. 제가 최승희 선생님에 대해 좀 많이 알고 싶어서 북한에 있을 때도 찾았는데 이런 거예요. <우리나라 민속 무용의 특성>. 또 북한이 지금은 아닐 건데 우리가 갔을 때는 종이도 이랬었어요. 공책이나 그런 것도 하얀 종이가 없고. 이건 <음악 무용 작품들의 주체사상>. 이런 것이나..
임: 그 책도 최승희 선생님이 쓰신 거예요?
조: 최승희 선생님이 쓰신 거는, 잠깐만요. 저도 오랜만에 보니까. <우리나라 민속무용 개관>이나 <민속무용 발전의 역사적 고찰>, <민속무용의 일반적 특징>, <민속무용의 계승 발전>, 좀 역사적인 그런 거나. 이건 최승희선생님이 쓰신 건 아닐 거예요. 누가 썼나. 리순정 박사? 예술교육출판사, 이렇게 돼있어요.
조: 제가 갔던 시기 전까지는 판소리 같은 거, 그 이전까지의 교방이나 기녀, 궁중무용, 그런 것이 있었을 건데 주체사상, 주체예술이 생기면서 그런 걸 안 하도록 했답니다. 없애기 위해서요. 그리고 전쟁 이후라 인민들의 활기를 올리기 위해서 음악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문화 선전대 – 민요 가사도 사상적인 것으로 바꾸거나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옛날의 고전적인 전통 있긴 있는데 없앴던 거죠. 그래서 제가 갔을 때 가르쳐주신 장구 선생님이 계시던 민속음악무용연구소인가 거기서 그런 옛날 선생님들을 찾는 활동을 하고 계셨어요. 명인들을. 우리 선생님이 그런 걸 찾으시면서 그쪽에서 들려주신, 가야금 하시는 선생님들의 테이프 같은 걸 들으면 거의 역시 한국이나 다름없는 예술이었어요.
임: 그런 걸 연구하시는 분이 북한에 계시는군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전통을 없앤건데, 지금 이렇게 연구하시는 분들은 공식적으로 하시는 건가요?
조: 그건 아마도 나라에서 그렇게. 제가 갔을 때가 김대중 대통령이랑 김정일 장군님이 만났던 615북남공동선언, 그때거든요. 2000년도. 그래서 그런 남북한이 서로 뭐랄까 유연화, 그런 때여서 그런지 (그런 전통을) 없앴던 시기부터 찾아야 된다는 그런 의식으로 바뀐 시기였던 것 같아요.
홍: 그럼 그때가 최승희 복원사업이랑 시기가 겹치나요?
조: 아. 최승희 선생님은 - 한국에서는 최승희라는 이름도 내면 안 되었죠, 맞아요?
홍: 아니요.
조: 아니에요? 괜찮았어요.?
홍: 네.
조: 우리는 그냥 최승희 선생님의 따님 안성희 선생님이나 그런 선생님의 제자? 이름이 뭐였을까, 백… 이름을 까먹었는데 그런 선생님들도 계속 계시니까, 항상 이 춤은 누구누구 선생님의 춤이다, 라는 식으로 우리는 알고 있었긴 해요.
홍: 아, 알고 계셨다는 게 조선학교에서 최승희선생님 춤이다, 이렇게 배우셨나요?
조: 그때는 아니었어요. 쟁강춤은 쟁강춤 (이런 식으로). 제가 졸업해서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찾아가면, 선생님한테 물으면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조선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거기까지 모를 거예요. 조선학교에서는 조선무용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르치니까, 선생님들이 전문가가 아니라서.
임: 아,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르치는 방식이군요..
조: 네, 전문가는 아니에요. 그래서 경연대회가 있을 때에 전문 가극단이나 가무단 선배, 선생님들을 불러서 지도를 받거나 그런 식으로 배웠어요.
임: 북한 방문 이전에 조선춤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가 어떠셨어요?
조: 아까 얘기했던 그 사촌언니가 추는 춤을 본 게 처음이라서, 그냥 화려하고 환하고 화려한 느낌? 밝고. 실제로 춤을 추고 나서는 어땠나. .아무튼 환희? 환한 느낌. 초등학교 시기에는 주체예술적인, 사상적인 거는 없었어요. 중학교도 사상적인 건 별로 안 하는데 – 아, 하나? 경연대회에서 조선무용기본의 심사가 있고 군무, 중무나 독무, 군무도 창작이나 기성작품. 기성작품들은 장고춤이나 민속무용, 소고춤. 그런 게 많은데 창작으로 가면 조선학교는 일단, 지금은 좀 아니지만, 우리 시기는 주체예술이라 할까 주체사상도 배웠고 일반적인 재일교포의 역사도 배웠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주제로 한 춤을 만들어야 했어요.
임: 아, 창작할 때요?
조: 네. 장군님, 그런 춤도 췄고 그런 걸 추면 점수를 좀 딸 수가 있거든요. 초등학생 시기는 그런 생각 없이 음악, 장단에 맞춰서 춤추는 게 그냥 신나고 그랬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되면 그런 사상이 들어가니까 같이 추는 학생? 청춘이라 할까 그런 걸로 했지만 지금은 저는 주체예술은 좀 별로예요. 별로예요, 라고 말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주체예술을 추게 되면 서양 발레나, 가슴부터 위를 올리는 스타일이 되거든요. 장군님을 본다 할까 위로 이렇게 본다고 할까 그런 경향이 있어서 저는 그런 것보다 탁 잡는 민속춤의 풍이 좋아요.
임: 혹시 조선학교에서 발레나 서양 무용 같은 걸 훈련하기도 하나요?
조: 네, 해요. 조선무용 배울 때는 연습을 두 시간 하는데 한 시간은 발레예요. 그런데 발레라 하더라도 발레 전문 선생님이 하는 게 아니라 아까 전문가가 아니라고 했듯이, 플리에, 탄듀, 그랑바트망, 그런 거 다 하긴 하는데 발레의 전문적인 신체능력이라 할까 그런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순서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에요. 전문 발레 용어나 포메이션을 알긴 하지만. 조선무용을 추기 위해서 왜 그걸 해야 하냐면, 딱 축을 가져야 되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그래서 플로어에서는 별로 안 해요, 그냥 뛰는 것만. 그런 다음 조선무용 기본 한 시간. 기본 걷기나 돌기, 사선돌기, 잦은 발, 그런 훈련을 하고 경연대회가 있으면 작품 연습하는 식. 그러니까 훈련의 기본은, 반은 발레, 반은 조선무용기본. 초등학교 시기부터 훈련을 이렇게 계속 해왔어요. 가무단에 들어가서도.
임: 조선학교 얘기로 돌아가서, 창작 작품을 할 때는 선생님이 안무하시나요?
조: 네. 그래서 선생님들이 진짜 힘드셨을 거예요. 담임도 해야 되고, 전문적인 것도 아닌 그런 춤 창작도 하고. 그것도 그저그저 창작하는 게 아니라 그 정세에 따라서, 혹은 북조선에서 매년 올해는 뭐, 아까 말한 2000년도 같으면 옛날의 그런 (예술을) 다시 되찾는 활동을 해라, 그런 지시가 나라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 지시에 따라서 그 방향 같은 걸 넣으면서 창작을 해야 되니까. 아까 점수를 따야 된다는 한 건 그런 점에서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치마저고리 자르는 그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춤을 춘다든지 혹은 북한에서 수재, 비가 많이 와서 – 그걸 수재라고 해요? 그런 걸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는 것이 있었다면 그런 걸 좀 표현하고 ‘모금활동을 해서 북한에 보냈습니다’ 하는 그런 춤을 추거나. 선생님들이 그런 걸 짜서 춤을 (만들어요). 그런데 민속무용도 창작을 해요. 그런 것은 자기가 못하면 전문가로 하시는 가무단 선생님한테 의뢰를 해서 창작을 부탁하는 선생님들도 계셨고. 그렇게 해서 배워왔습니다.
