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3 발췌
◌ 임지애, 손옥주, 홍정아
대담자 임지애(이하 ‘임'), 손온주(이하 ‘손'), 홍정아(이하 ‘홍')
손: 정아샘이 무용기본으로 공유해주신 파일이 조선민족무용기본인 거예요? 아니면 그냥 무용기본인 거예요?
홍: 조선민족무용-
손: –기본인 거죠? 제가 그때 공유해드렸던, 그 영상은 도대체 출처가 어딘지를 모르겠어요.
임: 유튜브에 올려주신 그 파일 저는 사실 한번 본 적이 있거든요. 한복을 보니까 기억이 나는데 저도 출처를 못 찾았어요. 북한분이 올리신 건지 북한에서 촬영한 건지 북한에서 유튜브 엑세스가 가능한 건지.
손: 저도 모르게 자기 검열이 되더라고요. 통일부의 합법적인 허락을 받고 시청을 해야 되는 건가 하면서. 그런데 국내에서 원천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건 불법, 유해 사이트 이런 걸로 차단이 되거든요. 그래서 북한 자료 구글링 할 때도 자동 차단돼서 못봤었는데 그건 열려있는 걸 보니까 오픈 엑세스가 가능한 건지 모르겠는데, 몇 년도에 어디서 촬영된 건지 구체적인 출처를 모르니까.
임: 그런데 유튜브 자체에 올라온 건 꽤 오래되지 않았어요? 오래 전에 본 거 같아요.
손: 그런 것 같아요. 올려주신 비메오 영상이랑 아마 올라온 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그 여자 동작, 남자 동작 나뉘어있는 파일들, 그리고 얼떨결에 알고리즘으로 유튜브가 추천해준 최승희 입춤 기본을 비교하면서 봤거든요. 그랬더니 아주 흥미로웠어요. 조선민족무용기본의 진행 순서라든지 장 구성같은 게. 올려주신 비메오 자료는 금강산가극단의 단원분이 시연을 하신 것 아니에요?
홍: 맞아요. 그리고 아까 잘못 말씀드렸는데 조선민족무용기본은 책이고 DVD는 조선무용기본동작이에요.
손: 결정적으로 흥미로웠던 게, 북한 관련한 뒤쪽의 두 버전 같은 경우에는 순서가 같더라고요. 제가 앞부분만 확인해봤을 때는요. 제일 처음에 걷는 동작이 있고 그 다음에 팔동작으로 넘어가는 그 부분의 진행 순서 같은데, 정아샘이 올려주신 비메오 파일의 경우엔 똑같은 동작으로 진행이 되다가 점점 세분화가 엄청 되더라고요. 변형시키고 응용한 동작들을 체계화시킨 것 같았는데, 이게 북한에서 배운 걸 바탕으로 재일조선인 가무단 분들이나 가극단 분들이 본인들의 해석을 곁들여서 새로이 정립시키신 건지 많이 궁금했어요.
홍: 지난번에 들어보니까 최승희류 말고도 다른 유파의 선생님들이 있다 이런 얘기를 짧게 들었잖아요. 그런데 기본은 계속 최승희가 만든 것에서 개편하면서 현재까지 오는 거 같아요. 예전에 탈북하신 선생님이 최승희가 제일 처음에 만든 기본을 배웠다 하셔서 그분이 두리춤터에서도 최승희 기본이라고 해서 공연을 하셨었고 그 DVD를 바탕으로 저희한테 순서를 가르쳐 주셨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이 3차 개편 DVD랑 완전히 달라요. 정말 살풀이 하듯이 천천히, 움직임이 느리게 이어지고..
손: 전 지난번에 정아샘께서 그 개편 관련한 말씀해 주셨을 때 인상적이었던 게, 최승희에 대한 북한당국의 정치적 입장이 변하면서 조선민족무용기본에서 민족적인 것을 삭제하는 방식, 그것이 결국 안무가의 안무적인 시각이나 견해 같은 부분을 삭제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이해했는데요. 그렇다면 공유해주신 금강산가극단의 기본이 재일조선인 분들이 자체적으로 발전시킨 방식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익힌 방식이라면 더욱더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그럼 과연 거기서 민족성, 춤의 문법에서 그들이 제하려고 했던 것이 뭐고 제한 자리에 더하려고 했던게 뭘까 하는 질문이 문득 들거든요.
예를 들어 조선민족무용기본에서 - 제가 그냥 북한본이라고 편의상 칭할게요, 몇 년도에 올라온 지 알 수 없는 그 영상요. 그 영상을 봤을 때 처음에 제1동작이라고 해서 걷기 동작이 굿거리 장단으로 나오는데 아래에 글씨 나오잖아요. 설명이 나올 때 제일 처음에 보면 보통 걷기, 꼬아 걷기, 머물러 걷기, 곱디뎌 걷기, 옆으로 모아 걷기, 비껴 걷기, 이런 식으로 걷기의 방식을 템포나 나아가는 방향성 같은 특징에 따라 큰 덩어리로 카테고리화 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공유해주신 비메오 영상 보니까 금강산가극단 기본은 어떤 식으로 나뉘어져 있냐면, 보통 걷기, 꼬아 걷기까지는 똑같고 비껴 걷기는 북한본에서는 뒤쪽에 있던 게 당겨졌고, 그 다음 전줄러 걷기라는 게 있고 곱디뎌 걷기. 그런 다음은 꼬아 곱디뎌 걷기, 비껴 곱디뎌 걷기, 전줄러 곱디뎌 걷기, 등등 앞서서 소위 북한본에서 큰 카테고리로 만든 걷는 방법들을 결합시켜서 또 하나의 동작 문법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랬을 때 과연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걸 통해서 동작 문법이 더 디테일해지는 효과가 있을 텐데, 그걸 통해서 무엇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하는 질문이 영상 비교해 보면서 크게 들었어요.
임: 저는 옥주씨가 보내주신 유튜브 영상 보면서 박금술 선생님 기본이 겹쳐졌어요. 제가 춤을 배울 때 발레처럼 정확한 동작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추는 사람이 즉흥적으로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었죠. 무용인들이 박금술 기본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용어 정리가 되어있고 설명이 되어있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여기는 발레처럼 모든 디딤에 용어가 정해져 있고 설명이 자막으로 지나가는데 박금술 기본 보면 음악에 그분의 육성이 들어가 있잖아요. 그게 매우 비슷한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딤에 관한 용어, 움직임 관한 용어가 일반적으로 북한춤에서 사용이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니면 이 비디오를 올린 사람의 유파에서 정립해 놓은 건지, 모든 조선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손: 어느 정도 통용되는, 획일적인 전수를 통해서 소통이 가능해진 방식의 용어인 것 같긴 하더라고요.
