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4
◌ 윤경숙, 임지애, 손옥주, 홍정아
교토조선중고급학교 무용소조활동 윤경숙 선생님과의 대화
대담자: 윤경숙(이하 ‘윤'), 임지애(이하 ‘임'), 손옥주(이하 ‘손'), 홍정아(이하 ‘손')
임: 간단히 소개 드릴게요. 저는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춤 공연 만들고 있는 임지애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홍: 안녕하세요, 저도 무용 하고 기획 일을 주로 하고 남북 춤에 대한 교류 연구에 관심이 많은 홍정아입니다. 반갑습니다.
손: 저는 공연 연구하는 손옥주라고 합니다.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신: 저는 이번 프로젝트 기획으로 참여하고 있는 신진영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임: 이상태 선생님께 짧게 얘기 들으셨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프로젝트를 간단히 설명드릴게요. ‘춤의 이주’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요. 한 지역의 춤이 다른 이동으로 이동하면서 수반되는 변화나 발전을 살피고 있어요. 이 부분을 조선춤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고, 조선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된 이유는 조선춤이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어떤 방법으로 교육되고 있는지, 교습 방법을 좀더 자세하게 경험하고 알고 싶어서 이상태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서 연락 드리게 됐고 선생님을 연결해 주신 거예요. 엊그제 수업 보면서 너무 재미있었고 많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오늘 선생님한께 조선춤에 대한 이야기, 학교에서 교습이 이뤄지는 방법 등 이야기를 들었으면 해요. 그리고 선생님은 조선춤과 관련해서 어떤 교육 또는 훈련 과정을 거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윤: 먼저 제가 조선무용을 시작했던 것은 여덟살 때로서 학교하고 달리 연구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연구소에 다니면서 조선무용을 처음으로 배워서 그때는 아동무용을 배워서 우리 학교는 초급부가 6년 있는데 4학년 때 소조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 소조 활동에 제가 그 전에 연구소에서 조선무용을 연구소에서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무용을 계속 하자고 생각을 해서 학교에서도 조선무용을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아동무용이면 동화무용 상모랑 그런 거 사용하는 민속무용, 그리고 자기들의 생활을 표현한 그런 생활무용도 배워왔고 역시 춤을 추기 위해서 하체를 훈련하기 위해서 발레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급부, 고급부, 대학까지, 그리고 지금 교원이 되면서 계속 무용을 하고 있습니다.
임: 학교에서는 언제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셨어요?
윤: 3년 전입니다. 3년 전에 대학을 졸업해서 이 교토의 조선학교에 취임되고 시작을 했습니다.
손: 그러면 실례지만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 거죠?
윤: 95년생입니다. 스물다섯입니다. 남조선이면 스물여섯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학교 졸업하시고 바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전환하신 거네요.
윤: 제가 우리 학교 교원은 무용만이 아니고 그 외 교수도 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저는 가르치고 있는데 교원의 길을 골랐던 것은 대학에 가고라기보다는 초급부 때부터 되고 싶어서 우리 학교 중고 다니고 대학까지 나갔습니다.
임: 그럼 가르치시는 과목이 따로 있고 소조활동도 맡고 계신건가요?
윤: 무용은 과목이 아니라 우리 학교에는 무용이라는 과목이 없어서 그것은 초중고 다 없어서 소조 활동이라는. 클럽이기 때문에 축구 소조, 성악 소조든지 그런 소조 속의 하나가 무용 소조로서 수업 같이 90분 받고 45분 받고가 아니라 기본은 학교 수업이 다 끝나서 3시, 4시 경부터 2시간 혹은 2시간 반쯤 진행합니다.
임: 그러면 학교 정식 수업이 다 끝난 다음에 방과 후에만 소조 활동을 하는 거네요.
윤: 네.
임: 방과 후에 그렇게 1-2시간 매일 연습이 있는 거예요?
윤: 월요일은 없어서 화수목금토요일은 그렇게 소조를 진행하고 일요일은 휴일도 있고 발표회랑 가까운 경우는 일요일, 휴일 연습도 있습니다.
임: 방과 후에만 연습하는데도 학생들 실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미 초급부, 중급부 시기에 어느 정도 조선무용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고급부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조선무용을 한다는 학생들이 없습니다.
홍: 선생님 학교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나요?
윤: 안 합니다.
홍: 그럼 본인 집에 살면서 경연대회가 있거나 할 때 일요일까지 학교를 계속 나오는 거네요.
윤: 네. 먼 학생은 2시간 쯤 걸립니다.
임: 멀리서도 다니네요. 제가 선생님 수업하시는 거 보면서 초반에 기본 같은 몸풀이 동작을 봤는데, 그 기본이 저한테는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는데 선생님 계신 학교에서만 추어지는 기본인가요, 아니면 다른 조선학교에서도 통용되는 기본인가요?
윤: 조선학교에서 통일되는 몸풀이로 됩니다. 저도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으로 역사를 배웠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부터라는 것을 말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는데 대학까지 조선무용을 하면서 초중고 대학은 보신 몸풀이가 기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적으로도. 우리도 배웠던 선생님부터 배웠던 것을 다시 배워준다는 그 계속이 오고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그때 그때마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보급되고 있고. 또 하나 그 날은 발표회 연습이 있어서 안 하고 있었는데 기본 동작의 연습도 보통 일상시 소조에서는 합니다. 기본 동작은 일본에서도 여러 가지 하고 약간 최승희 선생님의 기본 동작을 하고 있던 때도 있었는데, 약간 개량을 해서 지금은 좀 다른 기본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임: 그럼 그날 그 기본 동작은 없었던 거네요.
윤: 네.
임: 그럼 제가 아까 여쭤봤던, 초반에 하신 구 기본의 이름이 있나요?
윤: 하나씩입니까?
임: 아뇨, 통틀어서 그 기본의 이름이요.
윤: 이름은 없고 하나하나 장단, 노래 함께 곡 끝날 때마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런 게 아마 열 개 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임: 그 이름을 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윤: 가장 처음의 것이 몸풀이 동작. 다음이 상체를 풀기 때문에 상체풀이/풀기 동작. 다음은 손목 운동으로 손목 동작. 그리고 그 다음 다리니까 잔발 동작이 세 가지 있어서 그 다음은 무릎 올리기. 그리고 그 다음이 뛰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본 동작의 하나입니다. 뛰는 동작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도 기본 동작의 하나로 곱디뎌, 이게 다리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곱으로 움직이는.