임: 창작할 때 그런 스토리를 넣기도 하는군요.
조: 네. 초등학교 시기 같으면 이런 게 많았어요. 큰 교과서를 대도구로 만들어서, 교과서를 열면 아야어여오요우이 자음 모음이 나오고 학생들이 ‘ㄱ’ 자, ‘ㅏ’ 자 더하기 해서 춤을 추거나 하는 것들도 (있어요). 초등학교 시기는 그런 작품이 많았어요.
임: 고등학교 올라가시면서 사상적인 부분이 생길 때 혼란스러우셨나요? 어떠셨어요?
조: 조선학교를 졸업하면 조선대학교에 나가서 교사가 된다, 혹은 조선 어디 일꾼 - 일꾼이라고 아세요? 조총련 같은 단체에 가서 돈 벌거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일꾼이라고 해요). 그런 사상적인 측면으로 더 가고 싶다는 사람이나, 그런 거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체계로 나가는 (사람), 이렇게 갈라지거든요. 나는 사상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조선대학교에 그냥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뭐라 할까 권유? 그런 게 있었지만 저는 그냥 편하게 춤을 추고 싶었어요. 그냥 좋아하니까. 그런데 조선가무단에 속하면 또 문화예술선전대인 거예요. 그걸 몰랐고 저는 그냥 춤을 추고 싶어서 계속 춤을 출 수 있다, 춤을 추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취직하는 생각으로 (입단)했지만 문화선전대, 음악이나 춤을 통해서 동포들에게 사상이랄까 민족의 그런 걸 전달하는 예술선전대라는 걸 알고는 좀 - 일본에서 그렇게 조선가무단이나 금강산가극단의 의미나 뜻도 있기 때문에 그게 나쁜 게 전혀 아니고. 그냥 제가 그 사상은 좀 별로 아니었어요.
임: 조선가무단에 얼마나 계셨어요?
조: 전 3년이요. 원래는 더 있고 싶었는데 평양에 있을 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리를 다쳤거든요. 헤르니아라고 해요, 한국에서? 허리뼈가 신경 부분이 이렇게 튀어나와서.
임: 아, 디스크.
조: 네, 그거. 고등학교 1/2학년 때 주인공을 받아서 계속 아침 연습을 하는데, 후배들이랑 다같이 하는데 그 작품을 그냥 계속 비디오로 동작을 보면서 훈련을 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그냥 우리끼리 연습해라, 그런 스타일의 선생님이라서 원래는 근육을 붙여서 훈련을 해야 되는데 그냥 훈련을 계속 했기 때문에 저만 아니라 후배도 몇 명 그렇게 허리를 다쳤거든요. 허리를 다쳤지만 춤이 좋아서 계속 춤을 춰왔는데 평양에서 석 달 동안, 한 달 반은 조선무용기본, 한 달 반은 독무 작품을 배워요. 그래서 한 달 반 전수를 받다가, 우리 선생님이 춤을 계속 이렇게 추면 허리가 더 아프게 된다고 저한테 조선무용수로 활동하는 걸 그만두라는 지시를 내리셔서, 저는 남은 한 달 반 동안 장구춤을 배우고 싶었는데 배울 수가 없었던 거예요. 조선가무단도 나라에서 그런 지시를 받는 곳이니까 이제 조혜미는 조교토조선가무단에 돌아가면 조선무용수가 아니라 뭐 성악수라 할까, 다른 전공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린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게 싫다고 아프더라도 배우고 싶고 더 연구하고 싶고 지금 아파도 좋아지면 춤을 출 수 있는 거니까 계속 선생님이 돼서 가르쳐 달라 해서 연습실에 가도, 선생님은 왜 여기 왔냐고 나가라 해서 선생님이 그때 비파단가극단 배우 선생님이었는데 무용만이 아니라 장구나 성악, 노래하는 선생님들도 유명한 분들이니까 다른 걸 배우러 가라 해서 저를 못 들어오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저희 조선가무단 단장님한테는 이제 조선무용가가 아니고 전공을 바꾸겠습니다, 그런 지시가 내려왔고 그런데 저는 일본에 돌아가는 게 싫었기 때문에 거기서 한 달 반 동안 장구 그리고 민요를 배웠어요.
임: 아, 그러셨군요.
조: 네, 그리고 그 석 달 동안에 중간 발표회, 본 발표회 - 북한의 선생님 심사위원들 앞에서 배운 것들을 하는 공연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전 한 달 반 동안 기본을 배웠는데 - 아, 본정화다. 본정화 공연 때는 치마저고리 입고 노래를 했어요. 노래 그런 건 한번도 해 본 적 없는데 그냥 나머지 기간 동안 그런 민요를 (배웠어요). 노래는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는데 조선무용수로 가서 왜 노래를 해야 되냐고 계속 반항을 했지만 나라에서 그런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어떻게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에 돌아와서는 조선무용수로 춤을 출 수 없으니까 그때 배우던 장구나 노래 같은 걸로 공연에 나가는데 저는 조금 배운 것으로 무대에 서기가 싫어서, 한다면 장구 같은 것도 더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선가무단에 있을 때 도쿄 쪽에 사물놀이하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 선생님한테 사물놀이 장구를 배우러 갔어요. 그때부터 저의 인생 속에서 한국이라는, 한국문화라는 걸 처음으로 만나게 된 거예요. 우리 조선학교에서는 북한에 대한 건 가르치지만 남조선, 남한은 역사로 조선 지도 같은 걸 배우긴 배우지만 현재의 정세 같은 것은 전혀 몰랐고 지금처럼 한류 같은 것도 아직 (등장한) 시기가 아니니까 그냥 몰랐고, 그때 처음으로 사물놀이 선생님한테 가르침을 받고 한국무용이나 그런 것들의 존재를 알게 됐죠.
손: 사실 조혜미 선생님이 처음 다녀오신지 20년 가까이 지나서 지금은 편안하게 덤덤하게 말씀하시지만 그때 당시엔 정말 억울하셨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배운 경험이 어떻게 보면 그냥 포기돼야 하는 게 너무나 안타까우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선생님께 저희가 차차 여쭤보고 싶었던 부분은, 2000년에 남북한의 화해 모드 안에서 북한 방문이 가능하셨던 것 같은데 그때 가시게 된 계기랄까요? 그리고 처음 가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듣고 싶어요.