임: 그래요?
손: 그리고 공유해드렸던 링크 중에 62년에 촬영된 최승희의 그 입춤 기본에 관한 흑백 영상이 있잖아요. 2019년인가에 업로드 된 영상이던데, 너무 작은 소리라서 캐치하기 쉽진 않았는데 각 동작, 모든 걷기 동작을 일단 연결시켜서 시연한 다음에 각각의 걷기를 일종의 종목처럼 하나씩 설명해줘요. 그 교본 구성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발동작의 경우 클로즈업을 해서 각각의 발동작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같이 설명해 주더라고요., 이때는 뒤꿈치부터 시작해서 발등 바깥으로 해서 걷기가 진행돼야 된다는 등. 어쨌든 그런 용어들이 금강산가극단의 기본에서도 계속 유지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물론 용어의 순서나 구성 상의 차이는 있었지만요. 방식들을 하나로 합쳐서 전혀 다른 걷기 방식으로 새로이 창작한다거나 이런 가능성이 열려있긴 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전줄러 걷기’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봤어요.
임: 전 춤을 추는 사람인데도 거의 처음 듣는 용어들이에요.
손: 그래서 ‘전주르다’를 네이버국어사전에서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애태우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고, ‘동작을 진행하다가 다음 동작에 힘을 더하기 위해서 한번 쉰다’ 이런 의미라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전줄러 걷기 걸음을 보면 가다가 갈듯 말듯 하면서 시간상 인터벌을 주면서 걸어요. 그걸 보면서 혹시 제주도 출신의 재일조선인 분들이 많아서 용어가 영향을 준 건가 싶었는데, 최승희 기본, 그 62년도 촬영본 보니까 거기도 전줄러 걷기라는 똑같은 표현이 나오는 거예요.
임: 용어를 이렇게 추적해가는 것도 재미있네요.
손: 한번도 못 들어본 동사 표현인데요., 기본이라고 한다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동작 문법을 만든다는 목표 안에서 소통이 가장 빨리 될 수 있는 것, 용어를 들었을 때 그 움직임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가장 근접하게 이미지네이션이 되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랬을 때 왜 이런 표현이 들어간 걸까? 아니면 그때 당시 이 표현들의 용례는 보편적이었을까? 용어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질문이 들었어요.
임: 이게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분단되기 전, 최승희가 북으로 넘어가기 전에도 이런 용어를 사용했을까요?
홍: 그랬을 것 같아요. 박금술 선생님도 멍석말아돌기, 이런 게 있잖아요. 옥주샘 말씀하셨듯이 그 시대 때 쓰던 말들, 저희는 농사를 안 지으니까 기본 용어를 들으면 새롭게 들리지만 그 당시에는 일상에서 썼던 용어여서 박금술 선생님 기본에 나오는 용어도 그렇고 최승희 선생님도 다 그 당시에 썼던 거 같아요. 용어 추적하는 게 정말 흥미롭네요.
임: 옥주샘 용어 추적을 한번 해주시겠어요?
손: 네이버 국어사전으로요?(웃음) 어떻게 추적하면 좋을까요.
임: 갑자기 제주도로 연결되고 하니까 재미있네요.
손: 그래서 역사적 맥락이 있나 했는데 북한에서도 쓰이는 표현인가 모르겠어요.
홍: 최승희가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썼던 용어일 텐데 그것과 별개로 재일조선인이 제주 출신이 많아요. 제주도나 부산이나. 남한 출신이 거의 7-80%였다고 해요.
손: 또 하나, 저한테는 이 세 가지 버전에서 드러나는 차이들이 훅훅 오는 부분이 있는데요. 기본 뿐 아니라 공유해주신 금강산가극단 기념공연 DVD를 보면서도 많이 느낀 부분인데, 장단이나 음악의 역할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최승희 기본이나 북한본에서는 다 굿거리로 통일해서 장단이 들어가던데, 금강산가극단 기본에서는 너무 다양한 거예요. 반살풀이 장단, 타령 장단, 굿거리 장단 등등. 그리고 굿거리라 해도 저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템포가 너무 빠르게 느껴졌어요. 가극단 춤은 왜 이렇게 빠른 거예요?
임: 장단과 함께 항상 멜로디가 들어가잖아요. 굉장히 하이피치라서 같은 박이어도 더 빨리 몰고 가는 느낌일 수 있을 것 같아요. 2배속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스피디한 동작이 많아요. 영상이 버퍼링 됐다가 갑자기 돌아가나 싶을 정도로요. 춤의 스피드나 방향을 그렇게 빠르게 바꾸기가 쉽지가 않은데. 전체적으로 낭창낭창하다라는 느낌과 단어가 계속 떠올랐어요. 스피디한데 낭창낭창한 느낌. 그런데 움직임이 뭔가 많이 익숙한 거예요. 발레의 몸이 겹쳐졌어요. 토슈즈만 안 신었지 발레라는 느낌.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춘향 공연하듯이. 조혜미 선생님이 발레 트레이닝을 아주 중요시한다고 말씀하셨었잖아요. 제가 조선족 무용수에게 최승희 기본을 배울 때 발레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발레처럼’이라는 표현을 많이 했어요. 영상에서도 보면 그런 발레 스텝이 없으면 동작들이 이렇게 큰 무대에서 성립조차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큰 무대를 다 사용하려면, 뒤꿈치로 시작하는 한국춤의 잔걸음으로는 안 되겠다.
조선춤은 정아샘 말씀하셨듯이 그 자체가 시작이고 그 전의 춤은 없는 건데, 이미 서구화된 춤을‘시작의 춤’이라고 인식하고 추는 건데. 제 경우는 전통춤을 배우기 전에는 신무용에 대한 질문도, 문제의식도 없었고 전통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레퍼런스가 생기고 그때부터 결정하고 선택하고 비교하면서 춤을 추게 됐어요. 만약에 조선춤을 추는 무용수에게 한국춤이라는 레퍼런스가 생긴다면, 뿌리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면, 춤과 몸의 오리엔테이션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질문하게 돼요.