홍: 투스텝 같은 거죠?
윤: 네. 투스텝, 네 그렇습니다.
홍: 곱디딤인가요?
윤: 곱디디.
임/홍: 아.
임: 곱디뎌.
홍: 곱디디어 동작인가요?
손: 저 동작이 저번에 본 최승희 기본에도 나오지 않았어요? 곱디뎌 걷기 이런 게 있었는데.
윤: 나오는데 최승희 기본 동작은 약간 너무 크게 많이 놀리기가 없어서 학생들이 추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하고 좀 더 정확하게 추기 위해서 약간 개량을 했습니다.
홍: 신기하네요. 초등학생은 기본이 다른가요?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윤: 네, 다릅니다.
홍: 제가 2010년에 조선학교 한번 방문했을 때 초등학교 기본을 본 적이 있어요. 제동작 위주로 많이 하더라고요. 그건 어떤 식으로 되는 거예요? 기본을 간단하게?
윤: 매해면 언제나 대학의 선생님들이 각 지방을 돌아서 일단 오랫동안 무용 선생님 하고 있는 선생님도 계시고 저같이3년 된 사람도 있고 신임 선생님도 계시기 때문에 기본적인 춤선이라고 할까 춤동작을 통일하기 위해서 돌아주십니다. 그것과 함께 DVD와 같은 자료가 하나 있어서 그것을 보면서 선생님들이 각자 풀이를 한다라는 것으로 초급부, 중급부, 고급부 다 기본 동작은 다릅니다.
임: 아까 말씀 드린 기본은 그럼 북한에서 직접적으로 추어지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거죠?
윤: 아마 최승희 기본이 아마 조국에서는 기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배웠는데.
홍: 조선학교가 세워지면서 북한에서 모든 게 다 넘어왔잖아요. 교육 체계나 교과서나 교육 방식이 넘어오면서 저는 기본도 소조가 북한에 있으니까 기본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 맞는 기본을 북한에서 가져온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개량을 하시는군요.
윤: 조금 그 부분에 관해서는 100% 얘기를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 부분이 잘 몰라서. 어떻게 달라지고라는 역사적인 부분을 못 배웠기 때문에 대학에서. 좀 죄송스러운데 그것이 다라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홍: 감사해요. 선생님이 아시는 만큼만 말씀해 주셔도 저희는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손: 윤경숙 선생님 말씀처럼 선생님도 이제 막 신임 교사로 가르치시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본 같은 것도 윗대 선생님들께 배우셨기 때문에 연배가 더 있는 선생님들이 그 부분을 더 많이 경험하고 알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임: 혹시 학교에서 발레 수업을 따로 하나요?
윤: 수업은 아까도 이야기를 했는데 그 수업이라는 것은 없어서 소조 2시간이면 2시간, 2시간이면 2시간 반, 그 속에 하나는 하체를 키우기 위한 발레를 합니다. 발레는 안 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임: 발레는 선생님이 직접 지도 하시나요?
윤: 네. 저는 원래 초등학교 3학년 시기에 약간 발레를 배워서 그래도 너무 잘 하지 않는데 그래도 초중고로서 일정하게 발레를 저도 소조 활동에서 해서 그때 하체가 많이 키워지고 축이 서니까 축을 세우기 위해서 발레를 한다 정도로 발레를 전문적으로 소조 시간에 전문적으로 가르친다기 보다는 조선무용을 추기 위한 축을 세우기 위해서 발레를 넣고 있습니다.
임: 저번에 수업 견학할 때, 저희가 인터넷 상황이 안 좋아서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음성이 많이 안 들렸거든요. 그런데 중간중간에 발레 용어가 조금 들렸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아이들 몸의 축이 발레를 배워서 훈련되어 있는 몸 같더라고요. 그래서 여쭤봤어요.
윤: 지금은 좀 발표회 연습이 있어서 그리 안 하는데 발표회랑 너무 가깝지 않은 때에는 발레도 하고 이너 머슬을 키우기 위한 훈련도 하고 그것이 없으면 돌기랑 뛰기랑 요 동작이 못합니다.
홍: 궁금한 게, 그 예술 경연대회가 1년에 두번 있나요? 겨울에 한번 있나요?
윤: 가을입니다.
홍: 아, 가을에 있는데 이번에는 좀 늦게 하는 건가요?
윤: 이번에는 이제 끝났습니다.
홍: 그리고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전국에 있는 모든 조선학교 친구들이 참여하나요?
윤: 원래는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방하고 긴키 지방, 그러한 블록별. 경연도 학교마다 코로나 상황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소조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1년 간. 시간이 짧게 되거나 언제나이면 4월 경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학교 자체가 이번에 6월부터 시작을 했으니까 연습량도 매해 비하면 보장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경연이 아니라 발표회라는 모양으로.
홍: 조선학교가 조선학교 별로 성적이나 이런 걸 경쟁하잖아요. 예술 경연대회도 그런 느낌인가요, 학교별로?
윤: 네. 금, 은, 동으로.
임: 학교 이름으로 나가는 거군요. 학교끼리의 경연대회네요.
윤: 네.
임: 아. 그럼 굉장히 중요하겠네요.
윤: 네.
임: 부담이 크시겠어요.
손: 학교마다 자존심을 걸고 열심히 준비해서 나가실 것 같아요. 문득 궁금한 게, 금은동메달을 줄 때 잘 하는 기준이 특별히 뭐예요? 각 학교마다 교토 같은 경우에는 윤 선생님께서 안무를 짜주시는 거예요? 학교마다 무용 담당 선생님이 학생들을 직접 안무해서 지도해서 그 작품으로 나가실 거 아니에요.
윤: 예, 그거 하고 조국에 몇 가지 작품이 기성 작품으로서 지정되고 있어서 그거 하고 창작하고 부문이 다릅니다.
손: 그럼 두 부분 중에 선택해서 지원하실 수 있는 거예요?
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독무, 중무, 군무로서, 그 부문이 있습니다. 혼자서 하고, 중무는 다섯 명쯤, 그리고 군무.
홍: 중무가 뭐예요, 선생님?
윤: 한자로 무거울 중, 무용의 무로서 중무라고 하는데 중무는 기본 다섯 명을 기본 인원수로 한, 독무도 아니고 대인원수보다는 소인원수의 무용이 있습니다.
