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version below-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무용은,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엔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어요. 민속 스타일은, 그러니까 오랜 역사가 있는 탈춤의 경우 상류층과 하류층은 있는데 중산층이 없다는 것,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엔 대체적으로 그랬어요. 궁정이 있는데 평민들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는 거죠. 일단 그 역사에 대해 배우고 나니 그 춤이 그 모든 것을 훌륭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느껴졌어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너무나도 우아했는데 이것은 정말 새로우면서 동시에 굉장히 여성스럽다는 느낌이 들었고 한국 문화와의 강한 연관성이 느껴졌어요. 그게 제 선택이었어요.
가야 무용단:
우아한 멋, 우아한 미, 내 몸이라던가 모든걸 내세우지 않고, 그래도 그 숨긴 멋이 나타나는 거. 그게 한국 춤 같아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춤을 출 때에는 이 춤의 의도나 주요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우린 아직도 한국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식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폴란드에서 우리 같은 무용단은 하나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우리 밖에 없으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하고 싶진 않았어요.
가야 무용단:
원래는 간호협회에서 계속 그냥 간호협회 무용단 간호협회 무용단 이랬거든요. 언젠가부터는 아 그래도 우리 가명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우리 한 젊은 애가 ‘가야’ 어떻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가야’라고 지은 것도 독일 사람들이 말을 빨리 쉽게, ‘가야’ 하면은 어려운 발음이 아니잖아요. 옛날에 가야 부족국가가 있었잖아요. 거기에 문화가 많이 활성화 되어있었고, 지금도 거기 가면은 그런 것이 많이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럼 우리 ‘가야’ 하자. 그랬더니 옛날 회장들은 “하필이면 ‘가야’가 뭐냐, 가라는 소리냐 뭐냐”. 아이구…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저는 개인적인 정체성 때문이죠. 원래는 건강과 체육을 가르치러 왔고 그렇게 했어요. 늘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음악과 춤을 좋아해요. 춤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식별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한국의 춤에 오래 하게 됐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이제 저를 한국인으로 인식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한국인이 아닌 건 아시겠지만 그러니까… 스튜디오와 관련해서 말이죠. 그리고 험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시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계속 오시고 가시고 오시고 가시고 그랬죠. 재미있는 게 제가 한국사람이 아니다 보니 여기로 데리고 오시는 여성분들을 대하시는 방식과 저를 대하시는 게 많이 달랐어요. 차이가 크다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저를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았어요.
가야 무용단:
일찍 고향을 떠났잖아요. 어린 나이에. 성인은 됐지만. 그러면서 40년이 넘게 여기에 사는데. 내 자신이 한국적인 것이에요. 왜냐하면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거는 내가 여기에서 80살이 되어도 나는 한국사람인 거에요.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적인 그 바탕을 놓고 지금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는 내가 있는 거에요. 그렇게 저는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한국적인 것이 내 안에서 없어지면 문화가 소멸됐다고 생각하면 돼요. 내 언어가 없어진다든가… 내가 한국적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견딜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잘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외부로, 외면으로 보이는 것 외에 내면적인 것들이에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우리는 영상을 보고, 그것만 따라하고 있어요. 안무를 직접 짜는 거고, 그런데 부족한 것도 있고,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포즈에 많이 집중 하고 있어요. 포즈가 제일 이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 덕분에 인정 받아요. 중국 부채춤도 있으니까, 가끔은 이쁜 움직임을 보고 빌려와요. 주로 한국 단체를 보면서 따라하고, K-Pop 안무도 보면서 어떤 부분을 빌려와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제가 지켜보면서 부채가 예를 들면 여기 있고, 그래서 이렇게 잡으면서, 이 부분이 여기에 있어야 되고. 그리고 예를 들면 ‘파도’ 연습 하면서 부채가 여기에 ‘lean on it’. 그래서 부채가 힘 없이 편하게 서있을 수 있어요. 제가 이것을 경험으로 배웠어요.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한국 무용에서는 다른 사람 행세를 할 필요가 없지만 리듬을 찾아보고 그 리듬을 몸에 익히게 하도록 해요. 저는 무릎을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게 박자를 지키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리듬이 계속해서 흐른다는 느낌이죠. 저는 사람들에게 바다의 작은 물결들을 보라고 말해요. 그게 바로 한국 무용이라고 생각해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저는 사실 전문성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한국 문화를 알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해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에 K-Pop 만 있고 한국의 춤은 K-Pop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사람들에게 그것보다 많은 것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거죠. 이게(부채춤)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
가야 무용단:
우리는 한국에 안 살고 여기 독일에 사니까. 그게 오히려 더 우리한테는, 나같은 사람한테는 내가 독일에 살면서 한국 춤을 춘다, 거기에 대해서 더 자부심을 줘요. 난 한국 사람이다.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여기 오는 어린애들은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한국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배웠으면 하는 바램으로 보내기 때문에 와요. 고등학생들처럼 지금까지도 여기 다니는 학생 하나가 있는데 예쁜 의상이 좋아서 와요. 각자 다른 이유로 오죠. 주로 어린 아이들의 경우, 그리고 심지어는 일부 십대들이나 고등학생의 경우 부모님들이 한국과의 유대감을 느끼고 싶다거나 TV에서 뭔가를 보고 간혹 저희를 찾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70년대에는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이민을 오셨어요. 한국 어린이들이 많았는데 이게 새로운 문화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기회였고 자기들끼리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곳이었죠. 그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기도 했으니까요. 꽤 어린 나이였다는 건 알았죠. 한국 무용을 조금 본 적도 있을 수 있고요. 방금 두고 온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여기에 온 거였어요.