무용수의 몸이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구 무용사적으로 봤을 때 특히 발레에서 보면 무용수의 몸은 테크닉이나 이미지로 소비될 뿐 무용수의 사고, 감정, 결정이나 선택은 중요한 게 아니었잖아요.추는 사람으로서도, 보는 사람으로서도. 그런 면에서 조선춤이 기예적이고 기술적이고, 무용수의 몸이 소외됐다고 보이는 것이, 의식이나 체제 뿐 아니라 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닐까, 그 안에 흡수된 발레적 테크닉과, 기예적인 춤의 요소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제가 캡처한 이미지가 몇 개 있는데요. 스피드나 다이나믹이나 테크닉이 대부분 발레나 서양 춤을 훈련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들이었고요. 빠른 동작은 호흡이 짧기 때문에 가능한 거거든요. 호흡을 분절해서 컨트롤 할 수 있어야 몸의 중심과 스피드를을 재빠르게 바꿀 수 있고요. 최승희가 동양발레를 만들려 했던 노력이 춤에 이런 식으로 내포되어 있거나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 형식이 익숙했어요. 서울예술단의 가무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대, 의상, 소품, 오케스트라, 조명도 그렇고 총체극 같았어요. 무용극 혹은 음악극, 가무악, 가무극, 뮤지컬 같기도 하고. 굉장히 쇼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서울예술단의 설립 배경을 찾아봤어요. 무용단이86년에88무용단으로 창단이 됐거든요.남북문화교류, 해외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거기에 한국음악극의 양식을 개발하는 목적이 하나 더 있더라고요. 제가 무용단에 들어갔을 때는 뮤지컬팀과 무용팀이 분리돼서 기능하고 있었는데 신선희 이사장님이 들어오시면서 가무악이라는 형식을 가져와요. 무용수가 무대에서 노래 하면서 춤을 추고 악기를 다루는,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형식이었어요. 그땐 그걸 가무악의 현대적인 수용이라고 봤던 것 같아요. 금강산가극단의 무대를 보면서 그런 현대적 가무악이나 가무극인가 싶기도 하고 특히<춘향전>과<풍랑을 뚫고>를 보면 굉장히 극적이죠. 최승희가 경극에서 춤을 분리, 독립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여기선 오히려 극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고. 그래서 저는 오히려 경극의 부속물 같다는 느낌이 여전히 들었어요.
<금강산의 무희들>에는 살풀이 같은 솔로가 나와요.도포를 두르고 나와서 그걸 벗어들고 살풀이춤처럼 추는데 다른 방식의 훈련을 한 몸이 한국춤을 추는 느낌이었어요.화면이2배속으로 재생되는 듯 굉장히 빠른 움직임도 나오고 전환도 굉장히 빠르고요. 어떤 훈련을 해야 이런 몸이 가능하고 이런 춤이 가능할까? 여러 레퍼런스들이 연결이 됐어요. 많은 형식의 춤을 경유하고 있거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거나, 다 가지고 있거나 중간에 있거나. 그래서 이 춤이 견고해 보이는데도 보는 사람의 경험으로는 절대 완성될 것 같지 않은 네버엔딩스토리 같았어요.
손: 저도 많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빠르다,. 그리고 발레를 연상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유사하다. <춘향전>만 봐도 인물이나 대열 구성, 인물 배치 등 안무자가 그 무대를 채우고 비우는 대형만 봐도 발레 군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너무너무 많이 들어서굉장히 흥미로웠고요. 동시에, 이 가극단의 춤에 있어서 창작이란 뭘까, 창작의 의미가 뭘까, 하는 질문이 저는 크게 들었어요. 창작자들에게 있어서 창작이란 뭘까., 무용수의 신체나 춤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의 역량 강화 같은 것 있잖아요.죠, 누가 얼마나 빨리 혹은 많이 돌 수 있는지, 얼마나 높이 뛰거나 얼마나 많이 상체를 뒤로 꺾을 수 있고는지 등등 거의 서커스 기예에 준할 법한 동작들이 다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몸이나 움직임이 가진 신체적 조건을 계속 넘어서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창작적 툴인가?’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창작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에 계속 뭔가를 넘어서야 하는 욕망 같은 게 자리하나? 레퍼토리 춤을 춘다고 할 때, 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누가 더 잘 추는지 판단하는 걸까? 보면서 너무 열심히 하는 운동경기 몇 판을 보는 듯했고, 보고 있는 저 또한 호흡 곤란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음악과의 상관성이에요. 오케스트레이션 자체가 서양 악기 위주로 편성돼있고 창자가 성악가잖아요. 성악가가 아주 조선적인 뉘앙스만을 가진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성악 발성법으로 노래하는 셈인데, 춤도 그렇고 선율 중심의 서양식 오케스트레이션도 그렇고 이 춤에는 네거티브한 부분, 걸리는 부분이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독일어로 하자면 ‘Negativität.’ 네거티비티가 배제된 상태같은 느낌이 굉장히 많이 들었고, 지애샘은 이 춤 자체가 네버엔딩, 끝을 모르고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중간에 영상을 멈추고 즉흥적으로 연상되는 다른 영상들을 찾아봤는데, 그 중에 리틀엔젤스 공연 영상과, 조택원 선생의 <춘향조곡>이 있었어요. 조곡이 ‘모음곡’이라는 음악 개념이잖아요. 말 그대로 <춘향전>을 여섯 개의 장면으로 쪼개서 각각 네 글자의 부제를 붙여 모음곡 형식으로, 일종의 뮤직시어터처럼 만드신 작품이 있어요. 리틀엔젤스 작업도 그렇고 조택원 선생의 <춘향조곡>을 봐도 그렇고, 배경음악에 따라서도 ‘Negativität’라는 부분이 차이나는 거예요. <춘향조곡>만 하더라도 대금 반주로 진행돼요. 그런데 그 감각 자체가, 금강산가극단 공연을 봤을 때 느꼈던 감각, 그러니까 ‘아, 이건 정말 하나도 걸리는 것 없이 모든 요소가 물 흐르듯 흘러가는구나, 정말 끝도 없이 흘러가겠다, 여기에 어떤 돌기 - 완충 작용하거나 정지시킬 요소가 정말 없구나’ 그런 감각과는 전혀 달라요. 리틀엔젤스 작업도 레퍼토리는 유사할지 모르지만 배경 음악이라든지 – 제가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단지 음악 때문에 받은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춤 스타일도 비슷하고 군무 형식이고 한데, 장구 장단이 들어간다거나, 전통적인 타악 중심으로 가고 장단 자체의 템포도 느려요. 그리고 저는 금강산가극단의 춤을 보면서 역동적이라고는 느끼지 않았거든요? 역동성, 다이나믹이라고 할 때는 힘의 온도차랄지 어떤 걸리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 춤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느껴지질 않는 거예요.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임: 자꾸 한국춤과 비교하며 보게 되는데요, 역동성, 다이나믹이라는 건 어떤 대비가 있어야 하잖아요. 한국춤에 맺고 풀고 어르기 과정이 있는데, 여기에는 뭐랄까 계속 맺기만 한다고 해야 할까요?한 가지만 계속 하고 있는 거죠. 계속 잡고만 있는 거예요. 호흡이나 춤이 풀어질 순간이 없어요. 그렇게 한 가지 운동성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다이나믹이 생성될 수 없겠죠. 올라가기만 해요, 내려오지 않고.
