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재일교포 4세 입니다.
고향은 경상북도 달성군 의가면 동의동.
대구광역시 친척은 이제 없을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일본사람.
대구에는 가본적이없습니다....
이제 세대가 4세가 되면 이민이라는 감각은 없고 그냥 일본에서 나서자란 일본인.
응?그건 아니다.결코 아니다.하지만 나는 한국사람?조선사람?...
이런 자문자답을 하면서 춤을 추어왔던 10대20대.
그냥 조선무용이 좋아서.
그 어느나라 춤보다 멋있고 예술성이 높은 춤이다고 자부심을 가지며 추어왔던 초중고 학생시절.
고등학교 졸업후 조선가무단에 입단하여 전문가로 무대활동을 시작.
하지만 춤이 좋아서 춤을 출수있는곳이아니라 예술을 통해 동포들에게 민족을 느끼게하는 문화선전부대였다.
나는 그냥 그저 좋아서 추고싶은데 항상 민족의 넋이나 차별받은 역사를 간직하며 춤을 추어야했다.
입단2년째 신입단원 강습으로 평양으로 가게된다.
조선무용의 기본을 3달간 평양에서 배운다.
처음으로 자기 조상님들이 살아왔던 조선반도 땅을 밟고 냄새를 맞고 일본말만이 아닌 우리말 만으로 진행되는 환경을 온 몸으로 느꼈다.
일본에선 저는 조선사람 이다!고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는데 진짜 조선에가면 저희들을 일본사람 교포로 본다.....
당연한데 넘 충격이였다.
일본에 돌아와 사물놀이와 만나게된다.
그 소리를 들었을때 내 몸속에서 가만히 있지않은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직접 배우고싶어서 사물놀이 선생님들을 만나게되며 처음으로 한국을 느끼게된다.그래서 한국무용의 존재를 알고 배우게 된다.
소속단체 조선가무단에서는 저한테 남쪽으로 넘어간 자 라고 했다.
20대초반 나속에 생긴 감정.
이것도 민족차별이아닌가...
조선가무단을 퇴단.
그리고 더 우리 문화를 배우고싶어서 일본에있는 한국전통예술원에 입문.
여로 춤의 류파를 접하면서 한국사람의 인격 한국사람의 성격 기본을 느끼게된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무대에 올랐을때.
또 처음으로 동 세대 무용가와 춤을 추었을때.
객속 손님들이 얼씨구 라 추임쇠를 넣어주는 환경에 질투를 느끼게 된다.
왜?항상 나는 일본에서 얼씨구를 배워야 했고 얼씨구를 알려야했다.
않배워도 알꺼고 느낄텐데...
나는 진짜 한국사람?..
일본 북소리를 들으면 어디서 추임쇠를 넣는지 않배워도 안다.
그때 나는 어느나라사람도 아닌 재일교포다 고 느껴진 20대 후반.
그와 동시에 그러니까 조선반도 북과남 그리고 일본을 느낄 수 가 있다.
이것이 나의 토대가 되여 2006년부터 현재까지 친구들 이라는 그룹명으로 조선반도와 일본문화를 융합한 무대를 만든다.
현재 6살 2살의 두명의 아이를 낳고 이들은 태여났을때부터 한국국적을 가진 서류상 한국사람이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냐.
당당히 조선반도의 피가흐르는 자로 키우고싶다.
그걸 아이들이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역땅 생활속에서 우리 조상님이 살아왔던 생활속의 흙냄새들을 느끼게하고싶다.
현재 제가 사는 일본고베시 나가타 .
이 동내는 교포들이 많은곳이다.
한국사람 조선사람 중국사람 베트남사람.그리고 일본사람.
이런 환경에서 살면서 누가 어느나라 사람이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스타일이 정착하고있다.
그러니 저의 일상은 당당하게 조선반도의 문화가 같이 존재한다.
저의 춤은 이제까지 자기자신이 무슨사람인지 찾는수단 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풀어주는 약이였다.
이민이라는 존재하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느끼게하며 내속에 희노애락을 제일 편하게 표현해줄 수단.
