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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춤>


임지애 (안무가) 



“몸은 습관화를 통해 기억을 고정하고 정열의 힘을 통해 그것을 강화한다.”
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중에서





<흐르는 춤>은 기억과 해석 사이에서 춤을 직조한다. 몸과 몸, 장소와 장소, 시간과 시간, 언어와 언어 그리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를 이동하는 춤은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신체에 남아있다. 이는 <흐르는 춤>의 재료가 되며, 춤 안에서 호명되는 존재들은 이주의 감각이 형성하는 춤의 시간과 질감을 더욱 촘촘히 감각하게 한다. 춤이 스스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 지역의 예술이 원래의 장소에서 벗어나 제3의 공간으로 이전되고 제3의 몸을 통과할 때, 거기에 묻어 있는 고유한 문법은 소멸하는 대신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새롭게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춤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누구에게나 추어지는 개인의 또는 공동의 기억이며 공유된 움직임이다. ‘이주하는 춤’은 누군가에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이며, 누군가에게는 과거로 연결되는 통로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상상적 유희와 해석이 허용되는 공간이며, 누군가에게는 기억의 순간이 불현듯 열리는 찰나이다. 기억은 몸, 언어, 이미지 등에 파편적이고 사적으로 의지하며 흩어져 있는 주체들을 느슨하게 연결한다. 이는 한국춤의 다층적인 모습을 대면하는 일이며,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또는 기억되지 않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들을 기념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안무 작업들을 통해 다루어 왔던 한국춤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 ‘뿌리’, ‘유래’에 관한 질문은, 2018년 초에 시작된 ‘춤의 이주’ 리서치에서 뿌리와 유래의 ‘이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리서치는 이주 간호사 여성들로 구성된 한국 무용 동호회인 베를린 가야 앙상블, 하와이 한라 함(Halla Huhm) 무용소에서 한국 이주민들에게 한국춤을 가르치고 있는 미국인 메리 조 프레슬리(Mary Jo Freshley) 선생, 그리고 폴란드 포즈난의 한국 부채춤 그룹인 해어화의 연습 과정과 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신체적 기억’을 통해 이전하는 한국춤의 형성(formation)과 변용(acculturation)을 문화적 징후로 이해하고, 이러한 현상이 ‘디아스포라의 춤 추는 몸’을 통해 실천되고 있는 현장에 주목했다. 2019년 베를린 소피엔젤레(Sophiensaele)에서 <산, 나무, 구름과 호랑이>를 초연하였으며, 아트선재센터에서 <산, 나무, 구름과 호랑이 ver.0>를 발표하였다. ‘춤의 이주’ 리서치는 애초부터 하나의 공연으로 압축되거나 완결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관점들을 경유하는 작업으로 계획되어, 현재는 일본의 조선적 재일조선인과 중국의 조선족을 경유하여 ‘조선춤’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공연학자 손옥주, 예술 창작 기획자 홍정아가 리서치 파트너로 참여하였고 프로듀서 신진영이 협업하여 ‘춤의 이주 - 조선춤’ 홈페이지를 오픈하게 되었다.


지난 두 작업에서 한국춤의 지역적 이동이 이주라는 행위와 맞물리는 지점에 주목하면서, 이주민 단체들에 의해서 실제 추어지고 있는 한국춤을 직접 배워보며 그 춤의 적립과정을 추적하고 기록하였다. ‘한국춤’이라는 렌즈를 통해 디아스포라의 몸이 갖는 문화적 혼종성, 복수의 시간과 공간, 기억들, 사건들, 과거와 현재, 안과 밖, 전통과 현재의 비선형적인 뒤얽힘이 어떠한 춤의 형태로 드러나는지를 살피며, 이와 관련한 질문을 창작자의 관점에서 다루었다. 한국춤이 어떠한 매체에 의해서 이동하며, 어떠한 맥락의 몸에 의해서 추어지는가? 한국춤은 디아스포라의 몸을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위치시키는가? 춤이 디아스포라적 삶에 스며들 때 이는 어떠한 정체성과 언어가 되는가? 이주의 행위와 감각은 춤/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필자는 디아스포라의 몸을 특정한 문화가 수행되는 공간으로서 고정화 또는 표준화 된 것이 누적되는 곳이 아닌, 기억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 기억되는 대상의 변경과 탈락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의 징후가 나타나는 공간으로서 바라보고자 했다. 자기학습으로 오랫동안 추어온 춤 안에서 쌓여있는 시간의 층위들을 대하며, 아카데미즘 안에서 정의되는 한국춤의 문법을 넘어서 주변부에 잔류하고 있는 다양한 버전의 한국춤을 취할 때 보다 넓은 범위에서 상상할 수 있는 한국춤은 어떤 것일까? 뿌리와 유래의 개념이 단수가 아닌 복수가 될 때, 개개인의 춤추는 몸이 각각의 고유한 뿌리들로 연결될 때, 그것으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한국춤을 구현해보고자 했다.