조: 조선학교를 다니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을 평양으로 가요. 지금 학생들이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저희 시기는 그랬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조선에 원산이라는 곳에 배가 항상 나가 있었는데 그 배의 이름이 만경봉호라고 하거든요. 만경봉호 안에 선원들은 다 북한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옛날 조선가무단이나 금강산가극단이 생길 때는 옛날 선생님들이 그 만경봉호 속에서 춤이나 가야금이나 그런 걸 배웠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만경봉호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니까 수학여행도 가능했는데 수학여행으로 처음 갔을 때는 한 10일 동안 역사적인 식민지, 전쟁 때 역사박물관 그런 것을 찾아가거나 주체사상탑 등 관광을 위주로 갔는데 조선가무단 시기는 3개월 동안 거기서 살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갔을 때는 그냥 우리나라라는 게 이런 곳이다, 그렇게만 느끼고 그냥 어디 여행 가는 것, 제가 한국에 처음 가는 것과 비슷했는데 3달간 살다 보니까 일본에서는 평양이나 조선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매스 미디어에 내보는 것들로 이미지를 갖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아빠엄마들도 그렇고요. 그때는 그래서 가지 말라는 소리도 마니 들었거든요. 납치나, 뭐 그런 것도 그렇고 가서 못 돌아오게 되면 어떡하냐, 전쟁 일어나면 어떡하냐, 그런 걸로 아빠엄마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전 그냥 전문적으로 본국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이때 밖에 없는 거니까 간다고 해서 갔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연습인데 거기서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어요. 항상 우리를 관리해주는 지도원이라는 가이드 같은 선생님이 계세요. 그 선생님들이 우리가 어디 가는 것을 다 관리를 해주시고, 매니저 같은 분. 그래서 연습실이나 필요한 게 있어서 어디 갈 때도 항상 배지badge를 붙여야 돼요. 그런데 그 뱃지는 (보면 아마) 우리가 해외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 거예요. 전 어떤 배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붙여야 돼요. 안 붙이면 못 가요. 처음엔 그게 익숙해지지 않아서 좀 불편한 느낌. 일본에서 사는 것이랑 다르니까. 그런데 살다 보니까 적응이 되고 저는 평양호텔에서 석 달간 있었는데 호텔에서도 층 어머니라고 해서 우리를 돌봐주는 어머니가 계시거든요.
임: 춤 어머니요?
조: 1층, 2층 각 층에 층 어머니가 계세요. 우리가 연습하고 있으면 그동안에 방청소를 해주시거나 돌아오면 ‘연습 잘했냐’ 하는 식으로 돌봐주시는 엄마 같은 분이 계세요. 석 달 동안 항상 매일 얼굴을 마주 보니까 평양이라는 이미지라 할까, 조선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그냥 사람이다. 우리보다 정보가 적고 그냥 일요일이면 대동강 나가서 기타 타고 손풍금 하고 노래 부르고 그렇게 즐기시는 생활 스타일이니까 아주 원시적인 사람? 뭐라 할까요,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다른 정보가 없으니 아주 순한 그런 사람들로 보였거든요. 우리 선생님들도 그렇고 싫은 건 싫고 게을러지고 싶을 땐 게으르고, 그게 재미있있어요. 주체사상에 맞게 다 만세 같은 거 하고 장군님을 위하여, 조선을 위하여, 이런 이미지가 많았는데 가면 우리보다 더 원시적인 사람이라 할까. 북남공동선언이 있었던 해니까 일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랑 김정일 장군님이 얘기하는 그런 동영상도 많이 봤고 그랬지만, 제가 가니까 사람들이 김정일 장군님의 목소리가 어떤 목소리였습니까? 이렇게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하늘 위의 사람? 본 적도 없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그런 사람이니까 우리보다 현실적이지 않은. 그게 나는 되게 놀랍고, 내가 또 하나 놀란 게 평양 사람들은 - 우리는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 밥 먹었어요? 뭐 이렇게 물어보잖아요. 그런데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하면서 처음으로 만나면 ‘무슨 악기를 탈 줄 아세요?’ 이렇게 해요. 김정일 장군님이 예술을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거든요. 평양에서 살기 위해서는 무슨 예술에 재주가 있어야 돼요.
임: 너무 흥미로운데요.
조: 네. 예술 재주가 있어야 되니까 모두 다 피아노, 기타, 손풍금, 노래, 춤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임: 다룰 줄 아는 예술이 있어야 하는 거네요.
조: 네. (안 그러면) 평양에 못 들어와요.
임: 와, 그럼 그분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신 거예요? 아니면 개인적으로 배우시는 거예요?
조: 어떻게 배우셨는지는 저도 모르는데, 한국 뉴스에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조선노동당 몇 주년 행사, 마스게임, 횃불 행진 같은 거, 춤 추고 뭐 그런 게 많잖아요. 그건 평양 시내 사람들이 다 해요. 평양호텔에서 잘 때 아침 5시 쯤 되면 막 시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바깥에 보면 그냥 도로에서 몇 십 명, 몇 십 명이 아니고 몇 백명이 부채 가지고 뭘 연습하거나 다같이 훈련하세요.
임: 일반 사람들인데 그걸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거죠?
조: 네. 평양 시민들은 할 줄 모르면 안 돼요. 해야 돼요.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이 가르치러 가시는데 하는 사람들은 다 평양 시민들. 그러니까 제가 민요 배우던 선생님의 아드님도 횃불 행진을 매일 아침 - 아침이 아니라 횃불 행진이니까 저녁에, 밤에 연습해야 되는데 갈비뼈가 부러지고, 뭐 그 정도까지 훈련을 하니까 싫어한다고, 저한테 그런 소리도 하셨고.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나 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우리 이미지 같으면 그런 말을 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하는 건가 싶었는데 ‘하기 싫다’ 뭐 이렇게 하면서 계속 연습을 하고. 나라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모두. 층 어머니들도 같이 나가서 춤추고 연습을 하십니다.
조: 중간 정화, 본 정화에서 내가 무용수인데 민요는 하기 싫다고 울고 불고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도 그냥 사정을 알기 때문에 나를 위로해주고 싶지만 나라에서 해외교포한테 지도를 하고 성과를 보여야 하는 입장이니까 ‘너도 이해해라. 해서 그냥 하고.
임: 나라에서 지시했다는 게 북한에서 지시한 거예요?
조: 네, 죄송해요. 북한에서 지시를.
임: 방문한 단체가 어떤 단체예요?
조: 우리 같은 해외교포를 위한 예술센터가 있거든요. 그니까 조선무용을 하는 우리 해외교포 단체를 위한 수준의 교육을 하고 의상 같은 것도 제공하고 우리가 조선무용 하는데 의상을 만들 때 주문을 하는 그런 예술센터가 있거든요. 거기에다가 조선가무단에 입단하고 2년 째가 되면 강습을 받으러 석 달간 반드시 가야 돼요. 지금은 아마 한 달도 못 가요. 우리 시기는 아주 좋 았기 때문에 석 달간 아침저녁 계속 할 수 있어서 그만한 배움이나 생활, 그 속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들도 많았는데. 선생님들도 거기 배치되고 성과를 내야 내년에도 다시 그런 일을 받을 수 있다고 할까, 그런 식으로 하시기 때문에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서는 정말 친한 엄마나 그런 느낌으로 나를 돌봐주시긴 했지만 이것도 하나의 의무로 봤을 때는 엄하게 하시고. 선생님이랑 하기 싫다고 싸우기도 했어요.
임: 북한에서 주로 기본만 배우셨어요, 아니면 레퍼토리도 배우셨어요?
조: 전 그러니까 결국 기본을 배웠죠. 작품들은 그냥 조선가무단에 있을 때. 공연에서 무대에서 추기 위해서 선배랑 같이 배우고 그랬었어요.
임: 어떤 기본을 배우신 거예요.
조: 아까 말씀드렸던 그런 조선무용기본이고요. 그리고 그때는 또 새로운 기본 동작이 있어서 이름이 뭐였는지는 자료를 봐야 아는데, 좀 새로운 동작이 있어서 녹두리나 뭐 몸을 쓰는 데 새로운 동작이 있어서 그런 기본들을 추가로 배우거나.
임: 그 기본을 평양에서 배우실 때와 일본에서 조선학교나 무용단에서 배우실 때 다른 부분이 있었나요?