가야 무용단:
무용이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우리 태도가 참 많이 바뀌어지더라구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한국 전통 음악이 여기 폴란드 사람, 유럽 사람들의 귀에 좀 안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전통 음악 외에 가끔은 좀 더 센스티브한 음악을 선택하고 있으니까, 항상 안무를 유럽 사람 귀에 맞는 음악을 선택합니다.
가야 무용단:
어떤 음악하는 사람이 “니네 박자가 네박자 또는 여섯 박자가 아니고 이건 열두 박자인가? 박자가 굉장히 길다. 뭔가 조금 특이하다.” 그러더라구요.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우선 저는 리듬을 느껴보게 해요. 그래서 우리가 “기본”이라고 부르는 기본동작부터 시작해요. 그 다음엔 “장구”를 투입해서 뭐에 맞춰서 춤을 추는지 알 수 있게 해줘요. 그러면 따라라쿵따라라라디라라~~ 이런 감각을 키우죠. 단순한 장구 춤을 연주해요. 다른 방식으로 터득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이지만 그 리듬이 다양한 변주 중 하나로 들리는 거죠. 그 때 이상한 음악을 틀어줘요. 이 리듬이 이 음악 속에서 느껴지나요?
가야 무용단:
여기는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하고 가잖아요. 근데 이거는 네 박자가 지나도 가만히 서있어, 여섯 박자가 지나도 가만히 서있어, 여덟 박자가 지나서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아, 어떻게 하다 보니까 열두 박자가 넘고 하니까. 보는 사람이 “아 여기는 뭔가 있구나”라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험선생님이 늘 저희한테 “겸손하게”라고 하셨어요. “손 내리고”, “고개 숙이고”, “무릎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선생님은 손가락 끝에서 물이 굴러 떨어진다고 말씀하곤 하셨어요. 그런데 배구자씨를 보면 바로 그렇게 하고 계시더라고요. 손가락 끝으로 밖을 가리키고 있으세요. 생각해 보세요. 험선생님은 손으로 과장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그 (김천흥)선생님도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유연한 손목을 갖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뼈 마디가 있긴 하시나요?” 라고 여쭤봤어요. 늘 주욱 늘어뜨리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런 식으로 추는 것 같아요. 제가 대학에서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저는 좀 더 옛날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이가 든 무용수처럼 보여요. 제가 나이가 많으니까요. 본인이 배운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하는 게 문제될 건 없잖아요. 지하 씨가 왔을 때 새로운 장구 춤을 가르쳐줬어요. 따라라디다라라라디라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에요. 처음엔 조금 이상했는데 적응해가는 중이에요. 저한테는 오히려 프레젠테이션 같아요. 관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춘다는 감정의 내면화라고 하기 보다는. 이젠 “나 좀 봐봐!”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봐!” 같은 거죠.
해어화 부채춤 그룹:
선생님이 없으니까 그냥 우리밖에 없었어요. 리더가 모든 걸 혼자 다 하는 셈이죠. 우린 전문적이진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일부 동작이 전문가가 보기에는 우스울 수도 있어요. 그게 맞는지 틀린 지 모르니까요. 전혀 몰라요. 우리 리더는 다른 그룹들을 보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우린 그런 식으로 해요. “전문성”이라는 게 분명히 부족하겠죠. 우린 아마추어니까. 그리고 다른 한국 여자분들이 공연하는 영상을 봤는데 우린 그런 우아함이 부족한 것 같아요. 당신 동작은 정말 매끄러운데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내 몸으로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당신이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다 매끄러워요. 우리가 그렇게 똑같이 하기는 정말 힘들어요.
가야 무용단:
우리 나라의 순수 “아리랑” 음악을 들으면… 옛날에 “아리랑”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가 여기 독일에 살면서 “아리랑”은 애국가 다음으로 가슴에 울컥할 정도로 어디가서 “아리랑” 나오면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이에요. “아리랑”이 우리 나라의 순수한 오리지널 한국 음악,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춤출 때마다 “아리랑”은 최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춤도 좋고 음악도 좋고, 그게 한국의 오리지널이다.