손: 말씀하신 것처럼, 춤에서 느껴지는 다이나믹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과는 뭔가 다른 지점이 있었어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공유해주신 기념공연 DVD 제일 첫 장면에서 하얀 한복 입으신 모더레이터가 나오면서 커튼이 촥 걷히는데 정말 ‘sculpture’들만 있잖아요.
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손: 그 모습이 정말 조형적이잖아요. 레퍼토리마다의 대표성을 띤 시그니처 동작들이 무대 위에 그냥 박제된 상태로 전시돼있잖아요. 그런 조형성의 연속 같은 느낌이었어요. 조형적인 몸과 춤의 장식적 특징들이랄까. 말씀하신 것처럼 맺고 어르고 푸는 과정 안에서 그런 에너지들이 생성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장면이 계속 변하고 동작과 대형이 변하고 무대가 채워지고 비워지며 구조가 계속 변하는데, 이상하게도 뭔가가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손: 맞아요. 텐션이 계속 유지된 상태로 끊임없이 진행되니까. 예를 들어 팔동작도 가슴 아래로는 거의 떨어지지 않잖아요. 떨어진다 하더라도 다음 동작에 치고 올라가기 위해 잠시 내려오는 것이고, 늘 가슴 위쪽으로 동작의 텐션이 계속 올라가 있는 게 중심이고요. 조혜미 선생님도 정치적인 이념색 때문에 그런 건지 조선춤은 대개 가슴을 열고 팔과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이념성 안에서 하나의 안무 방법으로 정착이 된 건지, 아니면 역으로 움직임의 특징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걸 이념과 결부시켜서 해석을 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청나게 집중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하늘거리면서도 어쩜 그렇게 지치질 않을 수가!
임: 지침을 느낄 수가 없는 구조인 것 같아요.
홍: 그래서 오히려 졸립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와, 이건 정말 기립박수를 쳐야 될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금강산가극단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구나. 너무 잘 기능하는 몸, 테크닉적이고 기예적인 몸. 통일이 돼서 북한 사람들이 공연을 하면 2-3년은 북한 사람들만 메인으로 공연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감동 받고 기립할 수 밖에 없는 대단함이 있고, 저도 보면서 ‘아니, 저 동작에서 저 동작을 저렇게 아무렇지않게 가볍게 돌릴 수가 있다고?’ 싶고 이분들은 무게가 없나 싶을 정도로 정말 대단하고요. 다리 안쪽을 규제시키면서 상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낭창낭창하게 하는 걸 보면서 발레의 아라베스크나 데벨로뻬 같은 걸 다 팔로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한 손은 계속 수직으로 올리고 동작을 하니까 백조 같고, 이건 발레인데 손으로 하는 발레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가슴 쓰는 것도 발레랑 많이 닮았고 수직적으로 호흡하고.
또 저 역시 보면서 클래식 발레 공연과도 같은 하나의 큰 극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아까 창작이란 무엇일까 말씀 하셨는데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큰 극은 다 북한에서 배워온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제가 금강산가극단 만났을 때 모든 것을 다 가져왔다고 들었거든요. 한복부터 조명, 무대 디자인까지. 조선학교도 교과서부터 모든 것이 다 북한에서 왔잖아요. 학교의 디자인까지.
또 저는 네가치온, 역동성 말씀하실 때 아주 재미있었어요. 제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고 더하려고 했던 건 무엇인가 말씀하셨는데, 민족적인 것은 뿌리를 생각하게 하잖아요. 최승희가 어떻게 보면 북한에 가서 북한의 새로운 무용을 만들어야 했는데 오히려 민족적인 것, 뿌리에서부터 그 무용을 길어올리고 계속 소품 무용 같은 걸 하면서 김일성과 대치되는 지점이 있었다는 증언을 들었었거든요. 그래서 제하려고 했던 것과 더하려고 했던 것, 그 질문을 듣고 최승희 숙청 후에 무용이 계속해서 빠르고 가벼워지고 스펙터클해지고 조형적이게 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됐던 것 같아요.
손: 백향주씨 공연을 한번 찾아봤거든요. 독무였는데 정말 엄청 돌더라고요, 몇 분은 돌았나봐요. 장구춤을 추면서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반복해 돌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딱 멈추는데, ‘이들은 왜 춤 안에서 굳이 본인을 소진시켜 가면서, 그런데 마치 소진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장면을 구성하는 것일까? 안무적으로 어떤 의미이고 관객에게 어던 의미로 다가가는 걸까?’ 궁금해졌어요.
손: 금강산가극단의 춤에 나타나는 맹목성이라는 게 무목적적이진 않은 것 같거든요. 그걸 통해 민족의 춤이 완결되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는 믿음 안에서, 자신의 기술적이고 기교화된 몸 상태, 움직임의 상태를 능가해가는 거죠. 민족적 이념의 궁극에 닿을 수 있다는 목적 안에서, 춤의 맹목적인 지점들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임: 그렇죠. 춤을 대하는 무용수의 의식이나 방법이 체제나 의식, 민족성 같은 것에 닿으려는 목적성이 있죠. 그래서 맹목적이라는 게 더 흥미롭네요.
손: 맞아요. 무목적적이지는 않은데 맹목적이라는 것. 참 어렵네요.