임: 말씀하신 조국 무용에서 직접적으로 내려온 레퍼토리 기억하시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윤: 키춤. 아시나요? 쌀을. 그리고 <사과풍년>. 군무는 그런 것들이 있고 중무는 <방울춤>.
임: 혹시 그때 손목에 걸고 추신 게 그건가요?
윤: 네. 그 세 가지는 유튜브로 검색하시면 나올 것입니다. 한번 보아주시면. 그대로 한글로 쳐주시면 나올 것입니다. 여러 가지 연관된 무용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임: 혹시 독무도 있나요?
윤: 독무는 너무 유튜브에는 올라가지 않고 있을 수 있는데 독무도 소고춤이랑 장구춤 그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임: 키춤, 사과풍년, 방울춤 등을 추실 때 북한에서 사용하는 음악이나 의상, 이런 걸 그대로 사용하시나요?
윤: 조국에서 만들고 그것을 일본에 가져옵니다.
홍: 조선학교에 있는 의상도 다 조국에서 만든 건가요?
윤: 네. 일본에서도 만들 수 있는데 일본이면 비쌉니다. 역시 그쪽에서 만든 쪽이 값도 낮게 할 수 있고 질도 좋고. 질이라고 할까, 그 그라데이션이든지.
홍: 예술 경연대회 나가는 작품 안무하실 때는 어디서 영감을 받으세요? 주제는 어떤 걸 많이 생각하세요?
윤: 역시 학생들의 생활에 가까운 것을 고르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일본에 있는 것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3세, 4세, 5세가 다니기 때문에 차별도 겪으면서 우리 학교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의 감정 세계를 학생으로 표현하거나 꽃으로 표현하거나 나무로 표현하거나, 그러한 주제가 많고. 그 외에도 통일을 주제로 한 무용도 많습니다.
홍: 선생님이 통일에 관심이 많으신 거죠?
윤: 네.
홍: 조선학교 다닐 때부터 교원이 되고 싶으셨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언제부터 조선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으셨어요?
윤: 초급부 6학년. 무용 자체는 그때 너무 좋아하지 않았는데 조국에서 배우거나 할 기회가 있어서 그때 조선무용을 좋아하게 되고. 가르치고 싶다고는 생각 안 했는데 대학을 졸업할 때 좀 결심을 먹고 나갔습니다. 교원이 되는 것은 아버지가 교원을 하고 있어서 동경심부터 오는 부분도 있었고.
홍: 북한에 언제 가셨었어요?
윤: 중급부 2학년 시기에 처음으로 갔습니다.
임: 그럼 몇 년도죠?
홍: 2010년?
윤: 2010년인가요. 10년 전이니까.
홍: 그 이후로 몇 번 정도 가셨어요?
윤: 여섯 번, 일곱 번 쯤.
홍: 많이 가셨네요.
윤: 네. 그래도 고급부 3학년 때 정말이면 조국에 수학여행으로 갑니다. 우리 고급학교 학생들. 올해는 좀 코로나로서 못 갔는데.
임: 그럼 지금도 학교에서 계속 가고 계시는 거예요?
윤: 네. 그래도 코로나가 안착 안 되니까 1-2년은 좀 모릅니다.
임: 그럼 제일 최근에 가신 건 작년인가요?
윤: 아닙니다. 올해는 고급부 3학년 담당하고 있지만 마지막에 갔던 것은5년 전인가.
임: 처음에 학교에서 조선춤 배우고 난 후에 북한 방문해서 조선춤 배우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윤: 역시 환경이 보다 좋다고 느꼈습니다. 역시 조선무용이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것보다 배울 수 있고 그것을 그래도 일본에서도 우리가 잘 배워야 한다고도 생각하고.
홍: 자주 가신 것 같은데 가시면 선생님의 춤 선생님이 계세요?
윤: 고정된 선생님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홍: 그럼 가셔서 활동, 프로그램을 하는 건가요?
윤: 네. 그러한 느낌이 맞는 것 같아요.
홍: 어떤 프로그램들을 하세요? 춤 배우시고 관광하고.
윤: 네, 바로 그렇습니다.
임: 그쪽 무용단과 연계해서 가시는 건가요?
윤: 그렇게 큰 무대 출연자하고의 접촉은 없습니다.
홍: 선생님은 북한의 경연대회 이런 거 나가보셨어요?
윤: 없습니다.
임: 조선무용을 학교에서 가르치실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윤: 기술적인 부분입니까?
임: 기술적인 부분이나, 의식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고요.
윤: 기술적인 부분은 하체하고 호흡. 율동성입니다. 정신적인 부분은 아까 금은동 얘기도 주셨는데 바로 그렇다고 생각을 해서 상이 중요하다, 라기보다는 일본에서 조선무용을 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정말 우리 학교 학생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역시 그런 민족성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태어난 곳은 일본이라도 역시 계속 지킨다고 할까 그러한 정신적인 내면 세계 부분을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홍: 호흡 말씀하셔서 궁금한데, 여기 남쪽도 호흡을 중요시 여기거든요. 호흡 교육하실 때 어떤 말씀을 많이 하세요? 어떻게 호흡해라, 이런 면.
윤: 쉬고 풀고, 라고는 얘기하는데 입으로 꼭 쉬고 풀고 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역시 많이 어려워 합니다. 펌프로 표현하거나 하면서. 제가 춤 추고 그것을 흉내라고 할까 본보기로 해보라, 라는 지도 방법이 많습니다. 학교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지도 방법이.
홍: 가르치실 때 저희가 거의 못 들어서 너무 아쉬웠어요. 다음에 수업하실 때 찍어주셔서 보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너무 듣고 싶은데 듣질 못했어요.
윤: 알았어요.
임/홍: 감사합니다.
손: 수업 마지막에도 선생님께서 만드신 창작 작업을 학생들한테 가르치면서 호흡을 많이 강조하시는데, 느낌에 장단이나 음악의 장단에 강약들이 있잖아요. 어떨 때는 박자가 확 터질 때 아이들이 확 집중해야 하고 이런 강약 조절하고도 호흡하고도 연결이 되나 보다 하는 느낌도 받긴 했어요. 앞서 다른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연결이 자꾸 끊기다 보니 그런 점을 많이 놓쳐서 아쉬운 느낌이었지만 순간순간 그런 느낌이 오긴 했어요.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8살에 학교에서부터 조선춤 시작하신 게 아니고 연구소에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조선 국적의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무용 연구소가 교토에 있어요?