조: 조선학교에는 경연대회가 있잖아요. 그럼 조선무용기본의 경우 각 지방에서 같은 걸 추는데 다 틀려요. 그런데 조선말, 우리말도 있잖아요, 다 조선학교에서 같은 시기에 배우면서 초중고 다니는데 일본의 지방 사투리가 그 말에 억양에 나와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한국에서 일본어를 배워서 얘기할 때 부산 사람 같으면 부산 사투리의 일본어예요. 그런 것처럼 조선학교가 각 조선말을 쓰는데 일본어 사투리가 그 억양에 나와요. 우리 같으면 선생님 – 한국 사람이면 어떻게 하죠, 선생님을. 일본 간사이 같으면 선생!님 이렇게 해요.
임: 억양이 다르네요.
조: 네, 일본어 센!세 처럼. 일본어를 그냥 한국말로 바꾸니까 그때 우리는 한류 드라마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들도 2세, 3세가 되기 때문에 언어는 있다 하더라도 1세 분들의 말을 못 들어봐서 그냥 일본어를 우리말로 바꾼 거니까 억양은 일본어예요. 그래서 조선학교에서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기 때문에 달라요. 춤도 마찬가지로 그 성격이 다 나와요. 간사이 지역은 좀 세고, 그런. 다 똑같은 걸 해도 그런 점에서 다르기 때문에 조선가무단이나 금강산가극단에서 하는 전문가 선생님들이 평양에서 원조를 똑바로 배우고 그 일본 억양이 없도록 가르치는 게 중요했어요.
홍: 제가 알기로는 그 기본춤이 3차 개편 됐다고 알고 있거든요.
(접속 끊김)
(…)
(재접속)
홍: 제가 질문 드리다가 끊겼는데요. 조선기본춤이 다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선기본춤이 여러 차례 개편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조: 네.
홍: 그렇게 개편이 된 춤마다 좀 다른 건지 궁금하고, 지애샘 질문처럼 조혜미 선생님께서 조선학교에서 배우던 기본춤, 그리고 북한에서 배우는 기본춤, 조선가무단에서 배우는 기본춤이 개편 시기마다 달라졌는지 등이 궁금했어요.
조: 개편 됐을 때 중앙에서 경연대회마다 ‘작년은 이랬지만 이렇게 해라, 여기 동작은 이 각도였지만 이렇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 공통적으로 그때마다 적응을 했었어요. 그런데 최승희무용기본이 된 지 아직 몇 년 (안 됐는데). 조선기본무용은 일본에서도 몇 십년이나 춤을 춘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개편되더라도 적응을 할 수 있었어요, 지도할 때도. 그런데 최승희무용기본은 계속 하던 분들한테도 처음 하는 일이니까 그게 지금 아주 어려운 것 같아요. 이제 몇 년 지났지만 아주 그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좀 배웠는데 전혀 달라요.
홍: 어떤 식으로요?
조: 북한의 음악이 선율이 아주 강하잖아요. 조선무용 음악이랄까. 타악 부분이 좀 (있더라도) 선율이 잘 들려와요. 한국의 기본이면 선율이 있다 하더라도 기본 장단을 잡아야 하잖아요. 그런 게 조선무용기본의 경우 장구 소리가 들리긴 들리지만 선율 위주로 계속 춰왔어요. 그런데 최승희무용기본은, 같긴 같은데 그 장구 장단을 잘 듣고 잘 익혀야 춤을 출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본과 좀 비슷한. 전 한국춤을 배웠기 때문에 그 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제까지 계속 조선무용을 추던 사람은 그 개념이 없어서 장구춤을 출 때 장단을 외우긴 해도 굿거리 장단이 어떤 장단인가, 거기까지 소화되는 사람이 드물죠. 그러니까 지금 동작으로 가르친다 하더라도 이건 어디로 나가야 되냐, 시선을 어떻게 해야 되냐, 이렇게 생각을 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춤처럼 호흡으로 인해 가는 길이 있잖아요. 그런 걸 하면 (거기에) 가까워질 수가 있는데 그게 항상 직접 가서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는 게 아니니까 어려운 것 같아요. 한국 같으면 가서 배우거나 선생님 모시고 배우니까 해외에서 배워도 그 호흡을 익힐 수가 있는데 북한은 자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동영상으로 가르친다 하더라도 어려운 측면이 좀 많아요. 그런데 아마 최승희무용기본이 지금 변한 부분은, 북한에서 조선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장단이라 할까, 그런 부분이 좀 희미해지니까 그건 안 되겠다 하는 측면에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얘기도 좀 들었어요.
홍: 혹시 이번에 개편된 최승희조선무용기본이, 최승희 선생님이 북한에 가셔서 제일 처음에 만들어낸 조선무용기본을 다시 가져온 건가요?
조: 예, 아마 그걸 위주로 하셨을 거예요.
임: 제가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는데 북한에 최승희 선생님의 무용기본과 조선기본춤, 이렇게 두가지 부류가 있는 거예요?
조: 네, 저는 그렇게 조선무용기본만 있었다고 생각해요.
홍: 제가 이해한 바로는 최승희 선생님께서 조선무용 민족무용기본을 만드셨고, 최승희 선생님 숙청되 시고 조선민족무용기본이 조선무용기본동작으로 바뀌고 음악 같은 것들도 계속 빨 라지면서 3차 정도. 2017년도에 3차 개편을 했다고 들었거든요. 이제 거기서 더 개편되지 않고 최승희 조선무 용기본, 최승희가 맨 처음에 만들었던 기본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조: 맞아요. 맞아요.
임: 개편이 되었던 거군요.
홍: 네, 제가 이해한 바로는요.
조: 네,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홍: 제가 2017년도에 북한춤과 한국의 기본춤 연구를 했었어요. 그때 관심이 많아서 직접 가서 금강산가극단에서 판매하는 조선무용기본 DVD도 봤어요.
손: 연결해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지금 말씀처럼 춤의 속도도 빨라지고 최승희류 기본에서 다른 스타일의 조선무용기본으로 바뀌면서 3차까지 개편이 될 때는 그걸 만든 사람이 특정되지는 않는 거예요? 어떤 분이 이런 걸 만들었다, 하는 분이 계시진 않아요?
조: 저도 거기까진 잘 모르기는 한데요, 일본에서 봤을 때 금강산가극단은 항상 겨울에 북한에 가서 작품을 보고 봄에 돌아와서 일본 전국 공연을 하고, 다시 겨울에 가서 배우고 오는 식으로 현재의 북한에서 추는 춤들을 - 그리고 뭐 재일교포용으로 금강산가극단의 공연이 만들어지고 오는 거예요. 저희 가무단은 그 공연에서 한 것을 추거나 하기 때문에 직접 배울 수 있는 건 금강산가극단이니까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찾으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시기는 어떤 선생님들이 하셨고, 그런 것들요. 그리고 금강산가극단이 제가 가무단 수석을 했을 때는 북한의 예술을 하는 예술단체라는 느낌이 많았는데 언제부턴지 그런 주체사상보다 민족적인 것, 민속적인 걸 해야 된다는 걸로.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교포들도 많아지는 이 일본 사회에서 북한의 것을 하면 열성적인 사람은 좋아서 보러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안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관객도 없어지면 안 되니까 재일교포들을 위한, 재일교포들이 원하는 그런 무대가 뭔지,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바뀐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어떤 선생님들이 창작하시는지, 또 그것도 재일교포, 여기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이 창작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최근에는 완전히 북한에서 하는 오리지날 그대로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어쩌면 한국 스타일? 한국 스타일이거나, 제가 보기에는 몇 년 전에 갔을 때 – 중국 무용가 양리핑 아세요? 공작 춤 추는. 그런 분이 계시는데 그 사람의 춤 스타일이라 할까, 손님을 모으기 위한 무대연출? 이제까지는 가극단이나 가무단이 예술선전대로서 북한에 대한 것을 전하는 문화선전대였다가 지금은 재일교포들이 원하고 사랑해주는 그런 예술을 해야 된다는 쪽으로 좀 바뀐 것 같아요. 뭐 한류 드라마에서 부르는 그런 노래 같은 것도 하기 시작했고 심청전이나 춘향전 같은 옛날 전통 테마로 공연 제작을 하거나. 제가 학생 시기에 보던 가극단 무대와는 많이 바뀌었어요. 나도 좀 궁금하긴 궁금하니까 다시 물어볼게요. 최승희무용기본이 된 그 이유라 할까.