<흐르는 춤>은 2019년 ‘춤의 이주’ 리서치를 기반으로 제작한 영상 <산, 나무, 구름과 호랑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터뷰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국가, 민족, 인종, 언어 등의 다른 배경을 갖지만 한국춤으로 연결되는 주체들이다. 이번 작업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추어지는 비전형적인 한국춤이 현재의 한국무용사에 어떻게 유효하며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며, 한국춤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서 누가 추는 것인가?라는 실질적인 질문으로 옮겨간다. 전통춤을 수행하는 것에 있어서 민족적, 유전적 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일까? 연결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의 장으로 연결할 때 춤의 흐름은 어떻게 재조정되는가(사실 극명한 분리와 단절은 연결에 더욱 집착하게 한다)? 혹은 하나의 흐름에 다른 흐름이 개입할 때, 경계가 더이상 명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가? 디아스포라적 환경에서 문화적 내부인과 외부인의 위치는 대조적이지 않으며 연결될 뿐이다. 필자는 리서치와 창작과정을 통해 춤의 특정 지식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 소속성이 해제되고, 정체성 또는 원본성이 분산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합의된 한국춤 역사 밖에서 수행되고 있는 춤은 초문화적(transcultural) 맥락에서 발생하며, 다양한 요소들이 비중심적으로 연결되어 접촉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근원, 기원이라는 묶여있는 의미들에 대해서 질문하게 하며, 어떤 학습되지 않은 기억의 상태에서 발생하는 춤을 대면하게 된다.


<흐르는 춤>은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와 춤을 소환하며, 재료의 조형적인 변형보다는 서로 다른 경험의 층위와 맥락에서 해석되는 춤을 교차시키거나 중첩시키는 행위에 집중한다. 다리아에게 부채춤은 원본 없는 해석이며, 경수는 한국춤을 추며 연대하고 추억하며, 지애는 누군가의 몸과 언어를 통과하며 공존의 몸을 추어낸다. 우리는 모두 문화의 외부에서 한국춤 문법을 익힘으로서 자신의 몸을 새롭게 인식하기도 하고 이를 각자의 몸에 다른 차원으로 적용하기도 한다. 우리의 몸과 언어를 통해 제3의 춤들이 통과해 지나가는 과정에서 전통이라는 불변의 값은 더 넓고 다양한 해석을 향한 ‘움직임’이 된다. 우리의 춤은 서로가 이해하는 세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춤은 그저 우리의 몸을 통해 왕래하며 공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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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is going somewhere by itself


Lim Jee-Ae (Choreographer)
Translation: Kyunghoo Kathy LEE



“The body pins down its memory by developing habits and consolidates it through the power of passion.”
from Cultural Memory and Western Civilization: Functions, Media, Archives, Aleida Assmann



Dance is going somewhere by itself weaves dance between memory and interpretation. Moving between a body and another, a place and another, a time and another, a language and another, and a story and another, dance remains in the body through the act of remembering. This is the raw material for Dance is going somewhere by itself, and the beings summoned in dance allows finer sensing of the time and texture of dance that are constructed by the sense of migration. What does it mean that dance moves somewhere on its own? When art in one region departs the place, being transferred to a third place and going through a third body, the intrinsic vocabularies it is tinged with do not die out; they are actually continuing in a new way, connected to another world. Thus, dance is an individual or collective memory and shared movement that exist anywhere and get practiced by anyone. ‘Migrating dance’ is for some people a way to live through the present; for others, it is a passage into the past, a space where imaginary play and interpretation are allowed, or a fleeting instant when a moment in memory flashes open. Memory relies, in a fragmented and personal way, on body, language, or image, loosely linking scattered subjects. This is to face the multi-faceted aspects of Korean dance, and at the same time to commemorate what we cannot remember or what exists among what is not remembered.