윤: 저는 출신이 교토가 아닙니다. 오사카 출신으로서 오사카에는 연구소가 몇 개 있어서 거기서 배웠습니다.
손: 거기서는 조선춤을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홍: 혹시 조은령 영화감독님 아세요?
윤: 모릅니다.
홍: 조은령 영화감독님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조선학교를 방문해서 조선학교 촬영하셨는데 돌아가셨어요. 여자 분이시고.
윤: 몇 명 감독 아는 사람은 있지만.
홍: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남편 분이<우리 학교> 영화 만드셨어요.
윤: 아, 홋카이도에. 김명중.
홍: 네. 오사카라고 하셔서 혹시 아시나 했어요. 거기에 조은령 선생님 추모 나무가 있더라고요.
윤: 김명중 감독은 압니다.
홍: 개인적으로 아세요?
윤: 감독님은 모르시지만 저는 압니다.
임: 무용 같은 경우 소조 활동에서 춤을 배우고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 진로 결정은 대부분 무용수가 되고 무용단에 들어가는 건가요?
윤: 아니요.
임: 그럼 아이들이 취미로서 배우는 경우도 있고 진지하게 전공하려고 배우는 경우도 있는 건가요?
윤: 네. 일본에서는 금강산가극단이라는 단체가 있어서 아마 유튜브로 검색하면 나올 것인데 그것이 결국 프로이니까 그걸 지망하는 학생도 있고 무용을 이제 그만두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자기의 진로에 따라서 계속 무용을 배우는 학생도 있거니와 ???계통을 가는 학생들은 안 하고.
임: 제가 한국에서 춤을 교육 받을 때는 진로 결정이나 프로 무용수로 춤을 출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춤을 배우고 거기에 포커스를 많이 두는데 제가 독일로 넘어오면서, 여기 이주해 오신 한국분들이나 자녀분들을 봤을 때는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민족성을 교육하기 위해서 춤을 배우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마 조선학교에서도 무용이 그런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민족성을 기르거나 정체성을 강화하기위해서 예술이 교육되는지 궁금해서 여쭤보게 됐어요.
윤: 음, 어떤가. 무용을 직업으로서 하는 학생은 0%에 가깝고. 아, 교토 애들은요. 오사카랑 교토에는 있을 수 있는데 지금 교토에서는 너무 없고. 저같이 조선대학교에 그대로 진학해서– 조선대학교 아십니까?
임: 네
윤:조선대학교에 계속 진학해서 무용을 배우는 학생도 있고. 진로 선택으로서 조선무용을 하는 학생은 안 보이고 역시 그것이 소조 활동이 좌우되는 학생도 있고 저도 아직 3년 밖에 여기서 일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계속 조선무용을 하기 위해서 조선대학교에 간다는 학생은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꼭 조선무용이 모든 진로에 좌우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손: 고급부에서 만약에 이 무용 활동이 끝나버리기에는 학생들의 기량도 그렇고 배움의 수준도 그렇고 거의 일주일에 4-5번 이상 매일 같이 2시간, 2시간 반씩 트레이닝하고 연습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학생들이 그것에 대해 불만이 있다거나, 이 정도는 소화하기 힘들다는 불만 없이 자발적으로 잘 따라와주나요?
윤: 고급부 학생들은 기본 자발적으로 따라옵니다.
손: 남한이라면 거의 입시 무용이라고 하는데,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엄청나게 집중적으로 훈련을 하고 그러잖아요. 학생들이 거의 그 정도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잘하기도 해서 저도 이 학생들도 많은 수가 전문 무용가가 되거나 가극단을 목표로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거든요.
임: 왜냐하면 전문 무용수가 되지 않기에는 너무 수준급이라서요. 너무 잘하더라고요. 한국에 예술 고등학교가 있어요. 예고에 들어가면 일반 수업 과정이 있고 그 외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춤에 할애하게 돼요. 하루 종일 춤을 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방과 후에2시간씩 추는 친구들랑 수준이 별로 차이가 안 나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해서 전문 무용수로 가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기량이 너무 뛰어나서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윤: 기량이 높은지 어떤지는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고맙습니다. 저의 지도가 힘든 것도 있는 것도 모르고 그래도 학생들이 열심히 달라붙어 하고 있고. 결국 두 시간 쯤의 연습이지만 발표회와 가까우면 자주 연습도 하고, 아마 그러한 축적이 기술 제고에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역시 프로라고 되었을 때는 돈도 받고라고 하기 때문에 거기까지 추구하고 싶다는 학생은 정말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취미도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자기가 좋아해서 조선무용을 계속 하는 학생은 많고 그러기 위해서 조선대학교에 가는 학생도 있고 자기 진로로 조선대학교에 가고 계속 소조로서 조선무용을 한다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결국 교원이 되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무슨 직업으로 조선무용을-이라는 것은.
손: 아까 여쭤본 부분이랑 연결되는데, 경연대회 나가시면 금은동 상 받을 때 북쪽에서 레퍼토리 분야가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창작이 아니라 레퍼토리 부문이면 거기에 지원하는 모든 학교 학생들이 그걸 똑같이 연습하고 와서 실력을 겨루게 되잖아요. 그랬을 때 어떤 기준으로 금은동이 결정이 되는 거예요? 어디에서 점수를 제일 많이 받아요?
윤: 앙상블도 있고 율동성, 장단성. 이런 부분에서 아마 점수가 있습니다.
임: 선생님이 안무하실 때 민족성을 고취시킨다, 그런 부분에서 영감 받으신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런 부분도 점수 받는 요소가 되나요? 어떤 의도로 안무되었는가 하는 부분이요. 기량 외에도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 이런 거?
윤: 네. 그것도 있어요.
홍: 선생님한테 조선무용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선생님 개인에게 조선무용이 어떤 의미고 학생들에게 조선무용을 가르치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윤: 하나는 민족성이라는 부분. 민족을 지키는 마음 하고. 나 역시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이니까 역시 차별도 있고 그러한 속에서도 꿋꿋이 조선 사람으로 살아가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마음이 역시 큽니다.
홍: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오후엔 뭐하세요? 집에 가세요? 또 교수하세요?
윤: 일본은 밤 7시이기 때문에.
임: 집에 가셔야 되는 거죠.