가야 무용단:
하얀 수건 들고… 한국전통 “아리랑”은 우리 가슴에 와닿는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 감상하면서 기교는 못 부리고 멋있는 춤은 못 추어도 제 마음으로 추는거죠, 음악 들으면서.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저는 절대 한국인이 될 순 없겠지만 더욱 한국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들을 늘 찾아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우린 “계속 웃어, 계속 웃어”라고 생각해야 되는데 늘 집중하다 보니 가끔은 미소 짓는 걸 깜박하기도 해요.
Mountain, Tree, Cloud and Tiger 2019
Mary Jo Freshley:
Korean dance in the longer go, when I first started sort of representative culture of Korea I think in many ways. You know the folk style, the mask dances which have a long history the fact that there was an upper class and lower class and no middle class, even when I first started it was pretty much that way. The fact that there had been a court, but the common people didn’t really know what was going on there. Once I learn more about the history, to me the dance is a wonderful reflection of all of that.
Hae-Eo-Hwa Group:
It was just so graceful and it just make me feel like, this is something really new, something really feminine as well, something would which is really strongly connected to Korean culture. So that was my choice.
Kaya Ensemble:
Elegant style, elegant beauty, without presenting my body or everything, yet a hidden style comes forth. I think that’s Korean dance.
Hae-Eo-Hwa Group:
Frankly speaking, when we were dancing, we didn’t know much about like what’s the intention of this dance and what’s the main point.
Hae-Eo-Hwa Group:
We are still trying the go into the direction of the Korean dancers the way they move. Because we didn’t want to like, we are only one such group in Poland. So we didn’t want to be like we are only the one so we can just do it whatever we want.
Kaya Ensemble:
Originally, the Nursing Association just called it the Nursing Association Dance Group. Then from a certain point we thought we needed an alias. So a younger member once suggested ‘Kaya’. We chose ‘Kaya’ to make it easy for Germans to pronounce quickly. ‘Kaya’ isn’t hard to pronounce. And Kaya was a tribal country a long time ago. Their culture flourished and I heard that there’s a lot of cultural heritage in that region. So we decided on ‘Kaya’. Former presidents kept asking “Why does it have to be ‘Kaya’?” Oh, dear…
Mary Jo Freshley:
For me, personal identity, I came to teach Health & PE, which I did. I was always interested in moving, l like music and dance. I identify the various culture through dance and somehow I just stuck with Korean longer than anything else. So I think I’m now being identified locally as a Korean person. You know I’m not Korean I mean that... with the studio of course. And the fact that Mrs. Huhm started having me help out. And then various people coming and going and coming and going and coming and going. I think it’s also interesting that because I’m not Korean how she treated me would be different than how she treated the ladies that she did bring here. I know there was a big difference. She wasn’t quite sure what to do with me.
Kaya Ensemble:
I left home early. At a young age. I’m an adult now, of course. I’ve been living here for over 40 years. But I myself am Korean. Because I’m Korean. Even if I turn 80 here, I’m still Korean. I’m a Korean and I live in Europe with that background. That’s what I think. If not, you could say that there is no more culture if what is Korean disappears from within me. Like if I lost the language… I think because I’m Korean, I was able to survive here, have the strength to endure, and live a good life. It’s because of things within me and not the things that show on the outside.
Hae-Eo-Hwa Group:
We watch videos and just copy that. We do our own choreography but it’s lacking and that’s why we focus so much on our poses. People acknowledge us because we have the most beautiful poses. There’s the Chinese fan dance, so we sometimes borrow some pretty movements. We mostly mimic Korean groups and sometimes borrow from K-Pop choreography.
Hae-Eo-Hwa Group:
When I watch a fan being held up this way here, and it’s held like this, then this part needs to be here. For example, when we practice the wave, the fan leans on it here. So the fan can stand easily without straining. This is something I learned from experience.
Mary Jo Freshley:
Korean dance, you didn’t have to pretend to be somebody you weren’t but you could be trying to find the rhythm, trying to put the rhythm in your body. I emphasize using your knees, because that’s to me it’s your time keeper. Just a feeling of just keeping rhythm constantly flow. I tell people look at the ocean the little ripples in the ocean, to me that’s Korean dance.
Hae-Eo-Hwa Group:
What I think is actually, maybe the professionalism here is not the most important thing. We want to promote the Korean culture. We want people to know it. Because a lot people think the Korean culture closes at K-Pop and Korean dance is only K-Pop. We just wanted to show people there is more than that. It’s a good way to show them.