임: 선생님, 북한에서 조선춤 훈련하실 때 연습 과정이 있잖아요. 한국춤 같은 경우는 기본춤을 먼저 한 다음에 제동작, 테크닉 하나씩 반복하고, 그 다음에 작품 연습을 하는 일련의 순서들이 있는데 북한에서 조선춤 훈련하실 때 연습 과정이 궁금해요.
조: 거의 비슷하죠. 그냥 선생님의 입장단이나 장구 치시는 장단에 맞춰서 하나씩. 한국춤은 선생님이 추시는 걸 그냥 따라서 호흡 맞추고 장단 치셔도 – 둘이 어떻게 다른가.. 거의 같은데. 조선무용 본 적 있으세요?
임: 전 유튜브로 봤어요.
조: 아주 빠르고 하나의 춤이 5분이에요. 길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무용이면 굿거리에서 자진모리로 넘어가고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고 아다지오, 알레그로 뭐 그렇게 발레 용어로.
임: 그런 음악 용어를 쓰나요?
조: 네, 그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항상 느린 속도에서 빨라지고 끝난다, 이런 연출이 많아서 5분 춤 추는 것도 하나의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기본 동작에서는 발놀음, 곱디뎌, 동작 하나씩 섬세한 것들을 가르쳐 주시는데 하나의 작품을 배울 때는 그 체력이 필요하니까 토할 때까지 계속 추라고 하셔요. 먼저 우선으로. 그래서 그 체력이 붙었을 때 거기서 나타나는 뭐라 할까요, 예술적인 정서 부분이라든지.. 아무튼 다리가 엎어지지 않게 계속 웃어야 되고 여유스럽게 춤출 때까지 계속 다시, 다시 해서 훈련처럼 몇 번이나 했어요. 그런데 민속춤 같은 것들은 풍이라 할까, 딱 찍는다거나 여기서 풀고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한국 선생님이나 북한에서 하시는 선생님이나 중요시하는 부분이 똑같았어요.
임: 호흡 하는 걸 강조하세요?
조: 네. 그런데 음악이 너무 빠르니까 따져가면서 춤을 출 때는 그걸 느낄 수가 있는데, 천천히 하면 선생님이 중요시하시는 부분이 무슨 말인지 알고 여기를 올린다, 뭐 그런 걸 아는데, 춤을 그냥 음악에 맞춰서 추면 그게 순간인 거예요. 기본을 할 때는 한국의 선생님들하고 평양에서 하시는 선생님 하고 내가 느끼기에는 뭐, 같았어요. 그런데 한국춤은 8분 10분 12분 20분 이렇게 있잖아요. 그럼 그걸 소중히 춤을 출 수가 있지만 북한춤은 그냥 돌고 뛰고 뒤집고 실패없이 추는 게 중요하다고 할까, 기본에서 섬세한 것들을 배우긴 하는데 작품에서는 그 연출된 세상을 똑바로, 틀림없이, 실패하지 않고 춘다는 게 중요하게 된다고 할까. 다는 아니지만요.
임: 유튜브 통해서 조선춤, 북한춤을 보면 빠른 장단, 리듬의 춤이나 화려한 테크닉이 많아요. 그게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데. 춤이 왜 그렇게 빠를까요?
조: 북한이 추운 나라잖아요. 그래서 춥다 보니 서툴러지게 춤을 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있었고. 그리고 남한은 북한에서 보면 좀 느릿느릿하다고 할까. 그러니까 더 지루하지 않게 빨리빨리 해야 된다. 뭐랄까 한국에서 판소리 하는 소리가 거칠게 되면 북한은 목소리를 더 맑고, 서양 오페라 같이 한다든지 뭐랄까 (한국과) 대립하는 것처럼. 저는 그렇게 느낀 적도 있어요. 왜 소리를 거기까지 그렇게 – 노래 배울 때 내 목소리가 이런 소리니까 그렇게 ‘선생님’ 불러도 그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선생님들도 똑같이 (본인 목소리 대로) ‘혜미야’ 이렇게 하시는데 예술에서 목소리를 변하게 해야 된다는 게 전 아주 자연스럽지 않아서 좀 싫었어요. 그게 우리 북한의 예술이다, 라는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원래 평양이라 할까 북쪽 반도는 그런 건가요?
임: 추운 지방으로 올라갈수록 움직임이 빨라지고 호흡의 쓰임이 다른 부분은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이매방류 살풀이는 남쪽 지방 춤이고 살풀이 들어갈 때 덩에서 호흡이 내려가요. 그리고 한영숙류 살풀이는 서울경기지방인데 덩에 호흡이 올라가요. 한영숙류는 몸이 일자로 곧게 서있고 호흡이 상체에 차 있다고 한다면, 이매방류 살풀이는 중심이 밑으로 가라앉아 있고 하체 또는 회음부를 굉장히 많이 사용해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조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상적인 부분도 있고 발레도 배우고, (춤의) 의도가 장군님을 향해 땅이 아니라 하늘로 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북한에서 배우실 때 호흡이나 테크닉이 땅이 아니라 하늘로 향하는 게 사상적인 부분이랑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조: 아마 그냥 형상이, 가슴부터 위로 이렇게 제끼고 펼치는 그런 것이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상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얘기 들으면서 (생각난) 또 하나는, 기본 동작에서는 걷기를 발뒤꿈치로 걷거든요. 한국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무대 위에서 할 때는 계속 를르베예요.
조: 뒤꿈치를 붙여서 민속춤으로 잠깐 있긴 한데 조선무용기본의 잦은 발, 잦은 걸음, 이것이 를르베로 머리를 흔들지 않고 사선으로 딱 달린다든가. 그런 게 경연대회에서는 하나의 평가 부분이에요.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무릎 아래 다리를 막 빨리, 안 보이게 하면 잘하는 것. 이게 춤 잘하는 사람들. 그런 것도 있고 테크닉이 좀 달라요. 무대 위에서 군무 같은 것들은 열두 명, 몇 십 명으로 추니까 원이 퍼졌다든지, 마스게임처처럼 형상하는 일이 많아서 하반신 훈련이나 돌기, 원돌기, 팔자돌기, 사선돌기, 뛰어돌기, 그런 게 작품 후반에 - 사물놀이에서 개인놀이 했다가 마지막에 소고잡이가 막 뒤집고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5분 마지막에는 절대로 원돌기가 들어가거든요. 원돌기 두 바퀴, 그런 거. 그래서 그런 하반신 훈련을 많이 하죠. 좀 정서적인 장구춤이나 그런 것은 그 민요의 억양에 맞아떨어지도록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된다, 그런 것도 가르침 받긴 하는데. 하반신 훈련을 못하면 조선무용은 잘 못 추죠.
임: 그럼 실제로 북한에서 무용수들이 발레 같은 서양무용 훈련을 하기도 하나요?
조: 네. 북한 무용선수들은 발레도 하고 여러 나라의 춤 무용을.
임: 현대춤, 서양 현대무용 같은 것도 배우나요?