윤: 네.
손: 이제 퇴근하시는 거네요.
대담자: 윤경숙(이하 ‘윤'), 임지애(이하 ‘임'), 손옥주(이하 ‘손'), 홍정아(이하 ‘손')
임: 간단히 소개 드릴게요. 저는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춤 공연 만들고 있는 임지애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홍: 안녕하세요, 저도 무용 하고 기획 일을 주로 하고 남북 춤에 대한 교류 연구에 관심이 많은 홍정아입니다. 반갑습니다.
손: 저는 공연 연구하는 손옥주라고 합니다.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신: 저는 이번 프로젝트 기획으로 참여하고 있는 신진영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임: 이상태 선생님께 짧게 얘기 들으셨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프로젝트를 간단히 설명드릴게요. ‘춤의 이주’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요. 한 지역의 춤이 다른 이동으로 이동하면서 수반되는 변화나 발전을 살피고 있어요. 이 부분을 조선춤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고, 조선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된 이유는 조선춤이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어떤 방법으로 교육되고 있는지, 교습 방법을 좀더 자세하게 경험하고 알고 싶어서 이상태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서 연락 드리게 됐고 선생님을 연결해 주신 거예요. 엊그제 수업 보면서 너무 재미있었고 많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오늘 선생님한께 조선춤에 대한 이야기, 학교에서 교습이 이뤄지는 방법 등 이야기를 들었으면 해요. 그리고 선생님은 조선춤과 관련해서 어떤 교육 또는 훈련 과정을 거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윤: 먼저 제가 조선무용을 시작했던 것은 여덟살 때로서 학교하고 달리 연구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연구소에 다니면서 조선무용을 처음으로 배워서 그때는 아동무용을 배워서 우리 학교는 초급부가 6년 있는데 4학년 때 소조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 소조 활동에 제가 그 전에 연구소에서 조선무용을 연구소에서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무용을 계속 하자고 생각을 해서 학교에서도 조선무용을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아동무용이면 동화무용 상모랑 그런 거 사용하는 민속무용, 그리고 자기들의 생활을 표현한 그런 생활무용도 배워왔고 역시 춤을 추기 위해서 하체를 훈련하기 위해서 발레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급부, 고급부, 대학까지, 그리고 지금 교원이 되면서 계속 무용을 하고 있습니다.
임: 학교에서는 언제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셨어요?
윤: 3년 전입니다. 3년 전에 대학을 졸업해서 이 교토의 조선학교에 취임되고 시작을 했습니다.
손: 그러면 실례지만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 거죠?
윤: 95년생입니다. 스물다섯입니다. 남조선이면 스물여섯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학교 졸업하시고 바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전환하신 거네요.
윤: 제가 우리 학교 교원은 무용만이 아니고 그 외 교수도 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저는 가르치고 있는데 교원의 길을 골랐던 것은 대학에 가고라기보다는 초급부 때부터 되고 싶어서 우리 학교 중고 다니고 대학까지 나갔습니다.
임: 그럼 가르치시는 과목이 따로 있고 소조활동도 맡고 계신건가요?
윤: 무용은 과목이 아니라 우리 학교에는 무용이라는 과목이 없어서 그것은 초중고 다 없어서 소조 활동이라는. 클럽이기 때문에 축구 소조, 성악 소조든지 그런 소조 속의 하나가 무용 소조로서 수업 같이 90분 받고 45분 받고가 아니라 기본은 학교 수업이 다 끝나서 3시, 4시 경부터 2시간 혹은 2시간 반쯤 진행합니다.
임: 그러면 학교 정식 수업이 다 끝난 다음에 방과 후에만 소조 활동을 하는 거네요.
윤: 네.
임: 방과 후에 그렇게 1-2시간 매일 연습이 있는 거예요?
윤: 월요일은 없어서 화수목금토요일은 그렇게 소조를 진행하고 일요일은 휴일도 있고 발표회랑 가까운 경우는 일요일, 휴일 연습도 있습니다.
임: 방과 후에만 연습하는데도 학생들 실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미 초급부, 중급부 시기에 어느 정도 조선무용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고급부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조선무용을 한다는 학생들이 없습니다.
홍: 선생님 학교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나요?
윤: 안 합니다.
홍: 그럼 본인 집에 살면서 경연대회가 있거나 할 때 일요일까지 학교를 계속 나오는 거네요.
윤: 네. 먼 학생은 2시간 쯤 걸립니다.
임: 멀리서도 다니네요. 제가 선생님 수업하시는 거 보면서 초반에 기본 같은 몸풀이 동작을 봤는데, 그 기본이 저한테는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는데 선생님 계신 학교에서만 추어지는 기본인가요, 아니면 다른 조선학교에서도 통용되는 기본인가요?
윤: 조선학교에서 통일되는 몸풀이로 됩니다. 저도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으로 역사를 배웠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부터라는 것을 말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는데 대학까지 조선무용을 하면서 초중고 대학은 보신 몸풀이가 기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적으로도. 우리도 배웠던 선생님부터 배웠던 것을 다시 배워준다는 그 계속이 오고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그때 그때마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보급되고 있고. 또 하나 그 날은 발표회 연습이 있어서 안 하고 있었는데 기본 동작의 연습도 보통 일상시 소조에서는 합니다. 기본 동작은 일본에서도 여러 가지 하고 약간 최승희 선생님의 기본 동작을 하고 있던 때도 있었는데, 약간 개량을 해서 지금은 좀 다른 기본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임: 그럼 그날 그 기본 동작은 없었던 거네요.
윤: 네.
임: 그럼 제가 아까 여쭤봤던, 초반에 하신 구 기본의 이름이 있나요?
윤: 하나씩입니까?
임: 아뇨, 통틀어서 그 기본의 이름이요.
윤: 이름은 없고 하나하나 장단, 노래 함께 곡 끝날 때마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런 게 아마 열 개 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임: 그 이름을 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윤: 가장 처음의 것이 몸풀이 동작. 다음이 상체를 풀기 때문에 상체풀이/풀기 동작. 다음은 손목 운동으로 손목 동작. 그리고 그 다음 다리니까 잔발 동작이 세 가지 있어서 그 다음은 무릎 올리기. 그리고 그 다음이 뛰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본 동작의 하나입니다. 뛰는 동작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도 기본 동작의 하나로 곱디뎌, 이게 다리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곱으로 움직이는.