Kaya Ensemble:
We live in Germany, not Korea. So for us, for people like me, it gives us a sense of pride that we live in Germany and dance a Korean dance. I’m a Korean.
Mary Jo Freshley:
The younger children are usually here because of parents want them to short of have a little knowledge of whatever there Koreanness is. Like the high school kids, one of the kids who still comes, she came here because she like the pretty costumes. But they come from various reasons. Usually with the younger children and even the younger maybe teens and high school kids is usually because the parents or they themselves feel that they like a little more contact with what it is to be Korean or they might see something on TV which we had more of them walking in once in a while. In the 70s the big immigration groups of Koreans coming here. We had a lot of Korean young kids and this was sort of a chance for them to feel not alienated in a brand new culture but they can speak Korean among themselves. Because they were also born in Korea. We’ve known they were fairly young. They might have seen some Korean dance. They were here because they were in that tie to that culture they had just left.
Kaya Ensemble:
When we started learning about dance, our attitudes changed a lot.
Hae-Eo-Hwa Group:
Traditional Korean music doesn’t sound pleasing to the ear for the Polish or Europeans. So we sometimes select sensitive music other than traditional music, so we choose music familiar to Europeans for our choreography.
Kaya Ensemble:
A musician once said, “Is your rhythm 12 beats instead of 4 or 6? The beat is very long. It’s quite unusual.”
Mary Jo Freshley:
First of all, just try to feel the rhythm. That’s why I usually start with just basic movement for our so called “Kibon”. And then I usually incorporate “Janggu”, so they know what they are dancing to. So they kind of get a sense of dda ra ra kung da ra ra ra di ra ra~~ just play our simple Janggu ch’um. Because they can get it in a different way. Eventually moving to that rhythm but hear what the rhythm sounds like one of the many variations. Then when we put that strange music on. Can you feel that rhythm in the music?
Kaya Ensemble:
Here, you go, “One, two, three, four, two, two, three, four”. But for this you stand still even after the 4th beat or the 6th beat and then kind of start moving after the eighth beat, which continues somehow until it goes over the 12th beat. So the person watching it said, “Oh, there’s something there”
Mary Jo Freshley:
Mrs. Huhm always told us “humble”. “hand down”, “head down”, “knee down” “humble feelings”. She used to tell us that the water drip off your finger tips. You don’t see many Korean dancers do the same. It’s more like this. Or something along that line. But then I look at Pae Kuja, look at her, she is doing that. She is got a little point of finger out there pointing. If you think about it. So Mrs. Huhm, she didn’t exaggerate hands. And he (Kim Cheon-heung) had most flexible wrists I’ve ever seen in my life. Sometimes it’s like, “Oh 선생님 you got any bones in here?”. Cause he was really floppy. So I still kind of go that style I guess. That’s what I told him at the university. I have an older style therefore I look like an older dancer. Cause I am old. I don’t see anything wrong with trying to keep a style you learnt. What’s wrong with that. And Ji-ha when she came and taught the new form of Janggu ch’um. dda ra ra di da ra ra ra di ra ra~~~ Then it’s a whole different feeling. It feels a bit weird at first but I’m getting used to it. To me it’s more like presentation now rather than an internalization of feeling what you are dancing for yourself more, not so much for your audience. Now it’s like “hey check me out!” “look at me what I can do!”
Hae-Eo-Hwa Group:
Since we don’t have a teacher, so we basically it has only been us. It’s like our leader does everything by herself. I think we are not professional. Maybe some of our moves may seem quite funny to people who are like professional. Because we do not know if that’s correct or incorrect. We have no idea. So basically our leader is observing other groups and she has her own ideas. That’s the way we do it. So I think “the professionalism” maybe that’s what we are lacking definitely. Because we are amateur. And also I have seen some videos of Korean women performing and I personally think that we lack this grace. Your moves are so smooth and I can’t even explain it. I just cannot do it with my body. This is really really smooth every single move you do. This is really hard for us to do the same.
Kaya Ensemble:
When If you listen to the original Korean “Arirang”… Everybody knew the “Arirang” song in the old days. Living here in Germany, “Arirang” is the most moving song for us after the national anthem so we love listening to “Arirang”. It reminds us of original Korean music and culture, so every time I dance to it I think “Arirang” is the best. The dance is good and the music is good. That’s a Korean original.
Kaya Ensemble:
Holding up a white scarf… The Korean traditional “Arirang” touches our hearts so I may not be able to do fancy dance moves but I dance with my heart as I listen to it.
Mary Jo Freshley:
I just keep trying to find new ways of trying to look more Korean even though I know I never will.
Hae-Eo-Hwa Group:
We should remember that “keep smiling, keep smiling” but we are so focused, so we sometimes forget to smile.