조: 아. 지금은 모르는데 제가 그때 접한 언니들은 - 미국은 아무튼 적이라서 힙합 같은 춤이나 그런 문화는 거의 없을 건데요, 러시아 같은 그런 곳은 강하니까 발레는 러시안 발레였나, 그리고 중국의 뭐 - 아까 양리핑 얘기했는데 그런 공작의 춤이나. 그것은 아주 관절을 많이 쓰는 춤인데 그런 것도 하시고. 그리고 비파단가극단, 모란봉, 만경대예술단 그런 예술단마다 아마도 컬러가 다 다르죠. 저도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 자주 가는 후배한테 물어봐야 되는데 저도 좀 궁금해요.
임: 북한춤에서 다루는 가장 느린 장단과 가장 빠른 장단이 궁금해요.
조: 가장 빠른 건 휘모리 장단이에요. 늦은 거는 굿거리 장단도 자주 쓰고 진양 민요에서는 진양도 있거든요. 그런데 춤에서 진양을 쓰나?
임: 중모리, 중중모리 뭐 이런 장단들?
조: 중모리 장단은 있긴 있는데 거의 없어요. 거의 경험을 안 하죠. 그런데 창작을 하는 춤에서 동작이 모두다 빠른 게 아닌데 금강선녀..
조: 금강산의 선녀를 표현한 그런 작품이나, 최승희 선생님 작품에도 있는.. 미륵보살? 네, 보살춤 같은 것들은 장단보다 그 음악의 선율에 따라서 천천히 움직이거나 그런 것들은 있어요. 움직임도 천천히 손을 올린다거나, 그런 건 있어요. 그런데 한국춤처럼 밑에서 끌어당기고 어쩌구저쩌구 거기까지는 훈련을 안 해요.
임: 조선춤의 군무에 등장하는 솔로 외에 살풀이나 승무 같은 독무가 있나요?
조: 네, 독무 있어요. 그런데 살풀이, 승무는 없어요. 그런데 없다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수건춤은 있어요.
임: 아, 수건춤이 독무로 추어지나요?
조: 기본무로 있었거든요. 수건을 던지고 그런 기본무는 있어요. 그런데 한국의 살풀이춤 같은 솔로는 거의 본적이 없네요. 솔로가 장고춤, 바라춤, 부채춤, 북춤 등 여러 가지 있긴 한데 수건이나 장삼을 끼고 하는 그런 거는 본 적은 없네요. 그런데 무녀춤. 무당춤. 그런 건 있어요. 무속적인 것. 한국도 방울 끼고 부채 들고 뛰고 하는 무당춤이 있잖아요. 북한에서도 똑같이 부채 가지고 방울 끼고 하는데, 형상이 비슷하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한데 그 원점에 있는 건 똑같은 것이라는 느낌은 있어요. 무당이라는 게 어떤 건가 하는 거는.
임: 선생님들이 가르치면서 언어를 사용하실 때, 덩, 덩기덩덩 하는 식으로 입장단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물을 형상화하기도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나요?
조: 그런데 덩기덕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예를 들면 안딴 장단이라는 게 있는데요, 안딴 장단.
임: 안딴 장단이요.?
조: 네, 동살풀이 장단이랑 비슷하다고 할까. 아세요?
홍: 돌 때 쓰는 것.
조: 한국에서도 돌 때 안딴 장단 써요?
임: 전 처음 들어봤어요.
조: 안딴 장단 경우는 아주 쉬운데, ‘덩-기닥닥 쿵딱쿵딱’ 이게 원박인데 안딴 돌기라는 게 있어요. 안딴 돌기를 배울 때는 이런 장단인데 안딴 돌기를 구음으로 할 수 있는 무용수들은 많을 거예요. 그런데 민속춤 같은 건 장단이 민요니까 - 한국 같으면 이렇게 이쪽을 잡아서 땡긴다, 이렇게 가르칠 건데 조선무용 같으면 선율을 불러요. 그러니까 춤이 다 선율에 붙어있는 것 같아요.
임: 더 가벼울 수박에 없겠네요.
조: 네, 맞아요. 맞아요.
임: 팔의 움직임이 강조될 수밖에 없고요.
조: 네. 사르르르 이렇게 가는 잦은 걸음. 같은 민요라 하더라도, 민족 악기가 개량된 악기잖아요. 음계도 - 지금 가야금이 한국에도 12현 말고 30 몇 현? 그런 것이 있으면 음악의 세계가 달라지는 것처럼 민족 악기의 세계관 역시 가벼우니까 가볍게, 흔들림 없이 확, 그렇게 보여지는 테크닉을 원하는 것 같아요. 휘모리가 되면 아직 선생님들도 ‘덩덩덩덩’ 이렇게 하셔요.. 그런데 노래로 하시네요.. 노래로 하셔요. 그리고 ‘덩’이 아니라 뭐 라라라, 타크타, 뛰어야 되니까 그런 건지 ‘런 런’ 이렇게.
조: 그렇죠. 그것도 그러니까 틀림없는 구음이죠. 느낌이 그러니까요. 라라라, 라리리 이런 식으로. 그리고 돌 때는 세탁기처럼 돌아라, 이렇게. 휙. 세탁기.. 뭐라 해요?
임: 탈수기요?
조: 네. 탈수기, 탈수기. 그걸 계속 하셔요.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탈수기가 뭐. 돌 때도 옷이 꽉 이렇게. 회전도 속도를 내라고. 그런 형상을 하신다거나.
임: 그 말씀 하시니까 이게 기억나요. 북한에서 춤 배울 때 가르쳐주는 선배 언니가 쉬는 시간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고. 전 무용수니까 그게 어떤 건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한국춤 훈련할 때 그렇게 배웠던 시기가 있어요. 그래서 궁금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춤춘다고 하셨는데 북한 무용수들 하루 일과나 하루 연습량이 얼마나되나요?
조: 진짜 아침부터. 국가 선수 언니들은 저보다 더 심할 거예요.
임: 아, 국가 선수라고 해요?
조: 네, 국가 선수. 그 외교, 다른 나라에서 손님이 왔을 때 공연하는 국가 선수가 있거든요. 무용가. 그런 언니들은 정말 몸매도 보고 그런 것으로 뽑힌 언니들인데. 그리고 북한춤은 계속 웃고 있잖아요. 웃어야 돼요. 5분 동안 계속 웃기도 힘들어요. 힘들면 힘들다는 표정을 하고 싶고 힘든데도 웃어야 되고 웃기 위해서는 여유로워야 되니까 좀 특이한 그 – 어떻게 말할까. 훈련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건 하는데, 그 시간이 힘들다기보다 그 5분이 힘들었어요. 아다지오, 알레그로로 나갈 때 내 호흡이 못하는데 계속 웃으면서 착, 끝나야 되니까, 좀 부자연스러운 그 속에서 추는 게. 그런데 아주 힘들지만 그걸 넘어가면 좀 중독적인 그 뭐라 할까 - 그 달성감이나..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임: 어떤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조: 조선무용이 힘든데 다 해요. 왜 출까요. 왜 추는지 그 예술성이 좀. 아주 계산된 그런 예술 발란스가 있어요. 나도 그 속에서 힘든데 거기를 넘어가면 기분 좋게 추는. 아무튼 돌기, 자선, 달리고 뭐 돌기, 그런 게 힘들었다. 나머진 뭘 했을까. 오전 연습은 발레랑 기본, 오후 연습은 작품. 작품은 선생님의 입장단, 호령에 맞춰서 하나씩 다지거나, 그걸 익히고 나면 음악에 맞춰서 세 번에서 다섯 번은 연속해서 추고. 그때 토해야 합니다. 토해야 그것이 시작이에요. 왜냐하면 싫어지잖아요. 이제 이걸 추기 싫습니다, 이렇게. 싫다 하더라도, 그래도 오는 애가 잘하는 것 같아요.