홍: 투스텝 같은 거죠?
윤: 네. 투스텝, 네 그렇습니다.
홍: 곱디딤인가요?
윤: 곱디디.
임/홍: 아.
임: 곱디뎌.
홍: 곱디디어 동작인가요?
손: 저 동작이 저번에 본 최승희 기본에도 나오지 않았어요? 곱디뎌 걷기 이런 게 있었는데.
윤: 나오는데 최승희 기본 동작은 약간 너무 크게 많이 놀리기가 없어서 학생들이 추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하고 좀 더 정확하게 추기 위해서 약간 개량을 했습니다.
홍: 신기하네요. 초등학생은 기본이 다른가요?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윤: 네, 다릅니다.
홍: 제가 2010년에 조선학교 한번 방문했을 때 초등학교 기본을 본 적이 있어요. 제동작 위주로 많이 하더라고요. 그건 어떤 식으로 되는 거예요? 기본을 간단하게?
윤: 매해면 언제나 대학의 선생님들이 각 지방을 돌아서 일단 오랫동안 무용 선생님 하고 있는 선생님도 계시고 저같이3년 된 사람도 있고 신임 선생님도 계시기 때문에 기본적인 춤선이라고 할까 춤동작을 통일하기 위해서 돌아주십니다. 그것과 함께 DVD와 같은 자료가 하나 있어서 그것을 보면서 선생님들이 각자 풀이를 한다라는 것으로 초급부, 중급부, 고급부 다 기본 동작은 다릅니다.
임: 아까 말씀 드린 기본은 그럼 북한에서 직접적으로 추어지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거죠?
윤: 아마 최승희 기본이 아마 조국에서는 기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배웠는데.
홍: 조선학교가 세워지면서 북한에서 모든 게 다 넘어왔잖아요. 교육 체계나 교과서나 교육 방식이 넘어오면서 저는 기본도 소조가 북한에 있으니까 기본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 맞는 기본을 북한에서 가져온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개량을 하시는군요.
윤: 조금 그 부분에 관해서는 100% 얘기를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 부분이 잘 몰라서. 어떻게 달라지고라는 역사적인 부분을 못 배웠기 때문에 대학에서. 좀 죄송스러운데 그것이 다라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홍: 감사해요. 선생님이 아시는 만큼만 말씀해 주셔도 저희는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손: 윤경숙 선생님 말씀처럼 선생님도 이제 막 신임 교사로 가르치시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본 같은 것도 윗대 선생님들께 배우셨기 때문에 연배가 더 있는 선생님들이 그 부분을 더 많이 경험하고 알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임: 혹시 학교에서 발레 수업을 따로 하나요?
윤: 수업은 아까도 이야기를 했는데 그 수업이라는 것은 없어서 소조 2시간이면 2시간, 2시간이면 2시간 반, 그 속에 하나는 하체를 키우기 위한 발레를 합니다. 발레는 안 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임: 발레는 선생님이 직접 지도 하시나요?
윤: 네. 저는 원래 초등학교 3학년 시기에 약간 발레를 배워서 그래도 너무 잘 하지 않는데 그래도 초중고로서 일정하게 발레를 저도 소조 활동에서 해서 그때 하체가 많이 키워지고 축이 서니까 축을 세우기 위해서 발레를 한다 정도로 발레를 전문적으로 소조 시간에 전문적으로 가르친다기 보다는 조선무용을 추기 위한 축을 세우기 위해서 발레를 넣고 있습니다.
임: 저번에 수업 견학할 때, 저희가 인터넷 상황이 안 좋아서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음성이 많이 안 들렸거든요. 그런데 중간중간에 발레 용어가 조금 들렸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아이들 몸의 축이 발레를 배워서 훈련되어 있는 몸 같더라고요. 그래서 여쭤봤어요.
윤: 지금은 좀 발표회 연습이 있어서 그리 안 하는데 발표회랑 너무 가깝지 않은 때에는 발레도 하고 이너 머슬을 키우기 위한 훈련도 하고 그것이 없으면 돌기랑 뛰기랑 요 동작이 못합니다.
홍: 궁금한 게, 그 예술 경연대회가 1년에 두번 있나요? 겨울에 한번 있나요?
윤: 가을입니다.
홍: 아, 가을에 있는데 이번에는 좀 늦게 하는 건가요?
윤: 이번에는 이제 끝났습니다.
홍: 그리고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전국에 있는 모든 조선학교 친구들이 참여하나요?
윤: 원래는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방하고 긴키 지방, 그러한 블록별. 경연도 학교마다 코로나 상황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소조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1년 간. 시간이 짧게 되거나 언제나이면 4월 경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학교 자체가 이번에 6월부터 시작을 했으니까 연습량도 매해 비하면 보장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경연이 아니라 발표회라는 모양으로.
홍: 조선학교가 조선학교 별로 성적이나 이런 걸 경쟁하잖아요. 예술 경연대회도 그런 느낌인가요, 학교별로?
윤: 네. 금, 은, 동으로.
임: 학교 이름으로 나가는 거군요. 학교끼리의 경연대회네요.
윤: 네.
임: 아. 그럼 굉장히 중요하겠네요.
윤: 네.
임: 부담이 크시겠어요.
손: 학교마다 자존심을 걸고 열심히 준비해서 나가실 것 같아요. 문득 궁금한 게, 금은동메달을 줄 때 잘 하는 기준이 특별히 뭐예요? 각 학교마다 교토 같은 경우에는 윤 선생님께서 안무를 짜주시는 거예요? 학교마다 무용 담당 선생님이 학생들을 직접 안무해서 지도해서 그 작품으로 나가실 거 아니에요.
윤: 예, 그거 하고 조국에 몇 가지 작품이 기성 작품으로서 지정되고 있어서 그거 하고 창작하고 부문이 다릅니다.
손: 그럼 두 부분 중에 선택해서 지원하실 수 있는 거예요?
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독무, 중무, 군무로서, 그 부문이 있습니다. 혼자서 하고, 중무는 다섯 명쯤, 그리고 군무.
홍: 중무가 뭐예요, 선생님?
윤: 한자로 무거울 중, 무용의 무로서 중무라고 하는데 중무는 기본 다섯 명을 기본 인원수로 한, 독무도 아니고 대인원수보다는 소인원수의 무용이 있습니다.