The question of historical and social ‘background,’ ‘root,’ and ‘origin’ of Korean dance, which I have been dealing with in my choreographic works, came to shift to the ‘migration’ of root and origin in my research that began in early 2018, ‘Migration of Dance.’ The research understood the formation and acculturation of Korean dance, which transfers through ‘bodily memory,’ as cultural symptoms and paid attention to how such a phenomenon is practiced through the ‘dancing body of the diaspora’ by closely watching the rehearsal processes and activities of Kaya Ensemble in Berlin, a Korean dance group consisting of immigrant female nurses; Ms. Mary Jo Freshley, an American woman who is teaching Korean dance to Korean immigrants in Hawaii at Halla Huhm Korean Dance Studio; and Hae-Eo-Hwa Dance Group, a Korean fan dance group in Poznan, Poland. As a result, Mountain, Tree, Cloud and Tiger was premiered in Sophiensaele, Berlin, in 2019, followed by the presentation of Mountain, Tree, Cloud and Tiger ver.0 at Art Sonje Center, Seoul. From its start, the research ‘Migration of Dance’ was planned as something that passes through different perspectives instead of being condensed or completed as a performance. Currently, it is on the theme of ‘Joseon dance,’ via Zainichi Koreans in Japan with North Korean nationality and ethnic Koreans in China. Performing arts scholar Son Okju and arts creative producer Hong Jungah have joined the project as research partners and Shin Jinyoung as producer, which led to the website of “Diasporic Moves – Joseon Dance.” ht


In the last two projects, I actually learned the types of Korean dances that were being practiced by those immigrant groups, and traced and documented the accumulating process of each dance, while paying attention the links between the geographic movement of Korean dance and the act of migration. I observed, through the lens of ‘Korean dance,’ how the cultural hybridity of diasporic body, multiple times and spaces, memories, events, past and present, inside and outside, tradition and present, and their non-linear entanglements are revealed as forms of dance, and approached these questions from a creator’s perspective. What mediums propel the movement of Korean dance, and bodies in what contexts practice it? How does Korean dance position diasporic body in a new environment? When dance seeps into a diasporic life, what identity and language does it make or become? How does the act and sense of migrating influence dance/body? I tried to look at diasporic body not as a space where a particular culture is practiced and where something pinned down and standardized are accumulated, but as a space where temporal symptoms emerge through the act of remembering, with continuous changes and omissions in what is remembered. What would be the Korean dance we could imagine in a more expansive scope, beyond its vocabularies defined in academism, dealing with the layers of time piled up in the dance practiced for years through self-study and picking up different versions of Korean dance that remain in the margins? I aimed to materialize the Korean dance that could be imagined when the idea of root and origin becomes not singular but plural and when dancing bodies of individuals become linked to each of its own root.


Dance is going somewhere by itself is inspired by the interviews of people appearing in Mountain, Tree, Cloud and Tiger, a video based on the ‘Migration of Dance’ research in 2019. With different backgrounds such as nationality, nation, ethnicity, and language, they all are subjects connected by Korean dance. And while considering in what ways the atypical Korean dances practiced by diverse subjects are valid and able to function in Korean dance history, this project moves from a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is Korean dance?” to a more practical one, “Who practices it?” Is ethnic and genetic uniformity required in practicing traditional dance? How is a trajectory of dance readjusted when we link what cannot be linked into one field(Acute separation and severance actually increase the obsession over connection)? Or, how should our relationships be formed when a trajectory intervenes in another, when borders are no longer clear? In a diasporic environment, the positions of cultural insider and outsider are not opposing but simply connected. In the research and creation process, I paid attention to how in the process of specific knowledge of dance migrating the belongingness is lifted and the identity or originalness is diffused. The dance being practiced outside the agreed history of Korean dance takes place in a transcultural context, enabling an experience of acentric connection and contact of different elements. This makes us question the fixed meaning of source or origin and encounter a dance that arises from a non-learned state of memory.


Dance is going somewhere by itself summons the voices and dances of diverse subjects and focuses not on figurative alterations of material but on the act of intersecting or layering the dances that are interpreted in differing levels and contexts of experience. Fan dance for Daria is interpretation without an original; Kyong Soo Shin-Nolte creates a bond and remembers while practicing Korean dance; and Jee-Ae dances a body of coexistence while passing through someone else’s body and language. By learning the Korean dance vocabularies outside the culture, all of us perceive our own bodies in a new way and apply this to their bodies in differing dimensions. As the third dances pass through our bodies and languages, the invariable value of tradition becomes ‘movements’ towards more expansive and diverse interpretations. Our dances do not correspond to the worlds as each of us understands. Dances simply come and go through our bodies and coex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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