임: 그걸 넘어가야.
조: 네. 우리 재일교포들도 그러는데 학생시절에 무슨 소조를 했냐고 해서 ‘조선무용 했습니다’ 이러면 아빠엄마들은 조선무용 하는 애들이랑 결혼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임: 독하다고요?
조: 겉으로 보는 건 예쁜데 너무 강해서. 성격이 너무 강하고 독해요.
임: 그게 없으면 해낼 수가 없으니까.
조: 못해요, 네. 그 정도로, 무서워할 정도로 근성이 없으면 추지 못하는 춤? 그런 강한 것이 그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성격적인 거는. 그런데 막 얌전한 분도 계세요. 계시긴 계세요.
임: 문득 궁금한데 남성분은 없나요?
조: 재일교포는 남성분이 적어요. 그런데 육상 소조에서 뛰는 게 아주 좋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하반신이 강하다 뭐 그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애가 있으면 금강산가극단에서 그 사람들을 뽑아가요. 지금 그 금강산가극단에 남성 무용수로 류정일 오빠가 있는데 제가 우리나라 가서 배우고 있을 때 같은 교실은 아니지만 같이 강습 받은 오빠예요. 그런 오빠들은 학생 시기에 달리기만 계속 했는데 조선무용은 그때 처음으로 접하는 거잖아요. 그럼 남성 무용가들은 그때 북한에서 계속 훈련을 받고 뛰거나 그런, 좀 아크로바틱한 것들 위주로.
임: 북한에도 남성무용수들이 있어요?
조: 계세요. 많아요.
임: 전 한번도 못 봤어요.
조: 최승희 선생님 제자 분도 남성 무용 선생님, 이름이… 백홍천 선생님 아세요? 지금 한국에서 많이 가르치시죠?
임: 따님이랑 같이 활동하시는 분. 따님도 무용하시죠?
조: 네, 백향주 언니. 그 언니 선생님이.. 이름을 까먹었는데 그 선생님도 남성 무용수였어요.
임: 유튜브에서 남성 무용수가 추는 레퍼토리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조: 아, 그래요? 제가 백홍천 선생님 페이스북 친구였나.. 백홍천 선생님은 지금 한국에서 쟁강춤, 그런 걸 가르치고 계시는데 그 선생님은 주체예술보다 아주아주 민속무용. 저는 금강산가극단 1980년대 무용수 선생님들을 아주 좋아해요. 그 풍이나 멋이나 그런, 우리춤의 뭐랄까, 아주 맛이 있고 그 세대보다 좀 더 위의 선생님들인데 그 시기가 좋아요. 그 시기 춤이랑 지금은 전혀 좀 달라요. 한번 보시면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아실 거예요, 아마.
임: 80년대인가요, 70년대?
조: 80년대. 저는 80년대 좋아해요. 지금은 가극단 오빠들도 그런 말을 하시는데 키가 170 되어야 된다, 그런 식으로 외모로 규정을 하거든요. 지방 가무단은 외모 말고 그냥 하고 싶다는 열성을 보는데 열정이라 할까. 가무단은 무대에서 춤 추는 것보다 행사가 있으면 들판이든 어디든 어디서라도 돌고 뛰고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가극단은 무대가 마련된 좀 특별한 아름다운 세계. 우리는 지방 가무단은 직접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그런 무용수들이라서 그런 형상이 좀 다른 측면도 있는데. 그렇지만 그 옛날 언니라 할까 선생님들이 추는 거는 어떻게 말하지 - 아무튼 백홍천 선생님은 이제 나이가 아마 70세 되셨나? 그런데 지금도 바 훈련을 하고 아침부터 훈련하고. 그 선생님이 추시는 거는 뭐더라 - 여자 한 명에 남자 둘 3인무가 있거든요. 그런 남성 무용도 많았어요. 지금은 그런 춤 거의 못보게 됐고 남자 역도 여자가 하거나 그런 연출이 많지만 옛날에는 남성무용수들도 아주 멋있고 맛있는 그런 선수가 많았어요.
대담자 임지애(이하 ‘임'), 손옥주(이하 ‘손’), 홍정아(이하 ‘홍')
손: 진짜 재미있네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임: 이렇게 가까운 곳에 계신 분과 북한춤에 대해서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되고 디테일한 부분과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됐어요.
홍: 엄청난 시간이었네요. 안딴 장단이 나왔는데 그게 동살풀이 같아요, 한국으로는. 조선어로는 안땅이라고 쓰는데 제가 안딴 장단을 찾아봤더니 전라남도 무가에서 농악에 쓰이는 장단으로 안당거리에 쓰인다고 해서 안당장단이라고 한대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안당이라고 쓰는데 거기선 안땅이라고 쓰나 봐요. 북한이 순수 우리말을 많이 쓰잖아요. 무속에 쓰이는 안당을 안땅이라고 쓰는 것 같아요.
손: 그런데 훈련을 알레그로, 아다지오로 하실 줄은 정말 몰랐네요.
홍: 저는 되게 익숙한 게 탈북하신 최승희 선생님 제자 분이 계속 그런 용어를 쓰셨거든요. 발레 같은 기분이었어요. 조선춤의 기본이 발레라는 느낌. 이분도 똑같이 얘기하시더라고요. 한 시간 발레 하고 한 시간 기본 했다고 하셨잖아요. 북한에서도 그런대요. 기본을 발레로 다지고 체력 같은 걸 키운 다음에 조선춤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임: 를르베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옥주샘, 최승희 선생님이 동양발레 포부가 있으셨잖아요. 이런 게 그 부분에서 온 것일까요?
손: 동양발레 같은 경우에는 군무라는 형식, 그리고 동작을 안무할 때 포메이션, 이런 부분을 - 발레가 정말로 무극이니까 그런 형식을 가지고 오려고 했던 것으로 저는 이해를 했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 최승희 선생님 뿐 아니라 조택원 선생이고 누구고 전부 1세대 신무용가로서 서양 무용계를 경험한 후에 본인들도 그들이 하는 아름다운 발레 형식에 대응하는 형식으로서의 군무를. 왜냐하면 그분들은 그전에 이시이 바쿠 선생님 밑에서도 그렇지만 그런 웅장한 규모의 군무를 트레이닝하셨던 건 아니잖아요. 일단 개인적인 기본 동작을 트레이닝 하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 대부분 솔로, 듀엣, 트리오, 이 정도 규모였고 발표 형식도 개인발표회를 많이 했었고요.
임: 그렇다면 동양발레라는 게 어떤 소소한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발레라는 전체적인 포메이션이나 규모를 빌려오려고 했던 거였고, 그래서 최승희 선생님이 대본도 직접 쓰지 않으셨나요?
손: 무용 대본도 아마 직접 쓰시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소재만 뭔가 견우직녀 이런 것일 뿐 서양 발레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굉장히 유사한 방식으로 하는 거예요, 튀튀를 치마저고리를 변형시킨다거나. 그 근원은 그렇게 유사한 거죠. 저는 그렇게 그냥 대응 형식으로 했다고 이해했었고요. 발레 같은 경우에는 신무용가들이 다 했었으니까요. 이시이 바쿠 선생도, 근대 일본 신무용가들도 트레이닝 방식으로 다 했었으니까요.
임: 그런데도 재미있는 건 한국도 다르지 않다는 거.