홍: 덮어놓고 행동하는 거.
손: 정아샘이 무용기본으로 공유해주신 파일이 조선민족무용기본인 거예요? 아니면 그냥 무용기본인 거예요?
홍: 조선민족무용-
손: –기본인 거죠? 제가 그때 공유해드렸던, 그 영상은 도대체 출처가 어딘지를 모르겠어요.
임: 유튜브에 올려주신 그 파일 저는 사실 한번 본 적이 있거든요. 한복을 보니까 기억이 나는데 저도 출처를 못 찾았어요. 북한분이 올리신 건지 북한에서 촬영한 건지 북한에서 유튜브 엑세스가 가능한 건지.
손: 저도 모르게 자기 검열이 되더라고요. 통일부의 합법적인 허락을 받고 시청을 해야 되는 건가 하면서. 그런데 국내에서 원천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건 불법, 유해 사이트 이런 걸로 차단이 되거든요. 그래서 북한 자료 구글링 할 때도 자동 차단돼서 못봤었는데 그건 열려있는 걸 보니까 오픈 엑세스가 가능한 건지 모르겠는데, 몇 년도에 어디서 촬영된 건지 구체적인 출처를 모르니까.
임: 그런데 유튜브 자체에 올라온 건 꽤 오래되지 않았어요? 오래 전에 본 거 같아요.
손: 그런 것 같아요. 올려주신 비메오 영상이랑 아마 올라온 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그 여자 동작, 남자 동작 나뉘어있는 파일들, 그리고 얼떨결에 알고리즘으로 유튜브가 추천해준 최승희 입춤 기본을 비교하면서 봤거든요. 그랬더니 아주 흥미로웠어요. 조선민족무용기본의 진행 순서라든지 장 구성같은 게. 올려주신 비메오 자료는 금강산가극단의 단원분이 시연을 하신 것 아니에요?
홍: 맞아요. 그리고 아까 잘못 말씀드렸는데 조선민족무용기본은 책이고 DVD는 조선무용기본동작이에요.
손: 결정적으로 흥미로웠던 게, 북한 관련한 뒤쪽의 두 버전 같은 경우에는 순서가 같더라고요. 제가 앞부분만 확인해봤을 때는요. 제일 처음에 걷는 동작이 있고 그 다음에 팔동작으로 넘어가는 그 부분의 진행 순서 같은데, 정아샘이 올려주신 비메오 파일의 경우엔 똑같은 동작으로 진행이 되다가 점점 세분화가 엄청 되더라고요. 변형시키고 응용한 동작들을 체계화시킨 것 같았는데, 이게 북한에서 배운 걸 바탕으로 재일조선인 가무단 분들이나 가극단 분들이 본인들의 해석을 곁들여서 새로이 정립시키신 건지 많이 궁금했어요.
홍: 지난번에 들어보니까 최승희류 말고도 다른 유파의 선생님들이 있다 이런 얘기를 짧게 들었잖아요. 그런데 기본은 계속 최승희가 만든 것에서 개편하면서 현재까지 오는 거 같아요. 예전에 탈북하신 선생님이 최승희가 제일 처음에 만든 기본을 배웠다 하셔서 그분이 두리춤터에서도 최승희 기본이라고 해서 공연을 하셨었고 그 DVD를 바탕으로 저희한테 순서를 가르쳐 주셨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이 3차 개편 DVD랑 완전히 달라요. 정말 살풀이 하듯이 천천히, 움직임이 느리게 이어지고..
손: 전 지난번에 정아샘께서 그 개편 관련한 말씀해 주셨을 때 인상적이었던 게, 최승희에 대한 북한당국의 정치적 입장이 변하면서 조선민족무용기본에서 민족적인 것을 삭제하는 방식, 그것이 결국 안무가의 안무적인 시각이나 견해 같은 부분을 삭제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이해했는데요. 그렇다면 공유해주신 금강산가극단의 기본이 재일조선인 분들이 자체적으로 발전시킨 방식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익힌 방식이라면 더욱더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그럼 과연 거기서 민족성, 춤의 문법에서 그들이 제하려고 했던 것이 뭐고 제한 자리에 더하려고 했던게 뭘까 하는 질문이 문득 들거든요.
예를 들어 조선민족무용기본에서 - 제가 그냥 북한본이라고 편의상 칭할게요, 몇 년도에 올라온 지 알 수 없는 그 영상요. 그 영상을 봤을 때 처음에 제1동작이라고 해서 걷기 동작이 굿거리 장단으로 나오는데 아래에 글씨 나오잖아요. 설명이 나올 때 제일 처음에 보면 보통 걷기, 꼬아 걷기, 머물러 걷기, 곱디뎌 걷기, 옆으로 모아 걷기, 비껴 걷기, 이런 식으로 걷기의 방식을 템포나 나아가는 방향성 같은 특징에 따라 큰 덩어리로 카테고리화 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공유해주신 비메오 영상 보니까 금강산가극단 기본은 어떤 식으로 나뉘어져 있냐면, 보통 걷기, 꼬아 걷기까지는 똑같고 비껴 걷기는 북한본에서는 뒤쪽에 있던 게 당겨졌고, 그 다음 전줄러 걷기라는 게 있고 곱디뎌 걷기. 그런 다음은 꼬아 곱디뎌 걷기, 비껴 곱디뎌 걷기, 전줄러 곱디뎌 걷기, 등등 앞서서 소위 북한본에서 큰 카테고리로 만든 걷는 방법들을 결합시켜서 또 하나의 동작 문법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랬을 때 과연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걸 통해서 동작 문법이 더 디테일해지는 효과가 있을 텐데, 그걸 통해서 무엇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하는 질문이 영상 비교해 보면서 크게 들었어요.
임: 저는 옥주씨가 보내주신 유튜브 영상 보면서 박금술 선생님 기본이 겹쳐졌어요. 제가 춤을 배울 때 발레처럼 정확한 동작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추는 사람이 즉흥적으로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었죠. 무용인들이 박금술 기본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용어 정리가 되어있고 설명이 되어있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여기는 발레처럼 모든 디딤에 용어가 정해져 있고 설명이 자막으로 지나가는데 박금술 기본 보면 음악에 그분의 육성이 들어가 있잖아요. 그게 매우 비슷한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딤에 관한 용어, 움직임 관한 용어가 일반적으로 북한춤에서 사용이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니면 이 비디오를 올린 사람의 유파에서 정립해 놓은 건지, 모든 조선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손: 어느 정도 통용되는, 획일적인 전수를 통해서 소통이 가능해진 방식의 용어인 것 같긴 하더라고요.
