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5 발췌


◌ 임지애, 손옥주, 홍정아

대담자: 임지애(이하 ‘임'), 손옥주(이하 ‘손'), 홍정아(이하 ‘손')


홍: 아버지를 존경하기 때문에 교원의 꿈을 꾸셨다고 했는데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조국으로 받아들이는 확고함도 있고, 무용을 가르치는 의미에 대해서도 본인이 일본에 사는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고, 본인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다는 게 새로웠어요. 현시대에도이렇게 젊은 분이 이런 환경 가운데에서 윗 세대가 해왔던 일들을 그대로 전수 받고 또 하고 계시는구나 싶고.


임: 의상이나 소품 말씀하실 때 싸고 질이 좋다는 얘기를 하셨잖아요. 그게 선생님의 북한에 대한 감정을 짐작해볼 수 있는 아주 작은 힌트처럼 느껴졌어요. 싼데 질이 좋다. 북한에서 만든 건 싸지만 질이 좋은 것. 북한에서만 구현되는 것. 장인이 만들 수 있는 것. 우리가 잃은 무언가가 거기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 그래서 선생님이 북한을 조선춤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 게, 저한테는 이동의 방향성과 관련해서 혼동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조선춤이 선생님한테는 북한에서 태어났는데 저한테는 아닌 거잖아요. 물론 이번 리서치가‘origin’, ‘originated’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보고자 하는 건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행위에서 수반되는 변화나 발전을 관찰하고 살피는 것인데, 이동이 어디서부터 시작돼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거죠. 가야무용단이나 한라함무용소, 재일조선인의 춤을 다룰 때에는 그것이 굉장히 명확했는데, 북한춤을 놓고 봤을 때는 이동의 방향이 모호해져요.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북한은 조선춤이 태어난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어면서 ‘아?’ 이렇게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홍: 조국의 것이기 때문에.


임: 가야무용단과 한라함무용소도 이주를 했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잖아요. 이주의 과정에서 다른 요소와의 접촉이 이뤄지니까 이주한 것은 당연히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남아있는 게 변하고 이주한 것이 변하지 않는 게 있더라고요.


손: 그들에게 어떻게 보면 이주의 춤은 있는 거예요. 이주의 춤, 이주해 온 춤, 이주하는 춤은 있는데 춤의 이주는 없는 거죠. 실질적인 춤의 영향이라는 게 있고, 그들이 여러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면서 학습되는 건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코어로서의 춤? 그 춤은 이들 안에선 이주하지 않는 거죠.


손: 우리의 전통춤이고 변하지 않는 춤, 부채춤.


손: 춤이 특정한 토포그래피와 만났을 때, 아니면 그 자체로 특정 문화권이나 지역에 대한 토포스가 되어버렸을 때는 아, 이게 안 움직여진다, 라는 느낌이 계속 들고요. 이주 경로를 찾고 있는데 동시에 정말 안 움직이는 부분이 있구나 싶어요.


임: 춤은 계속 변하고 미끄러지는데 의식은 반대로 고정돼 있는. 이분들한테 변하면 안되는 것들이 있어요. 어찌 보면 춤은 이동 하나 그 안의 의식은 변할 수 없는 것?


홍: 춤 그 자체의 오리진은 그게 정해진 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예를 들어 한국에서 온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배운 그 시점으로부터 변하면 안되는?


임: ‘내가 왜 북한춤이 이주했다고 생각했지?’ 그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입장에서나 그렇게 볼 수 있는 거예요. 내가 그 점을 왜 그렇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지 싶었어요.


홍: ‘나는 왜 이주를 이 기준에서 생각했을까’하는 그런 흘러가는 관점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만난 젊은 교원의 관점, 조혜미 선생님의 관점, 이런 것들이 담기는 것 자체가 많은 걸 볼 수 있게 하고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임: 이미 선택되고 편집된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에.


손: 오히려 가야무용단이나 한라함무용소 쪽과의 연관성보다는, 사상의 체계나 멘탈리티 같은 것이 보면 볼수록 오히려 유태인들의시오니즘에 가까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홍: 상징적인.


임: 정말 거대한 역사고 담론인데, 이걸 춤을 통해서 다룬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질문을 다시 하게 되네요.


손: 그럼 이번 리서치가 어떤 영감이 된다면 그 미래의 춤에는 또 움직이지 않는 뭔가가 있을 수 있는 건가요? 모든 게 변해도 그 와중에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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