2020년 8월23일
조혜미 드림
고향은 경상북도 달성군 의가면 동의동.
대구광역시 친척은 이제 없을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일본사람.
대구에는 가본적이없습니다....
이제 세대가 4세가 되면 이민이라는 감각은 없고 그냥 일본에서 나서자란 일본인.
응?그건 아니다.결코 아니다.하지만 나는 한국사람?조선사람?...
이런 자문자답을 하면서 춤을 추어왔던 10대20대.
그냥 조선무용이 좋아서.
그 어느나라 춤보다 멋있고 예술성이 높은 춤이다고 자부심을 가지며 추어왔던 초중고 학생시절.
고등학교 졸업후 조선가무단에 입단하여 전문가로 무대활동을 시작.
하지만 춤이 좋아서 춤을 출수있는곳이아니라 예술을 통해 동포들에게 민족을 느끼게하는 문화선전부대였다.
나는 그냥 그저 좋아서 추고싶은데 항상 민족의 넋이나 차별받은 역사를 간직하며 춤을 추어야했다.
입단2년째 신입단원 강습으로 평양으로 가게된다.
조선무용의 기본을 3달간 평양에서 배운다.
처음으로 자기 조상님들이 살아왔던 조선반도 땅을 밟고 냄새를 맞고 일본말만이 아닌 우리말 만으로 진행되는 환경을 온 몸으로 느꼈다.
일본에선 저는 조선사람 이다!고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는데 진짜 조선에가면 저희들을 일본사람 교포로 본다.....
당연한데 넘 충격이였다.
일본에 돌아와 사물놀이와 만나게된다.
그 소리를 들었을때 내 몸속에서 가만히 있지않은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직접 배우고싶어서 사물놀이 선생님들을 만나게되며 처음으로 한국을 느끼게된다.그래서 한국무용의 존재를 알고 배우게 된다.
소속단체 조선가무단에서는 저한테 남쪽으로 넘어간 자 라고 했다.
20대초반 나속에 생긴 감정.
이것도 민족차별이아닌가...
조선가무단을 퇴단.
그리고 더 우리 문화를 배우고싶어서 일본에있는 한국전통예술원에 입문.
여로 춤의 류파를 접하면서 한국사람의 인격 한국사람의 성격 기본을 느끼게된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무대에 올랐을때.
또 처음으로 동 세대 무용가와 춤을 추었을때.
객속 손님들이 얼씨구 라 추임쇠를 넣어주는 환경에 질투를 느끼게 된다.
왜?항상 나는 일본에서 얼씨구를 배워야 했고 얼씨구를 알려야했다.
않배워도 알꺼고 느낄텐데...
나는 진짜 한국사람?..
일본 북소리를 들으면 어디서 추임쇠를 넣는지 않배워도 안다.
그때 나는 어느나라사람도 아닌 재일교포다 고 느껴진 20대 후반.
그와 동시에 그러니까 조선반도 북과남 그리고 일본을 느낄 수 가 있다.
이것이 나의 토대가 되여 2006년부터 현재까지 친구들 이라는 그룹명으로 조선반도와 일본문화를 융합한 무대를 만든다.
현재 6살 2살의 두명의 아이를 낳고 이들은 태여났을때부터 한국국적을 가진 서류상 한국사람이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냐.
당당히 조선반도의 피가흐르는 자로 키우고싶다.
그걸 아이들이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역땅 생활속에서 우리 조상님이 살아왔던 생활속의 흙냄새들을 느끼게하고싶다.
현재 제가 사는 일본고베시 나가타 .
이 동내는 교포들이 많은곳이다.
한국사람 조선사람 중국사람 베트남사람.그리고 일본사람.
이런 환경에서 살면서 누가 어느나라 사람이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스타일이 정착하고있다.
그러니 저의 일상은 당당하게 조선반도의 문화가 같이 존재한다.
저의 춤은 이제까지 자기자신이 무슨사람인지 찾는수단 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풀어주는 약이였다.
이민이라는 존재하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느끼게하며 내속에 희노애락을 제일 편하게 표현해줄 수단.
2020년 8월23일
조혜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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