임: 그래요?
손: 그리고 공유해드렸던 링크 중에 62년에 촬영된 최승희의 그 입춤 기본에 관한 흑백 영상이 있잖아요. 2019년인가에 업로드 된 영상이던데, 너무 작은 소리라서 캐치하기 쉽진 않았는데 각 동작, 모든 걷기 동작을 일단 연결시켜서 시연한 다음에 각각의 걷기를 일종의 종목처럼 하나씩 설명해줘요. 그 교본 구성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발동작의 경우 클로즈업을 해서 각각의 발동작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같이 설명해 주더라고요., 이때는 뒤꿈치부터 시작해서 발등 바깥으로 해서 걷기가 진행돼야 된다는 등. 어쨌든 그런 용어들이 금강산가극단의 기본에서도 계속 유지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물론 용어의 순서나 구성 상의 차이는 있었지만요. 방식들을 하나로 합쳐서 전혀 다른 걷기 방식으로 새로이 창작한다거나 이런 가능성이 열려있긴 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전줄러 걷기’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봤어요.
임: 전 춤을 추는 사람인데도 거의 처음 듣는 용어들이에요.
손: 그래서 ‘전주르다’를 네이버국어사전에서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애태우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고, ‘동작을 진행하다가 다음 동작에 힘을 더하기 위해서 한번 쉰다’ 이런 의미라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전줄러 걷기 걸음을 보면 가다가 갈듯 말듯 하면서 시간상 인터벌을 주면서 걸어요. 그걸 보면서 혹시 제주도 출신의 재일조선인 분들이 많아서 용어가 영향을 준 건가 싶었는데, 최승희 기본, 그 62년도 촬영본 보니까 거기도 전줄러 걷기라는 똑같은 표현이 나오는 거예요.
임: 용어를 이렇게 추적해가는 것도 재미있네요.
손: 한번도 못 들어본 동사 표현인데요., 기본이라고 한다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동작 문법을 만든다는 목표 안에서 소통이 가장 빨리 될 수 있는 것, 용어를 들었을 때 그 움직임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가장 근접하게 이미지네이션이 되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랬을 때 왜 이런 표현이 들어간 걸까? 아니면 그때 당시 이 표현들의 용례는 보편적이었을까? 용어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질문이 들었어요.
임: 이게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분단되기 전, 최승희가 북으로 넘어가기 전에도 이런 용어를 사용했을까요?
홍: 그랬을 것 같아요. 박금술 선생님도 멍석말아돌기, 이런 게 있잖아요. 옥주샘 말씀하셨듯이 그 시대 때 쓰던 말들, 저희는 농사를 안 지으니까 기본 용어를 들으면 새롭게 들리지만 그 당시에는 일상에서 썼던 용어여서 박금술 선생님 기본에 나오는 용어도 그렇고 최승희 선생님도 다 그 당시에 썼던 거 같아요. 용어 추적하는 게 정말 흥미롭네요.
임: 옥주샘 용어 추적을 한번 해주시겠어요?
손: 네이버 국어사전으로요?(웃음) 어떻게 추적하면 좋을까요.
임: 갑자기 제주도로 연결되고 하니까 재미있네요.
손: 그래서 역사적 맥락이 있나 했는데 북한에서도 쓰이는 표현인가 모르겠어요.
홍: 최승희가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썼던 용어일 텐데 그것과 별개로 재일조선인이 제주 출신이 많아요. 제주도나 부산이나. 남한 출신이 거의 7-80%였다고 해요.
손: 또 하나, 저한테는 이 세 가지 버전에서 드러나는 차이들이 훅훅 오는 부분이 있는데요. 기본 뿐 아니라 공유해주신 금강산가극단 기념공연 DVD를 보면서도 많이 느낀 부분인데, 장단이나 음악의 역할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최승희 기본이나 북한본에서는 다 굿거리로 통일해서 장단이 들어가던데, 금강산가극단 기본에서는 너무 다양한 거예요. 반살풀이 장단, 타령 장단, 굿거리 장단 등등. 그리고 굿거리라 해도 저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템포가 너무 빠르게 느껴졌어요. 가극단 춤은 왜 이렇게 빠른 거예요?
임: 장단과 함께 항상 멜로디가 들어가잖아요. 굉장히 하이피치라서 같은 박이어도 더 빨리 몰고 가는 느낌일 수 있을 것 같아요. 2배속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스피디한 동작이 많아요. 영상이 버퍼링 됐다가 갑자기 돌아가나 싶을 정도로요. 춤의 스피드나 방향을 그렇게 빠르게 바꾸기가 쉽지가 않은데. 전체적으로 낭창낭창하다라는 느낌과 단어가 계속 떠올랐어요. 스피디한데 낭창낭창한 느낌. 그런데 움직임이 뭔가 많이 익숙한 거예요. 발레의 몸이 겹쳐졌어요. 토슈즈만 안 신었지 발레라는 느낌.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춘향 공연하듯이. 조혜미 선생님이 발레 트레이닝을 아주 중요시한다고 말씀하셨었잖아요. 제가 조선족 무용수에게 최승희 기본을 배울 때 발레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발레처럼’이라는 표현을 많이 했어요. 영상에서도 보면 그런 발레 스텝이 없으면 동작들이 이렇게 큰 무대에서 성립조차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큰 무대를 다 사용하려면, 뒤꿈치로 시작하는 한국춤의 잔걸음으로는 안 되겠다.
조선춤은 정아샘 말씀하셨듯이 그 자체가 시작이고 그 전의 춤은 없는 건데, 이미 서구화된 춤을‘시작의 춤’이라고 인식하고 추는 건데. 제 경우는 전통춤을 배우기 전에는 신무용에 대한 질문도, 문제의식도 없었고 전통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레퍼런스가 생기고 그때부터 결정하고 선택하고 비교하면서 춤을 추게 됐어요. 만약에 조선춤을 추는 무용수에게 한국춤이라는 레퍼런스가 생긴다면, 뿌리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면, 춤과 몸의 오리엔테이션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질문하게 돼요.