‘춤의 이주’ 리서치 영상 인터뷰 글
<산, 나무, 구름과 호랑이> 2019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무용은,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엔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어요. 민속 스타일은, 그러니까 오랜 역사가 있는 탈춤의 경우 상류층과 하류층은 있는데 중산층이 없다는 것,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엔 대체적으로 그랬어요. 궁정이 있는데 평민들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는 거죠. 일단 그 역사에 대해 배우고 나니 그 춤이 그 모든 것을 훌륭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느껴졌어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너무나도 우아했는데 이것은 정말 새로우면서 동시에 굉장히 여성스럽다는 느낌이 들었고 한국 문화와의 강한 연관성이 느껴졌어요. 그게 제 선택이었어요.
가야 무용단:
우아한 멋, 우아한 미, 내 몸이라던가 모든걸 내세우지 않고, 그래도 그 숨긴 멋이 나타나는 거. 그게 한국 춤 같아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춤을 출 때에는 이 춤의 의도나 주요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우린 아직도 한국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식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폴란드에서 우리 같은 무용단은 하나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우리 밖에 없으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하고 싶진 않았어요.
가야 무용단:
원래는 간호협회에서 계속 그냥 간호협회 무용단 간호협회 무용단 이랬거든요. 언젠가부터는 아 그래도 우리 가명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우리 한 젊은 애가 ‘가야’ 어떻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가야’라고 지은 것도 독일 사람들이 말을 빨리 쉽게, ‘가야’ 하면은 어려운 발음이 아니잖아요. 옛날에 가야 부족국가가 있었잖아요. 거기에 문화가 많이 활성화 되어있었고, 지금도 거기 가면은 그런 것이 많이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럼 우리 ‘가야’ 하자. 그랬더니 옛날 회장들은 “하필이면 ‘가야’가 뭐냐, 가라는 소리냐 뭐냐”. 아이구…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저는 개인적인 정체성 때문이죠. 원래는 건강과 체육을 가르치러 왔고 그렇게 했어요. 늘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음악과 춤을 좋아해요. 춤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식별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한국의 춤에 오래 하게 됐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이제 저를 한국인으로 인식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한국인이 아닌 건 아시겠지만 그러니까… 스튜디오와 관련해서 말이죠. 그리고 험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시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계속 오시고 가시고 오시고 가시고 그랬죠. 재미있는 게 제가 한국사람이 아니다 보니 여기로 데리고 오시는 여성분들을 대하시는 방식과 저를 대하시는 게 많이 달랐어요. 차이가 크다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저를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았어요.
가야 무용단:
일찍 고향을 떠났잖아요. 어린 나이에. 성인은 됐지만. 그러면서 40년이 넘게 여기에 사는데. 내 자신이 한국적인 것이에요. 왜냐하면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거는 내가 여기에서 80살이 되어도 나는 한국사람인 거에요.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적인 그 바탕을 놓고 지금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는 내가 있는 거에요. 그렇게 저는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한국적인 것이 내 안에서 없어지면 문화가 소멸됐다고 생각하면 돼요. 내 언어가 없어진다든가… 내가 한국적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견딜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잘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외부로, 외면으로 보이는 것 외에 내면적인 것들이에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우리는 영상을 보고, 그것만 따라하고 있어요. 안무를 직접 짜는 거고, 그런데 부족한 것도 있고,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포즈에 많이 집중 하고 있어요. 포즈가 제일 이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 덕분에 인정 받아요. 중국 부채춤도 있으니까, 가끔은 이쁜 움직임을 보고 빌려와요. 주로 한국 단체를 보면서 따라하고, K-Pop 안무도 보면서 어떤 부분을 빌려와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제가 지켜보면서 부채가 예를 들면 여기 있고, 그래서 이렇게 잡으면서, 이 부분이 여기에 있어야 되고. 그리고 예를 들면 ‘파도’ 연습 하면서 부채가 여기에 ‘lean on it’. 그래서 부채가 힘 없이 편하게 서있을 수 있어요. 제가 이것을 경험으로 배웠어요.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한국 무용에서는 다른 사람 행세를 할 필요가 없지만 리듬을 찾아보고 그 리듬을 몸에 익히게 하도록 해요. 저는 무릎을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게 박자를 지키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리듬이 계속해서 흐른다는 느낌이죠. 저는 사람들에게 바다의 작은 물결들을 보라고 말해요. 그게 바로 한국 무용이라고 생각해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저는 사실 전문성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한국 문화를 알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해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에 K-Pop 만 있고 한국의 춤은 K-Pop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사람들에게 그것보다 많은 것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거죠. 이게(부채춤)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
가야 무용단:
우리는 한국에 안 살고 여기 독일에 사니까. 그게 오히려 더 우리한테는, 나같은 사람한테는 내가 독일에 살면서 한국 춤을 춘다, 거기에 대해서 더 자부심을 줘요. 난 한국 사람이다.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여기 오는 어린애들은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한국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배웠으면 하는 바램으로 보내기 때문에 와요. 고등학생들처럼 지금까지도 여기 다니는 학생 하나가 있는데 예쁜 의상이 좋아서 와요. 각자 다른 이유로 오죠. 주로 어린 아이들의 경우, 그리고 심지어는 일부 십대들이나 고등학생의 경우 부모님들이 한국과의 유대감을 느끼고 싶다거나 TV에서 뭔가를 보고 간혹 저희를 찾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70년대에는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이민을 오셨어요. 한국 어린이들이 많았는데 이게 새로운 문화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기회였고 자기들끼리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곳이었죠. 그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기도 했으니까요. 꽤 어린 나이였다는 건 알았죠. 한국 무용을 조금 본 적도 있을 수 있고요. 방금 두고 온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여기에 온 거였어요.