손: 저는 오늘 말씀 들으면서, 제가 잘은 모르지만 기본을 익히는 방식의 경우에 이건 남한이고 북한이다 하는 지역적인 부분을 떠나서 유사한 부분이 의외로 많겠다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부분이 이게 작품으로 들어갈 때요. 작품을 공연할 때는 그 차이가 남북한 춤의 차이가 속도감인 거잖아요. 작품 시간도 시간이고. 그러면서 막 탈락되는 호흡이라든지 장단의 뉘앙스들? 속도 안에서 그런 것들이 다 뭉개져야 되는 상황이니까 그런 데서는 차이가 나오지만 기본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북한춤 하면 마냥 피규어나 포메이션이 강조된다는 식으로 한국과 대조적인 스타일로만 생각했는데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겠다 싶었어요.
임: 저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 게 춤에 결부되는 사상만 빼면 훈련 과정이나 강도가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리고 무용단에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히려 공감이 많이 됐어요, 옛날 이야기 듣는 것 같고. 저는 이제 그런 방법으로 연습을 하지 않지만 닮아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토할 때까지 춘다는 거 훈련하면서 많이 경험했고요. 한국 대학의 무용 교육도 세 개를 다 배워야 하잖아요. 발레는 기본으로 당연히 해야 되는 거고 현대무용 배워야 하고요.
손: 또 하나 계속 질문이 드는 게, 공유했던 조혜미 선생님 인터뷰 영상에서 선생님이 한국춤을 배울 때는 확실히 북한의 조선무용보다는 호흡이나 장단을 익히는 게 어려웠다고 하시는데 굉장히 많은 분들의 사례를 들어보면 저는 연구하는 입장에서 한국춤은 북한춤과 달리 호흡이나 장단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특징이라는 식으로 이해를 많이 했거든요. 두 춤 스타일의 차이가.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드는 거죠. 정말 북한춤에는 호흡이 없고 장단이 없을까? 이미 교습 가능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연구돼서 후학들에게 전달되는 교습법으로 정착했다는 건 호흡과 장단이 하나의 전승 가능한 방식으로 단일화된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거든요. 원래 예전부터 있었던 호흡을 지금에서 이어받는다 이런 게 아니고요.
임: 네. 옛날에 민속춤 추면서 누가 호흡 생각하고 장단 생각했나요.
손: 호흡이 호흡으로 인지되는 순간에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저는 생각해서.
임: 제 생각에는 근대로 넘어 오면서 특정한 류파와 함께 춤의 체계 만들어지면서 사용했던 축인 것 같아요. 아까 조혜미 선생님 말씀하실 때도 북한춤 가르칠 때는 장단 강조하고, 또 뭐라고 하셨더라, 한국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과 굉장히 비슷한 부분을 말씀하시더라고요.
홍: 최승희가 장단,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았는데 장단을 선율로 바꾸고, 당시 최승희가 중요시했던 소품춤 등한시하고. 그렇게 하면서 음악이 빨라지고 장단을 잡기보다는 그냥 흘러가면서 리듬에 따라 춤이 계속 빨라지는 것으로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북한은 국가가 그 춤을 주관하다 보니 최승희라는 한 예술가가 어느 정도의 틀을 잡았고, 그런데 그 사람을 부정해야 되기 때문에 뒤집어엎는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난 전승 방식이 있었고, 그래서 개편될 때마다 기본춤이 빨라지고.그러면서 지금에 왔는데 다시 최승희가 복원되면서 다시 예전의 최승희의 춤으로 가고, 그래서 그것에 약간 적응이 안 되는 그런 게 아닐까 싶었고요.
임: 조혜미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주체사상의 춤에서 이를테면 민족 사상의 춤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말씀하신 부분이랑 닿는 것 같아요.
홍: 어떻게 보면 최승희를 다시 부활시키면서 북한도 민속적인 걸로 회귀하고 있고, 재일교포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민속적이고 민족적인 걸로 회귀하고 있고.
손: 정말 흥미로운 게, 저는 최승희기본을 전통춤의 기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거든요.
손: 그런데 시간성이 흥미롭게 도치되다 보니까 최승희 기본이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원류의 시간성은 다 삭제되어 버린 거라는 느낌을 약간 받았어요.
임: 최승희가 여기서는 전통의 출발이 되는 건가요?
손: 그렇죠. 그래서 다시 되돌아가는 전통이라고 했을 때, 혹은 어떤 시초적인 거, 오리지널한 것을 찾으려고 했을 때 돌아가 보면 그것이 최승희 기본. 지금 다시 그렇게 된 건지.
손: 최승희 춤과 한국춤의 여러 특징들을 결부시켜서 이해하고 감각하시는 것 같아서 흥미롭더라고요.
홍: 기본춤을 비교했을 때 정말 재밌었어요. 혼종성이 남북 기본춤에 다 있어서. 박금술 기본에서는1번 발을 써요. 완벽하게1번 포지션. 거기서 시작하거든요. 그런 것도 재미있고. 또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듯이 최승희 기본이 전통적인 거냐고 할 때 최승희는 정말 전통적인 기본춤을 만들려고 노력해서 만든 거거든요. 북한에 남아있는 전통무용, 민속무용 선생님들과 어떻게 했는지. 그때 대대적으로 국가적으로 지원을 했기 때문에 과연 최승희 혼자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임: 조선민족무용기본. 이거 보면 사진부터 한국춤에서 볼 수 있는 느낌이고 탈춤도 있고 동양발레를 전혀 상상할 수 없어요. 이게 물론 움직임을 노테이션으로 그려놓은 거지만, 되게 민속적이에요. 그래서 이걸 보면서 최승희가 북한에 있으면서 그 지역 민속춤을 발굴하고 개발하려는 노력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체제나 이념, 이런 건 전혀 드러나지 않아요.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의상, 소품, 그려놓은 손, 얼굴 표정, 어깨 동작의 설명이 노테이션 보고 춤 추면 한국춤이 나올 것 같아요.
손: 지금 말씀하셔서 문득 든 생각인데 그 기본을 최승희가 왜 만들려고 했을까, 그 이유로 돌아가면 어쩌면 – 그 기본이 일종의 노테이션이고 스코어인 거잖아요. 그 이전에는 한국적인 소재나 동작 문법 관련해서, 특히 민속춤 같은 경우는 스코어로 기록이 남은 적이 없는 건데 서양의 무용계를 경험하고 나서 최승희가 ‘아, 내가 이런 부분이 필요하구나, 이런 작업이 필요하구나,’ 했던 게 민속춤을 집대성하는 거, 거기에 플러스 그걸 기록하는 방식으로서의 스코어. 그걸 남기려고 했기 때문에 아마 그 기본에 실리는 콘텐츠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했을 때, 저는 이게 최승희가 이전에 경험한 그 서양 문물과의 만남, 그리고 거기에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민족문화를 발견하고 집대성하려는 스스로에게 정한 미션, 그런 부분하고 연결돼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무용 기본이라고 했을 때 그 콘텐츠는 당연히, 반드시 민속춤, 한국적인 것과 연동돼야 하고 그런.
임: 이걸 보면 체제나 이념이나 이런 건 전혀 드러나지 않아요.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민족춤 책 같아요. 입고 있는 의상도 그렇고, 소품, 손 그려놓은 손의 표정, 어깨 동작 설명도 그렇고. 이 노테이션 보고 춤 추면 그냥 한국춤이 나올 것 같아요.
손: 뭔가 정치적인 환경에서 했어야 됐거나 하고자 했던 말들과는 별개로, 뭔가 춤과 관련해서 완수해야 할 일생일대의 자기 과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요. 최승희 선생의 여러 정치적인 발언은 아마 여러 여론 매체를 통해 기사나 기고, 여러 형식으로 나갔겠지만 그것과는 전혀 별개로. 그런데 그래서 저는 최승희 선생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했던 게 기본에는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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