무용수의 몸이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구 무용사적으로 봤을 때 특히 발레에서 보면 무용수의 몸은 테크닉이나 이미지로 소비될 뿐 무용수의 사고, 감정, 결정이나 선택은 중요한 게 아니었잖아요.추는 사람으로서도, 보는 사람으로서도. 그런 면에서 조선춤이 기예적이고 기술적이고, 무용수의 몸이 소외됐다고 보이는 것이, 의식이나 체제 뿐 아니라 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닐까, 그 안에 흡수된 발레적 테크닉과, 기예적인 춤의 요소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제가 캡처한 이미지가 몇 개 있는데요. 스피드나 다이나믹이나 테크닉이 대부분 발레나 서양 춤을 훈련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들이었고요. 빠른 동작은 호흡이 짧기 때문에 가능한 거거든요. 호흡을 분절해서 컨트롤 할 수 있어야 몸의 중심과 스피드를을 재빠르게 바꿀 수 있고요. 최승희가 동양발레를 만들려 했던 노력이 춤에 이런 식으로 내포되어 있거나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 형식이 익숙했어요. 서울예술단의 가무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대, 의상, 소품, 오케스트라, 조명도 그렇고 총체극 같았어요. 무용극 혹은 음악극, 가무악, 가무극, 뮤지컬 같기도 하고. 굉장히 쇼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서울예술단의 설립 배경을 찾아봤어요. 무용단이86년에88무용단으로 창단이 됐거든요.남북문화교류, 해외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거기에 한국음악극의 양식을 개발하는 목적이 하나 더 있더라고요. 제가 무용단에 들어갔을 때는 뮤지컬팀과 무용팀이 분리돼서 기능하고 있었는데 신선희 이사장님이 들어오시면서 가무악이라는 형식을 가져와요. 무용수가 무대에서 노래 하면서 춤을 추고 악기를 다루는,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형식이었어요. 그땐 그걸 가무악의 현대적인 수용이라고 봤던 것 같아요. 금강산가극단의 무대를 보면서 그런 현대적 가무악이나 가무극인가 싶기도 하고 특히<춘향전>과<풍랑을 뚫고>를 보면 굉장히 극적이죠. 최승희가 경극에서 춤을 분리, 독립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여기선 오히려 극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고. 그래서 저는 오히려 경극의 부속물 같다는 느낌이 여전히 들었어요.
<금강산의 무희들>에는 살풀이 같은 솔로가 나와요.도포를 두르고 나와서 그걸 벗어들고 살풀이춤처럼 추는데 다른 방식의 훈련을 한 몸이 한국춤을 추는 느낌이었어요.화면이2배속으로 재생되는 듯 굉장히 빠른 움직임도 나오고 전환도 굉장히 빠르고요. 어떤 훈련을 해야 이런 몸이 가능하고 이런 춤이 가능할까? 여러 레퍼런스들이 연결이 됐어요. 많은 형식의 춤을 경유하고 있거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거나, 다 가지고 있거나 중간에 있거나. 그래서 이 춤이 견고해 보이는데도 보는 사람의 경험으로는 절대 완성될 것 같지 않은 네버엔딩스토리 같았어요.
손: 저도 많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빠르다,. 그리고 발레를 연상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유사하다. <춘향전>만 봐도 인물이나 대열 구성, 인물 배치 등 안무자가 그 무대를 채우고 비우는 대형만 봐도 발레 군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너무너무 많이 들어서굉장히 흥미로웠고요. 동시에, 이 가극단의 춤에 있어서 창작이란 뭘까, 창작의 의미가 뭘까, 하는 질문이 저는 크게 들었어요. 창작자들에게 있어서 창작이란 뭘까., 무용수의 신체나 춤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의 역량 강화 같은 것 있잖아요.죠, 누가 얼마나 빨리 혹은 많이 돌 수 있는지, 얼마나 높이 뛰거나 얼마나 많이 상체를 뒤로 꺾을 수 있고는지 등등 거의 서커스 기예에 준할 법한 동작들이 다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몸이나 움직임이 가진 신체적 조건을 계속 넘어서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창작적 툴인가?’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창작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에 계속 뭔가를 넘어서야 하는 욕망 같은 게 자리하나? 레퍼토리 춤을 춘다고 할 때, 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누가 더 잘 추는지 판단하는 걸까? 보면서 너무 열심히 하는 운동경기 몇 판을 보는 듯했고, 보고 있는 저 또한 호흡 곤란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음악과의 상관성이에요. 오케스트레이션 자체가 서양 악기 위주로 편성돼있고 창자가 성악가잖아요. 성악가가 아주 조선적인 뉘앙스만을 가진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성악 발성법으로 노래하는 셈인데, 춤도 그렇고 선율 중심의 서양식 오케스트레이션도 그렇고 이 춤에는 네거티브한 부분, 걸리는 부분이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독일어로 하자면 ‘Negativität.’ 네거티비티가 배제된 상태같은 느낌이 굉장히 많이 들었고, 지애샘은 이 춤 자체가 네버엔딩, 끝을 모르고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중간에 영상을 멈추고 즉흥적으로 연상되는 다른 영상들을 찾아봤는데, 그 중에 리틀엔젤스 공연 영상과, 조택원 선생의 <춘향조곡>이 있었어요. 조곡이 ‘모음곡’이라는 음악 개념이잖아요. 말 그대로 <춘향전>을 여섯 개의 장면으로 쪼개서 각각 네 글자의 부제를 붙여 모음곡 형식으로, 일종의 뮤직시어터처럼 만드신 작품이 있어요. 리틀엔젤스 작업도 그렇고 조택원 선생의 <춘향조곡>을 봐도 그렇고, 배경음악에 따라서도 ‘Negativität’라는 부분이 차이나는 거예요. <춘향조곡>만 하더라도 대금 반주로 진행돼요. 그런데 그 감각 자체가, 금강산가극단 공연을 봤을 때 느꼈던 감각, 그러니까 ‘아, 이건 정말 하나도 걸리는 것 없이 모든 요소가 물 흐르듯 흘러가는구나, 정말 끝도 없이 흘러가겠다, 여기에 어떤 돌기 - 완충 작용하거나 정지시킬 요소가 정말 없구나’ 그런 감각과는 전혀 달라요. 리틀엔젤스 작업도 레퍼토리는 유사할지 모르지만 배경 음악이라든지 – 제가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단지 음악 때문에 받은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춤 스타일도 비슷하고 군무 형식이고 한데, 장구 장단이 들어간다거나, 전통적인 타악 중심으로 가고 장단 자체의 템포도 느려요. 그리고 저는 금강산가극단의 춤을 보면서 역동적이라고는 느끼지 않았거든요? 역동성, 다이나믹이라고 할 때는 힘의 온도차랄지 어떤 걸리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 춤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느껴지질 않는 거예요.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임: 자꾸 한국춤과 비교하며 보게 되는데요, 역동성, 다이나믹이라는 건 어떤 대비가 있어야 하잖아요. 한국춤에 맺고 풀고 어르기 과정이 있는데, 여기에는 뭐랄까 계속 맺기만 한다고 해야 할까요?한 가지만 계속 하고 있는 거죠. 계속 잡고만 있는 거예요. 호흡이나 춤이 풀어질 순간이 없어요. 그렇게 한 가지 운동성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다이나믹이 생성될 수 없겠죠. 올라가기만 해요, 내려오지 않고.