가야 무용단:
무용이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우리 태도가 참 많이 바뀌어지더라구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한국 전통 음악이 여기 폴란드 사람, 유럽 사람들의 귀에 좀 안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전통 음악 외에 가끔은 좀 더 센스티브한 음악을 선택하고 있으니까, 항상 안무를 유럽 사람 귀에 맞는 음악을 선택합니다.
가야 무용단:
어떤 음악하는 사람이 “니네 박자가 네박자 또는 여섯 박자가 아니고 이건 열두 박자인가? 박자가 굉장히 길다. 뭔가 조금 특이하다.” 그러더라구요.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우선 저는 리듬을 느껴보게 해요. 그래서 우리가 “기본”이라고 부르는 기본동작부터 시작해요. 그 다음엔 “장구”를 투입해서 뭐에 맞춰서 춤을 추는지 알 수 있게 해줘요. 그러면 따라라쿵따라라라디라라~~ 이런 감각을 키우죠. 단순한 장구 춤을 연주해요. 다른 방식으로 터득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이지만 그 리듬이 다양한 변주 중 하나로 들리는 거죠. 그 때 이상한 음악을 틀어줘요. 이 리듬이 이 음악 속에서 느껴지나요?
가야 무용단:
여기는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하고 가잖아요. 근데 이거는 네 박자가 지나도 가만히 서있어, 여섯 박자가 지나도 가만히 서있어, 여덟 박자가 지나서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아, 어떻게 하다 보니까 열두 박자가 넘고 하니까. 보는 사람이 “아 여기는 뭔가 있구나”라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험선생님이 늘 저희한테 “겸손하게”라고 하셨어요. “손 내리고”, “고개 숙이고”, “무릎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선생님은 손가락 끝에서 물이 굴러 떨어진다고 말씀하곤 하셨어요. 그런데 배구자씨를 보면 바로 그렇게 하고 계시더라고요. 손가락 끝으로 밖을 가리키고 있으세요. 생각해 보세요. 험선생님은 손으로 과장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그 (김천흥)선생님도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유연한 손목을 갖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뼈 마디가 있긴 하시나요?” 라고 여쭤봤어요. 늘 주욱 늘어뜨리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런 식으로 추는 것 같아요. 제가 대학에서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저는 좀 더 옛날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이가 든 무용수처럼 보여요. 제가 나이가 많으니까요. 본인이 배운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하는 게 문제될 건 없잖아요. 지하 씨가 왔을 때 새로운 장구 춤을 가르쳐줬어요. 따라라디다라라라디라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에요. 처음엔 조금 이상했는데 적응해가는 중이에요. 저한테는 오히려 프레젠테이션 같아요. 관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춘다는 감정의 내면화라고 하기 보다는. 이젠 “나 좀 봐봐!”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봐!” 같은 거죠.
해어화 부채춤 그룹:
선생님이 없으니까 그냥 우리밖에 없었어요. 리더가 모든 걸 혼자 다 하는 셈이죠. 우린 전문적이진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일부 동작이 전문가가 보기에는 우스울 수도 있어요. 그게 맞는지 틀린 지 모르니까요. 전혀 몰라요. 우리 리더는 다른 그룹들을 보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우린 그런 식으로 해요. “전문성”이라는 게 분명히 부족하겠죠. 우린 아마추어니까. 그리고 다른 한국 여자분들이 공연하는 영상을 봤는데 우린 그런 우아함이 부족한 것 같아요. 당신 동작은 정말 매끄러운데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내 몸으로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당신이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다 매끄러워요. 우리가 그렇게 똑같이 하기는 정말 힘들어요.
가야 무용단:
우리 나라의 순수 “아리랑” 음악을 들으면… 옛날에 “아리랑”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가 여기 독일에 살면서 “아리랑”은 애국가 다음으로 가슴에 울컥할 정도로 어디가서 “아리랑” 나오면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이에요. “아리랑”이 우리 나라의 순수한 오리지널 한국 음악,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춤출 때마다 “아리랑”은 최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춤도 좋고 음악도 좋고, 그게 한국의 오리지널이다.