임: 말씀하신 조국 무용에서 직접적으로 내려온 레퍼토리 기억하시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윤: 키춤. 아시나요? 쌀을. 그리고 <사과풍년>. 군무는 그런 것들이 있고 중무는 <방울춤>.
임: 혹시 그때 손목에 걸고 추신 게 그건가요?
윤: 네. 그 세 가지는 유튜브로 검색하시면 나올 것입니다. 한번 보아주시면. 그대로 한글로 쳐주시면 나올 것입니다. 여러 가지 연관된 무용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임: 혹시 독무도 있나요?
윤: 독무는 너무 유튜브에는 올라가지 않고 있을 수 있는데 독무도 소고춤이랑 장구춤 그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임: 키춤, 사과풍년, 방울춤 등을 추실 때 북한에서 사용하는 음악이나 의상, 이런 걸 그대로 사용하시나요?
윤: 조국에서 만들고 그것을 일본에 가져옵니다.
홍: 조선학교에 있는 의상도 다 조국에서 만든 건가요?
윤: 네. 일본에서도 만들 수 있는데 일본이면 비쌉니다. 역시 그쪽에서 만든 쪽이 값도 낮게 할 수 있고 질도 좋고. 질이라고 할까, 그 그라데이션이든지.
홍: 예술 경연대회 나가는 작품 안무하실 때는 어디서 영감을 받으세요? 주제는 어떤 걸 많이 생각하세요?
윤: 역시 학생들의 생활에 가까운 것을 고르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일본에 있는 것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3세, 4세, 5세가 다니기 때문에 차별도 겪으면서 우리 학교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의 감정 세계를 학생으로 표현하거나 꽃으로 표현하거나 나무로 표현하거나, 그러한 주제가 많고. 그 외에도 통일을 주제로 한 무용도 많습니다.
홍: 선생님이 통일에 관심이 많으신 거죠?
윤: 네.
홍: 조선학교 다닐 때부터 교원이 되고 싶으셨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언제부터 조선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으셨어요?
윤: 초급부 6학년. 무용 자체는 그때 너무 좋아하지 않았는데 조국에서 배우거나 할 기회가 있어서 그때 조선무용을 좋아하게 되고. 가르치고 싶다고는 생각 안 했는데 대학을 졸업할 때 좀 결심을 먹고 나갔습니다. 교원이 되는 것은 아버지가 교원을 하고 있어서 동경심부터 오는 부분도 있었고.
홍: 북한에 언제 가셨었어요?
윤: 중급부 2학년 시기에 처음으로 갔습니다.
임: 그럼 몇 년도죠?
홍: 2010년?
윤: 2010년인가요. 10년 전이니까.
홍: 그 이후로 몇 번 정도 가셨어요?
윤: 여섯 번, 일곱 번 쯤.
홍: 많이 가셨네요.
윤: 네. 그래도 고급부 3학년 때 정말이면 조국에 수학여행으로 갑니다. 우리 고급학교 학생들. 올해는 좀 코로나로서 못 갔는데.
임: 그럼 지금도 학교에서 계속 가고 계시는 거예요?
윤: 네. 그래도 코로나가 안착 안 되니까 1-2년은 좀 모릅니다.
임: 그럼 제일 최근에 가신 건 작년인가요?
윤: 아닙니다. 올해는 고급부 3학년 담당하고 있지만 마지막에 갔던 것은5년 전인가.
임: 처음에 학교에서 조선춤 배우고 난 후에 북한 방문해서 조선춤 배우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윤: 역시 환경이 보다 좋다고 느꼈습니다. 역시 조선무용이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것보다 배울 수 있고 그것을 그래도 일본에서도 우리가 잘 배워야 한다고도 생각하고.
홍: 자주 가신 것 같은데 가시면 선생님의 춤 선생님이 계세요?
윤: 고정된 선생님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홍: 그럼 가셔서 활동, 프로그램을 하는 건가요?
윤: 네. 그러한 느낌이 맞는 것 같아요.
홍: 어떤 프로그램들을 하세요? 춤 배우시고 관광하고.
윤: 네, 바로 그렇습니다.
임: 그쪽 무용단과 연계해서 가시는 건가요?
윤: 그렇게 큰 무대 출연자하고의 접촉은 없습니다.
홍: 선생님은 북한의 경연대회 이런 거 나가보셨어요?
윤: 없습니다.
임: 조선무용을 학교에서 가르치실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윤: 기술적인 부분입니까?
임: 기술적인 부분이나, 의식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고요.
윤: 기술적인 부분은 하체하고 호흡. 율동성입니다. 정신적인 부분은 아까 금은동 얘기도 주셨는데 바로 그렇다고 생각을 해서 상이 중요하다, 라기보다는 일본에서 조선무용을 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정말 우리 학교 학생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역시 그런 민족성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태어난 곳은 일본이라도 역시 계속 지킨다고 할까 그러한 정신적인 내면 세계 부분을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홍: 호흡 말씀하셔서 궁금한데, 여기 남쪽도 호흡을 중요시 여기거든요. 호흡 교육하실 때 어떤 말씀을 많이 하세요? 어떻게 호흡해라, 이런 면.
윤: 쉬고 풀고, 라고는 얘기하는데 입으로 꼭 쉬고 풀고 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역시 많이 어려워 합니다. 펌프로 표현하거나 하면서. 제가 춤 추고 그것을 흉내라고 할까 본보기로 해보라, 라는 지도 방법이 많습니다. 학교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지도 방법이.
홍: 가르치실 때 저희가 거의 못 들어서 너무 아쉬웠어요. 다음에 수업하실 때 찍어주셔서 보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너무 듣고 싶은데 듣질 못했어요.
윤: 알았어요.
임/홍: 감사합니다.
손: 수업 마지막에도 선생님께서 만드신 창작 작업을 학생들한테 가르치면서 호흡을 많이 강조하시는데, 느낌에 장단이나 음악의 장단에 강약들이 있잖아요. 어떨 때는 박자가 확 터질 때 아이들이 확 집중해야 하고 이런 강약 조절하고도 호흡하고도 연결이 되나 보다 하는 느낌도 받긴 했어요. 앞서 다른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연결이 자꾸 끊기다 보니 그런 점을 많이 놓쳐서 아쉬운 느낌이었지만 순간순간 그런 느낌이 오긴 했어요.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8살에 학교에서부터 조선춤 시작하신 게 아니고 연구소에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조선 국적의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무용 연구소가 교토에 있어요?