손: 말씀하신 것처럼, 춤에서 느껴지는 다이나믹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과는 뭔가 다른 지점이 있었어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공유해주신 기념공연 DVD 제일 첫 장면에서 하얀 한복 입으신 모더레이터가 나오면서 커튼이 촥 걷히는데 정말 ‘sculpture’들만 있잖아요.
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손: 그 모습이 정말 조형적이잖아요. 레퍼토리마다의 대표성을 띤 시그니처 동작들이 무대 위에 그냥 박제된 상태로 전시돼있잖아요. 그런 조형성의 연속 같은 느낌이었어요. 조형적인 몸과 춤의 장식적 특징들이랄까. 말씀하신 것처럼 맺고 어르고 푸는 과정 안에서 그런 에너지들이 생성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장면이 계속 변하고 동작과 대형이 변하고 무대가 채워지고 비워지며 구조가 계속 변하는데, 이상하게도 뭔가가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손: 맞아요. 텐션이 계속 유지된 상태로 끊임없이 진행되니까. 예를 들어 팔동작도 가슴 아래로는 거의 떨어지지 않잖아요. 떨어진다 하더라도 다음 동작에 치고 올라가기 위해 잠시 내려오는 것이고, 늘 가슴 위쪽으로 동작의 텐션이 계속 올라가 있는 게 중심이고요. 조혜미 선생님도 정치적인 이념색 때문에 그런 건지 조선춤은 대개 가슴을 열고 팔과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이념성 안에서 하나의 안무 방법으로 정착이 된 건지, 아니면 역으로 움직임의 특징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걸 이념과 결부시켜서 해석을 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청나게 집중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하늘거리면서도 어쩜 그렇게 지치질 않을 수가!
임: 지침을 느낄 수가 없는 구조인 것 같아요.
홍: 그래서 오히려 졸립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와, 이건 정말 기립박수를 쳐야 될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금강산가극단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구나. 너무 잘 기능하는 몸, 테크닉적이고 기예적인 몸. 통일이 돼서 북한 사람들이 공연을 하면 2-3년은 북한 사람들만 메인으로 공연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감동 받고 기립할 수 밖에 없는 대단함이 있고, 저도 보면서 ‘아니, 저 동작에서 저 동작을 저렇게 아무렇지않게 가볍게 돌릴 수가 있다고?’ 싶고 이분들은 무게가 없나 싶을 정도로 정말 대단하고요. 다리 안쪽을 규제시키면서 상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낭창낭창하게 하는 걸 보면서 발레의 아라베스크나 데벨로뻬 같은 걸 다 팔로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한 손은 계속 수직으로 올리고 동작을 하니까 백조 같고, 이건 발레인데 손으로 하는 발레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가슴 쓰는 것도 발레랑 많이 닮았고 수직적으로 호흡하고.
또 저 역시 보면서 클래식 발레 공연과도 같은 하나의 큰 극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아까 창작이란 무엇일까 말씀 하셨는데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큰 극은 다 북한에서 배워온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제가 금강산가극단 만났을 때 모든 것을 다 가져왔다고 들었거든요. 한복부터 조명, 무대 디자인까지. 조선학교도 교과서부터 모든 것이 다 북한에서 왔잖아요. 학교의 디자인까지.
또 저는 네가치온, 역동성 말씀하실 때 아주 재미있었어요. 제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고 더하려고 했던 건 무엇인가 말씀하셨는데, 민족적인 것은 뿌리를 생각하게 하잖아요. 최승희가 어떻게 보면 북한에 가서 북한의 새로운 무용을 만들어야 했는데 오히려 민족적인 것, 뿌리에서부터 그 무용을 길어올리고 계속 소품 무용 같은 걸 하면서 김일성과 대치되는 지점이 있었다는 증언을 들었었거든요. 그래서 제하려고 했던 것과 더하려고 했던 것, 그 질문을 듣고 최승희 숙청 후에 무용이 계속해서 빠르고 가벼워지고 스펙터클해지고 조형적이게 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됐던 것 같아요.
손: 백향주씨 공연을 한번 찾아봤거든요. 독무였는데 정말 엄청 돌더라고요, 몇 분은 돌았나봐요. 장구춤을 추면서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반복해 돌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딱 멈추는데, ‘이들은 왜 춤 안에서 굳이 본인을 소진시켜 가면서, 그런데 마치 소진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장면을 구성하는 것일까? 안무적으로 어떤 의미이고 관객에게 어던 의미로 다가가는 걸까?’ 궁금해졌어요.
손: 금강산가극단의 춤에 나타나는 맹목성이라는 게 무목적적이진 않은 것 같거든요. 그걸 통해 민족의 춤이 완결되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는 믿음 안에서, 자신의 기술적이고 기교화된 몸 상태, 움직임의 상태를 능가해가는 거죠. 민족적 이념의 궁극에 닿을 수 있다는 목적 안에서, 춤의 맹목적인 지점들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임: 그렇죠. 춤을 대하는 무용수의 의식이나 방법이 체제나 의식, 민족성 같은 것에 닿으려는 목적성이 있죠. 그래서 맹목적이라는 게 더 흥미롭네요.
손: 맞아요. 무목적적이지는 않은데 맹목적이라는 것. 참 어렵네요.
홍: 덮어놓고 행동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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