가야 무용단:
하얀 수건 들고… 한국전통 “아리랑”은 우리 가슴에 와닿는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 감상하면서 기교는 못 부리고 멋있는 춤은 못 추어도 제 마음으로 추는거죠, 음악 들으면서.
메리 조 프레슬리 (Mary Jo Freshley):
저는 절대 한국인이 될 순 없겠지만 더욱 한국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들을 늘 찾아요.
해어화 부채춤 그룹:
우린 “계속 웃어, 계속 웃어”라고 생각해야 되는데 늘 집중하다 보니 가끔은 미소 짓는 걸 깜박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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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ration of Dance’ Research Video Interview Text
Mountain, Tree, Cloud and Tiger 2019
Korean dance in the longer go, when I first started sort of representative culture of Korea I think in many ways. You know the folk style, the mask dances which have a long history the fact that there was an upper class and lower class and no middle class, even when I first started it was pretty much that way. The fact that there had been a court, but the common people didn’t really know what was going on there. Once I learn more about the history, to me the dance is a wonderful reflection of all of that.
Hae-Eo-Hwa Group:
It was just so graceful and it just make me feel like, this is something really new, something really feminine as well, something would which is really strongly connected to Korean culture. So that was my choice.
Kaya Ensemble:
Elegant style, elegant beauty, without presenting my body or everything, yet a hidden style comes forth. I think that’s Korean dance.
Hae-Eo-Hwa Group:
Frankly speaking, when we were dancing, we didn’t know much about like what’s the intention of this dance and what’s the main point.
Hae-Eo-Hwa Group:
We are still trying the go into the direction of the Korean dancers the way they move. Because we didn’t want to like, we are only one such group in Poland. So we didn’t want to be like we are only the one so we can just do it whatever we want.
Kaya Ensemble:
Originally, the Nursing Association just called it the Nursing Association Dance Group. Then from a certain point we thought we needed an alias. So a younger member once suggested ‘Kaya’. We chose ‘Kaya’ to make it easy for Germans to pronounce quickly. ‘Kaya’ isn’t hard to pronounce. And Kaya was a tribal country a long time ago. Their culture flourished and I heard that there’s a lot of cultural heritage in that region. So we decided on ‘Kaya’. Former presidents kept asking “Why does it have to be ‘Kaya’?” Oh, dear…
Mary Jo Freshley:
For me, personal identity, I came to teach Health & PE, which I did. I was always interested in moving, l like music and dance. I identify the various culture through dance and somehow I just stuck with Korean longer than anything else. So I think I’m now being identified locally as a Korean person. You know I’m not Korean I mean that... with the studio of course. And the fact that Mrs. Huhm started having me help out. And then various people coming and going and coming and going and coming and going. I think it’s also interesting that because I’m not Korean how she treated me would be different than how she treated the ladies that she did bring here. I know there was a big difference. She wasn’t quite sure what to do with me.
Kaya Ensemble:
I left home early. At a young age. I’m an adult now, of course. I’ve been living here for over 40 years. But I myself am Korean. Because I’m Korean. Even if I turn 80 here, I’m still Korean. I’m a Korean and I live in Europe with that background. That’s what I think. If not, you could say that there is no more culture if what is Korean disappears from within me. Like if I lost the language… I think because I’m Korean, I was able to survive here, have the strength to endure, and live a good life. It’s because of things within me and not the things that show on the outside.
Hae-Eo-Hwa Group:
We watch videos and just copy that. We do our own choreography but it’s lacking and that’s why we focus so much on our poses. People acknowledge us because we have the most beautiful poses. There’s the Chinese fan dance, so we sometimes borrow some pretty movements. We mostly mimic Korean groups and sometimes borrow from K-Pop choreography.
Hae-Eo-Hwa Group:
When I watch a fan being held up this way here, and it’s held like this, then this part needs to be here. For example, when we practice the wave, the fan leans on it here. So the fan can stand easily without straining. This is something I learned from experience.
Mary Jo Freshley:
Korean dance, you didn’t have to pretend to be somebody you weren’t but you could be trying to find the rhythm, trying to put the rhythm in your body. I emphasize using your knees, because that’s to me it’s your time keeper. Just a feeling of just keeping rhythm constantly flow. I tell people look at the ocean the little ripples in the ocean, to me that’s Korean dance.
Hae-Eo-Hwa Group:
What I think is actually, maybe the professionalism here is not the most important thing. We want to promote the Korean culture. We want people to know it. Because a lot people think the Korean culture closes at K-Pop and Korean dance is only K-Pop. We just wanted to show people there is more than that. It’s a good way to show them.