윤: 저는 출신이 교토가 아닙니다. 오사카 출신으로서 오사카에는 연구소가 몇 개 있어서 거기서 배웠습니다.
손: 거기서는 조선춤을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홍: 혹시 조은령 영화감독님 아세요?
윤: 모릅니다.
홍: 조은령 영화감독님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조선학교를 방문해서 조선학교 촬영하셨는데 돌아가셨어요. 여자 분이시고.
윤: 몇 명 감독 아는 사람은 있지만.
홍: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남편 분이<우리 학교> 영화 만드셨어요.
윤: 아, 홋카이도에. 김명중.
홍: 네. 오사카라고 하셔서 혹시 아시나 했어요. 거기에 조은령 선생님 추모 나무가 있더라고요.
윤: 김명중 감독은 압니다.
홍: 개인적으로 아세요?
윤: 감독님은 모르시지만 저는 압니다.
임: 무용 같은 경우 소조 활동에서 춤을 배우고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 진로 결정은 대부분 무용수가 되고 무용단에 들어가는 건가요?
윤: 아니요.
임: 그럼 아이들이 취미로서 배우는 경우도 있고 진지하게 전공하려고 배우는 경우도 있는 건가요?
윤: 네. 일본에서는 금강산가극단이라는 단체가 있어서 아마 유튜브로 검색하면 나올 것인데 그것이 결국 프로이니까 그걸 지망하는 학생도 있고 무용을 이제 그만두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자기의 진로에 따라서 계속 무용을 배우는 학생도 있거니와 ???계통을 가는 학생들은 안 하고.
임: 제가 한국에서 춤을 교육 받을 때는 진로 결정이나 프로 무용수로 춤을 출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춤을 배우고 거기에 포커스를 많이 두는데 제가 독일로 넘어오면서, 여기 이주해 오신 한국분들이나 자녀분들을 봤을 때는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민족성을 교육하기 위해서 춤을 배우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마 조선학교에서도 무용이 그런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민족성을 기르거나 정체성을 강화하기위해서 예술이 교육되는지 궁금해서 여쭤보게 됐어요.
윤: 음, 어떤가. 무용을 직업으로서 하는 학생은 0%에 가깝고. 아, 교토 애들은요. 오사카랑 교토에는 있을 수 있는데 지금 교토에서는 너무 없고. 저같이 조선대학교에 그대로 진학해서– 조선대학교 아십니까?
임: 네
윤:조선대학교에 계속 진학해서 무용을 배우는 학생도 있고. 진로 선택으로서 조선무용을 하는 학생은 안 보이고 역시 그것이 소조 활동이 좌우되는 학생도 있고 저도 아직 3년 밖에 여기서 일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계속 조선무용을 하기 위해서 조선대학교에 간다는 학생은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꼭 조선무용이 모든 진로에 좌우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손: 고급부에서 만약에 이 무용 활동이 끝나버리기에는 학생들의 기량도 그렇고 배움의 수준도 그렇고 거의 일주일에 4-5번 이상 매일 같이 2시간, 2시간 반씩 트레이닝하고 연습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학생들이 그것에 대해 불만이 있다거나, 이 정도는 소화하기 힘들다는 불만 없이 자발적으로 잘 따라와주나요?
윤: 고급부 학생들은 기본 자발적으로 따라옵니다.
손: 남한이라면 거의 입시 무용이라고 하는데,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엄청나게 집중적으로 훈련을 하고 그러잖아요. 학생들이 거의 그 정도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잘하기도 해서 저도 이 학생들도 많은 수가 전문 무용가가 되거나 가극단을 목표로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거든요.
임: 왜냐하면 전문 무용수가 되지 않기에는 너무 수준급이라서요. 너무 잘하더라고요. 한국에 예술 고등학교가 있어요. 예고에 들어가면 일반 수업 과정이 있고 그 외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춤에 할애하게 돼요. 하루 종일 춤을 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방과 후에2시간씩 추는 친구들랑 수준이 별로 차이가 안 나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해서 전문 무용수로 가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기량이 너무 뛰어나서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윤: 기량이 높은지 어떤지는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고맙습니다. 저의 지도가 힘든 것도 있는 것도 모르고 그래도 학생들이 열심히 달라붙어 하고 있고. 결국 두 시간 쯤의 연습이지만 발표회와 가까우면 자주 연습도 하고, 아마 그러한 축적이 기술 제고에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역시 프로라고 되었을 때는 돈도 받고라고 하기 때문에 거기까지 추구하고 싶다는 학생은 정말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취미도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자기가 좋아해서 조선무용을 계속 하는 학생은 많고 그러기 위해서 조선대학교에 가는 학생도 있고 자기 진로로 조선대학교에 가고 계속 소조로서 조선무용을 한다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결국 교원이 되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무슨 직업으로 조선무용을-이라는 것은.
손: 아까 여쭤본 부분이랑 연결되는데, 경연대회 나가시면 금은동 상 받을 때 북쪽에서 레퍼토리 분야가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창작이 아니라 레퍼토리 부문이면 거기에 지원하는 모든 학교 학생들이 그걸 똑같이 연습하고 와서 실력을 겨루게 되잖아요. 그랬을 때 어떤 기준으로 금은동이 결정이 되는 거예요? 어디에서 점수를 제일 많이 받아요?
윤: 앙상블도 있고 율동성, 장단성. 이런 부분에서 아마 점수가 있습니다.
임: 선생님이 안무하실 때 민족성을 고취시킨다, 그런 부분에서 영감 받으신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런 부분도 점수 받는 요소가 되나요? 어떤 의도로 안무되었는가 하는 부분이요. 기량 외에도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 이런 거?
윤: 네. 그것도 있어요.
홍: 선생님한테 조선무용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선생님 개인에게 조선무용이 어떤 의미고 학생들에게 조선무용을 가르치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윤: 하나는 민족성이라는 부분. 민족을 지키는 마음 하고. 나 역시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이니까 역시 차별도 있고 그러한 속에서도 꿋꿋이 조선 사람으로 살아가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마음이 역시 큽니다.
홍: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오후엔 뭐하세요? 집에 가세요? 또 교수하세요?
윤: 일본은 밤 7시이기 때문에.
임: 집에 가셔야 되는 거죠.
윤: 네.
손: 이제 퇴근하시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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