Kaya Ensemble:
We live in Germany, not Korea. So for us, for people like me, it gives us a sense of pride that we live in Germany and dance a Korean dance. I’m a Korean.
Mary Jo Freshley:
The younger children are usually here because of parents want them to short of have a little knowledge of whatever there Koreanness is. Like the high school kids, one of the kids who still comes, she came here because she like the pretty costumes. But they come from various reasons. Usually with the younger children and even the younger maybe teens and high school kids is usually because the parents or they themselves feel that they like a little more contact with what it is to be Korean or they might see something on TV which we had more of them walking in once in a while. In the 70s the big immigration groups of Koreans coming here. We had a lot of Korean young kids and this was sort of a chance for them to feel not alienated in a brand new culture but they can speak Korean among themselves. Because they were also born in Korea. We’ve known they were fairly young. They might have seen some Korean dance. They were here because they were in that tie to that culture they had just left.
Kaya Ensemble:
When we started learning about dance, our attitudes changed a lot.
Hae-Eo-Hwa Group:
Traditional Korean music doesn’t sound pleasing to the ear for the Polish or Europeans. So we sometimes select sensitive music other than traditional music, so we choose music familiar to Europeans for our choreography.
Kaya Ensemble:
A musician once said, “Is your rhythm 12 beats instead of 4 or 6? The beat is very long. It’s quite unusual.”
Mary Jo Freshley:
First of all, just try to feel the rhythm. That’s why I usually start with just basic movement for our so called “Kibon”. And then I usually incorporate “Janggu”, so they know what they are dancing to. So they kind of get a sense of dda ra ra kung da ra ra ra di ra ra~~ just play our simple Janggu ch’um. Because they can get it in a different way. Eventually moving to that rhythm but hear what the rhythm sounds like one of the many variations. Then when we put that strange music on. Can you feel that rhythm in the music?
Kaya Ensemble:
Here, you go, “One, two, three, four, two, two, three, four”. But for this you stand still even after the 4th beat or the 6th beat and then kind of start moving after the eighth beat, which continues somehow until it goes over the 12th beat. So the person watching it said, “Oh, there’s something there”
Mary Jo Freshley:
Mrs. Huhm always told us “humble”. “hand down”, “head down”, “knee down” “humble feelings”. She used to tell us that the water drip off your finger tips. You don’t see many Korean dancers do the same. It’s more like this. Or something along that line. But then I look at Pae Kuja, look at her, she is doing that. She is got a little point of finger out there pointing. If you think about it. So Mrs. Huhm, she didn’t exaggerate hands. And he (Kim Cheon-heung) had most flexible wrists I’ve ever seen in my life. Sometimes it’s like, “Oh 선생님 you got any bones in here?”. Cause he was really floppy. So I still kind of go that style I guess. That’s what I told him at the university. I have an older style therefore I look like an older dancer. Cause I am old. I don’t see anything wrong with trying to keep a style you learnt. What’s wrong with that. And Ji-ha when she came and taught the new form of Janggu ch’um. dda ra ra di da ra ra ra di ra ra~~~ Then it’s a whole different feeling. It feels a bit weird at first but I’m getting used to it. To me it’s more like presentation now rather than an internalization of feeling what you are dancing for yourself more, not so much for your audience. Now it’s like “hey check me out!” “look at me what I can do!”
Hae-Eo-Hwa Group:
Since we don’t have a teacher, so we basically it has only been us. It’s like our leader does everything by herself. I think we are not professional. Maybe some of our moves may seem quite funny to people who are like professional. Because we do not know if that’s correct or incorrect. We have no idea. So basically our leader is observing other groups and she has her own ideas. That’s the way we do it. So I think “the professionalism” maybe that’s what we are lacking definitely. Because we are amateur. And also I have seen some videos of Korean women performing and I personally think that we lack this grace. Your moves are so smooth and I can’t even explain it. I just cannot do it with my body. This is really really smooth every single move you do. This is really hard for us to do the same.
Kaya Ensemble:
When If you listen to the original Korean “Arirang”… Everybody knew the “Arirang” song in the old days. Living here in Germany, “Arirang” is the most moving song for us after the national anthem so we love listening to “Arirang”. It reminds us of original Korean music and culture, so every time I dance to it I think “Arirang” is the best. The dance is good and the music is good. That’s a Korean original.
Kaya Ensemble:
Holding up a white scarf… The Korean traditional “Arirang” touches our hearts so I may not be able to do fancy dance moves but I dance with my heart as I listen to it.
Mary Jo Freshley:
I just keep trying to find new ways of trying to look more Korean even though I know I never will.
Hae-Eo-Hwa Group:
We should remember that “keep smiling, keep smiling” but we are so focused, so we sometimes forget to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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